본고사 부활되면
중장년층에게 본고사의 정서는 새롭거나 낯설지 않다. 중고생 자녀를 둔 일부 부모들에게도 본고사는 한번 해볼만한 것으로 여겨진다. 학생부, 수능, 논술, 면접, 구술 등 복잡하게 이뤄지는 전형보다는 한번에 당락을 결정지을 수 있는 본고사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난이도 너무 높아 교육과정 파행 불보듯
학부모 사교육비-학생들 공부 부담 늘어
“대학들, 선발 경쟁 말고 교육 경쟁해야” 하지만 본고사가 실시됐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부작용은 생각보다 크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입시 부담이 커지고, 결국은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진다. 실제로 본고사를 치르던 1970년대에는 ‘과외망국론’과 함께 ‘3당4락’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학부모들은 과외비 부담에, 학생들은 공부에 시달려야 했다. 서울대 78학번인 최수일(49)씨는 “밤새도록 유명학원에서 나온 본고사 문제집을 가지고 지긋지긋하게 공부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77학번인 이명수(50)씨는 “본고사가 어렵게 나왔기 때문에 당시에는 재수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던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부작용은 1994~1996년 본고사가 일시 부활했을 때도 비슷하게 재현됐다. 1994년 서울대에 원서를 냈던 김은숙(33)씨는 “독어교육과에 가려고 국어, 영어, 수학, 독일어를 시험봤는데, 3학년 내내 본고사 학원에서 살았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범 곰티브이 교육총괄본부 이사는 “본고사는 그 성격상 매우 난이도 높은 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에 아무리 공부해도 불안할 수밖에 없는 시험이고, 따라서 사교육비 부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 것”이라고 우려했다. 10년째 대입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석아무개(48)씨는 “논술한다니까 논술학원이 대박나듯이 본고사 하면 모두 다 본고사반 운영한다고 난리칠 것”이라며 “본고사는 포화상태에 이른 학원들에게 구세주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교육과정 파행도 불을 보듯 뻔하다고 많은 이들이 지적한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볼 때 주로 상위권 대학들이 치른 본고사는 상위권 학생들 사이에서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늘 학교 교육과정보다 어려웠고, 교육과정을 아예 벗어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기봉 교육인적자원부 대학학무과장은 “본고사가 도입되면 대학간 경쟁으로 서로 어렵게 문제 내기 경쟁을 벌일 게 뻔하다”며 “국·영·수 위주 필답고사로 가면 교육과정을 벗어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1970년대 본고사 시절 유명 학원들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본고사 문제집들을 경쟁적으로 발행했고, 학생들은 전적으로 이들 문제집에 의존했다. 강정훈 안양 귀인중 교사는 “지금도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편법수업이 일반화되고, 학교는 그야말로 찬밥 신세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형빈 서울 이화여고 교사는 “상위권 학생들이 대거 몰려 있어 본고사에 수월하게 대비할 수 있는 특목고 진학 열풍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대학들은 본고사 실시로 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서 더 높은 성과를 낼 수는 있을까? 한만중 전교조 정책실장은 “본고사는 기본적으로 따로 준비해서 죽어라 공부하는 것인데, 그것만으로 대학에서 더 공부를 잘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내신이 높은 학생들이 대학 성적도 좋다는 것은 대학들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송인수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우리 고교생들의 학업능력성취도는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 최상급 수준인데 이런 학생들이 성에 차지 않아 본고사를 치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성열관 경희대 교육학과 교수는 “입시선발 자율권이 고교 교육권을 해쳐서는 안 된다”며 “내신이나 수능만으로도 충분히 우수한 학생을 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대학은 선발 경쟁이 아니라 교육 경쟁을 펼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창섭 이종규 기자 cool@hani.co.kr
학부모 사교육비-학생들 공부 부담 늘어
“대학들, 선발 경쟁 말고 교육 경쟁해야” 하지만 본고사가 실시됐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부작용은 생각보다 크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입시 부담이 커지고, 결국은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진다. 실제로 본고사를 치르던 1970년대에는 ‘과외망국론’과 함께 ‘3당4락’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학부모들은 과외비 부담에, 학생들은 공부에 시달려야 했다. 서울대 78학번인 최수일(49)씨는 “밤새도록 유명학원에서 나온 본고사 문제집을 가지고 지긋지긋하게 공부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77학번인 이명수(50)씨는 “본고사가 어렵게 나왔기 때문에 당시에는 재수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던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부작용은 1994~1996년 본고사가 일시 부활했을 때도 비슷하게 재현됐다. 1994년 서울대에 원서를 냈던 김은숙(33)씨는 “독어교육과에 가려고 국어, 영어, 수학, 독일어를 시험봤는데, 3학년 내내 본고사 학원에서 살았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범 곰티브이 교육총괄본부 이사는 “본고사는 그 성격상 매우 난이도 높은 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에 아무리 공부해도 불안할 수밖에 없는 시험이고, 따라서 사교육비 부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 것”이라고 우려했다. 10년째 대입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석아무개(48)씨는 “논술한다니까 논술학원이 대박나듯이 본고사 하면 모두 다 본고사반 운영한다고 난리칠 것”이라며 “본고사는 포화상태에 이른 학원들에게 구세주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교육과정 파행도 불을 보듯 뻔하다고 많은 이들이 지적한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볼 때 주로 상위권 대학들이 치른 본고사는 상위권 학생들 사이에서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늘 학교 교육과정보다 어려웠고, 교육과정을 아예 벗어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기봉 교육인적자원부 대학학무과장은 “본고사가 도입되면 대학간 경쟁으로 서로 어렵게 문제 내기 경쟁을 벌일 게 뻔하다”며 “국·영·수 위주 필답고사로 가면 교육과정을 벗어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1970년대 본고사 시절 유명 학원들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본고사 문제집들을 경쟁적으로 발행했고, 학생들은 전적으로 이들 문제집에 의존했다. 강정훈 안양 귀인중 교사는 “지금도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편법수업이 일반화되고, 학교는 그야말로 찬밥 신세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형빈 서울 이화여고 교사는 “상위권 학생들이 대거 몰려 있어 본고사에 수월하게 대비할 수 있는 특목고 진학 열풍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대학들은 본고사 실시로 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서 더 높은 성과를 낼 수는 있을까? 한만중 전교조 정책실장은 “본고사는 기본적으로 따로 준비해서 죽어라 공부하는 것인데, 그것만으로 대학에서 더 공부를 잘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내신이 높은 학생들이 대학 성적도 좋다는 것은 대학들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송인수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우리 고교생들의 학업능력성취도는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 최상급 수준인데 이런 학생들이 성에 차지 않아 본고사를 치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성열관 경희대 교육학과 교수는 “입시선발 자율권이 고교 교육권을 해쳐서는 안 된다”며 “내신이나 수능만으로도 충분히 우수한 학생을 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대학은 선발 경쟁이 아니라 교육 경쟁을 펼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창섭 이종규 기자 cool@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