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클리닉
서영이와의 이야기는 좀처럼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무엇보다도 공부에 대한 의욕 자체가 없어 보였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있었다. 서영이의 휴대폰. 서영이는 나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내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 받았던 것이다. 꺼내놓고 편하게 해도 된다고 하자 휴대폰을 책상 위로 꺼냈는데 그 손놀림이 어찌나 빠른지 놀라웠다. 나의 감탄이 칭찬으로 느껴졌는지 아니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았다. 지난해, 그러니까 중3 때까지만 해도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서영이는 중3 때 요리고등학교에 가고 싶어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었다고 한다. “요리는 취미로나 해라”라는 아버지의 말씀으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지만….
어쩌면 겉으로 보이는 서영이의 의욕 없고 무기력한 모습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시간에서와 마찬가지로 수업 시간에도 끊임없이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는다고 했는데, 그것 역시 아버지에 대한 저항의 행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아버지, 난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다구요!”
서영이의 성적에 관심이 많은 서영이의 아버지였으므로, 서영이의 꿈과 진로에 대해 다시 의논을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으로 생각됐다. 아마 그때의 결정이 서영이에게 이렇게 영향을 주고 있으리라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계실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직업세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직업에 선입관과 편견에 근거해 쉽게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셨을 지도 모른다. 하여간 다시 대화를 시작해 볼 여지는 얼마든지 있었다. 문제는 서영이었다. 서영이는 이미 아버지와의 대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꿈은 이뤄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자포자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대학의 관련된 학과 및 관련 자격증을 서영이에게 알아오도록 했다. 서영이는 이런 저런 정보를 알아보면서 조금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버지의 반대가 걱정이었다. 서영이에게 아버지는 너무나 완고하고 강한, 그래서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벽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니 대화를 해보기도 전에 자꾸 튕겨져 나가는 것 아닌가.
나는 아버지의 모습을 벽이 아닌 문이라고 생각해보자고 제안했다. 문도 단단하기는 하지만 열리긴 하지 않은가. 그리고 벽인지 문인지 한번 두드려 보기라도 하자고. 지금까지와 달리 성실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가고 싶은 분야에 대한 정보를 알려드리면서 얼마나 그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려드리는 것 등이 그 구체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열심히 두드리는데 열리지 않는 문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걸릴 뿐이다.
신을진/한국싸이버대학교 상담학부 교수 ejshin815@hanmail.net
신을진/한국싸이버대학교 상담학부 교수
신을진/한국싸이버대학교 상담학부 교수 ejshin8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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