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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빈곤가정 아이들, 어떻게 살고 있나

등록 2007-06-19 13:49

덕릉고개. 멀리서 볼때는 높지 않았지만, 직접 오르니 올라가기 쉽지 않았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덕릉고개. 멀리서 볼때는 높지 않았지만, 직접 오르니 올라가기 쉽지 않았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기획특집] 폐가에 사는 지은(13)이, “학원에 다니고 싶어요”
빈곤가정 아이들, 어떻게 살고 있나

상계역을 지나 당고개로 들어가는 전철의 속도가 느려지며 창밖의 풍경이 느린 속도로 지나간다. 언덕을 따라 여유 공간 없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집들. 마치 이곳 사람들의 삶처럼 느껴진다.

지난 15일, 기자는 현재의 빈곤가정아이들의 상황을 취재하기위해 당고개역을 찾았다. 작년 12월 한 언론사의 기획기사였던 <달동네에서의 한달>의 배경인 ‘덕릉고개’가 보였다. 볼 때는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았으나, 나중에 고개를 오를 땐 ‘생각을 잘 못했다’고 깨달을 정도로 고개는 높았다.


당고개역과 마주보고 있는 언덕 위에는 4~5층 정도의 빌라들과 건물들이 가득하고, 반대쪽은 폐가와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단층의 무허가 건물이 가득했다.

나눔의 집 뒤편의 마을 전경. 위에 경계선 앞쪽의 건물과 아래쪽 집들이 대조를 이룬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나눔의 집 뒤편의 마을 전경. 위에 경계선 앞쪽의 건물과 아래쪽 집들이 대조를 이룬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가현이네
중국집 배달하는 아버지로 혼자 보내는 시간 많아

가장 먼저 20년째 지역에서 빈곤 가정을 위해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는 ‘나눔의 집’을 찾았다.

“처음 가현이를 알았을 때, 가현이네 집안 사정이 심각했었죠…”

이 말과 함께 사회복지사 김지선씨(43)가 내민 ‘2년 전 학생 신상 카드’에는 아이에 대해 ‘보호 및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가현(가명)이가 10살 때의 이야기이다.

성공회 노원 나눔의 집. 사무실과 공부방의 역활을 함께 하고 있었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성공회 노원 나눔의 집. 사무실과 공부방의 역활을 함께 하고 있었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가현이의 담임 교사가 ‘나눔의 집’에 가현이 자매를 의뢰한 것도 이때다.

당시 기록들을 보면 가현이네 집안 문제가 심각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족은 아버지와 가현이, 한 살 위인 오빠가 함께 살고 있는 편부가정이었다.

가현이네 아버지는 가현이가 다섯살이 되던 해, 어머니와 이혼을 했다. 이후 아버지는 중국집 배달 일을 하면서 늦은 시간까지 일을 했고, 아이들만이 집을 지켰다. 아이들은 식사를 거를 때도 많았고, 대책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김지선씨는 “집안 청소를 전혀 하지 않아 악취가 나는 상황 이었어요. 바닥에는 음식쓰레기 외에 각종 쓰레기들이 쌓여있는 상태였어요.”라고 그때 상황을 회상했다.

현재 가현이의 상황을 관찰하기 위해 아이가 다니고 있는 신상계 초등학교를 찾았다.

상계역과 당고개역 사이에 있는 이 초등학교는 교육복지투자 우선지역 사업을 통해 ‘학교 내 교육 복지실’을 설치했다. 또한 지역사회교육 전문가와 연계하여 저소득가정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곳 교육 복지실에서 일하는 지역사회 교육 전문가 유진아(35)씨를 만났다.

“이젠 가현이네 가정은 다시 그런 상황으로 빠지지 않을 겁니다.”

유 씨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현재 가현이네 가정은 국민 기초 생활 수급권자로 정부지원금과 함께 중식 및 학비를 지원 받고 있다. 학교 측에서는 방과 후 교실수업을 통해 아이의 교육을 지원하고 있으며 그 이후에는 가현이는 ‘나눔의 집’에서 밤 10시까지 생활한다.

“좋은 후원자도 만나서 피아노 학원도 다니고 있는 걸요. 이렇게 되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죠."

‘가현이와 같은 아이 하나하나가 보람이고 희망’이라는 유 씨의 미소가 부드럽다.

2시 30분이 좀 넘은 시간, 가현이가 들어왔다. 거침없이 들어오던 가현이는 기자를 보자, 발걸음을 잠시 멈춘다. 가지런히 정리한 긴 머리에 콧등 위에 살짝 걸친 안경을 쓴 모습이 귀엽기 만한 5학년 가현이다.

이번에는 다른 가정에 방문하기 위해 무허가 건물사이에 있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폐가에 살고 있는 지은이, “학원에 다니게 되면,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에요”

시멘트 조각이 어지럽게 놓여있는 벽돌계단을 지나 도착한 곳은 지은(가명·13)이네 집이었다.

폐가를 고쳐 만든 지은(가명)이네 집. 허술한 지붕과 갈라진 벽만으로 이번 장마를 버텨야하는 지은이 가족이 안타깝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폐가를 고쳐 만든 지은(가명)이네 집. 허술한 지붕과 갈라진 벽만으로 이번 장마를 버텨야하는 지은이 가족이 안타깝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벽은 시멘트로 덮어놓아 바람막이용 역할밖에 할 수 없어 보였다. 지붕도 슬레이트 모양의 플라스틱만으로 만들었고, 그 위엔 비가 새지 않게 하기 위해 커다란 천을 덮어 놓았다. 방문 역시 어디서 버려진 문을 주워와 임시로 맞추어 놓았다. 사실 지은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주인이 없는 ‘폐가’였다.

지은이네 어머니는 얼마전 ‘나눔의 집’을 직접 방문해, 사회복지사들에게 “지은이가 하는 공부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지은이는 ‘학습부진 아이’가 아니다. 오히려 반에서 상위권에 속한다. 하지만 지은이 가정에는 지은이에게 공부를 가르쳐줄 사람도 , 지원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지은이네 아버지는 현재 무직으로 노동시장에 나가서 일거리가 있으면 일을 하고, 없으면 쉬는 일용직 노동자이다. 하지만 알코올중독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일을 못하고 있는 상태였고, 고정적으로 하는 일이라고는 주중에 한번 하루 종일 막걸리를 나르고 받는 품삯 10만원이 전부다.

어머니 역시 어릴 적 소아마비로 인해 ‘왼쪽 손과 발’이 자유롭지 않아(장애5급) 취직을 못하고 있었다. 결국 월세도 못 내고 내쫓겼고, 지금 폐가를 고쳐서 사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지은이가 학원을 다니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였다.

달동네집 사이로 보이는 아파트. 두 건물의 높이 차이만큼 벌어지는 소득차이 격차가 삶을 더욱 힘겹게 하는 것은 아닐까.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달동네집 사이로 보이는 아파트. 두 건물의 높이 차이만큼 벌어지는 소득차이 격차가 삶을 더욱 힘겹게 하는 것은 아닐까.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언젠가 지은이가 ‘학원에 다니면, 친구들에게 자랑하겠다’고 말했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당장이라도 학원에 등록해주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어둠이 비쳤다.

옆에 있던 지은이에게 ‘학원에 다니면 왜 친구들에게 자랑한다고 했느냐’고 묻자, 지은이는 “친구들이 모두 가는 학원에 나도 가고 싶었다”고 수줍게 말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집을 나오면서 주방을 보았다. 지붕과 벽 사이에 틈이 있었고, 그 사이로 빛이 한줄기 세어 나왔다. 장마 때 이 사이로 빗물이 흘러들어올 것이 뻔했다.

‘나눔의 집’에 다시 도착했을 때는 아이들은 이미 저녁을 먹고 상을 치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세수도 했다. 대부분 가정에서 청결상태까지 돌봐줄 사람이 없다보니, 사회복지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같이 씻는다.

빈곤가정에 대한 지원, 여전히 부족

부엌에서는 중학교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 하나가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이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처음 공부방과 인연을 맺고, 중학생이 된 올해까지 함께하고 있는 연진(가명·14)이다.

연진이는 저녁 시간마다 매일 나와 아이들의 식사와 세면을 돕고 ‘나눔의 집’을 청소한다. 연진이네 가정 역시 수급권 가정이다. 가난의 굴레에서 아직 벗어나진 못했지만 공부방생활을 하면서 서로 더불어 사는 나눔을 배운 것은 아닐까.

“특별히 봉사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그냥 ‘나눔의 집’ 사람들이 좋아요. 이곳이 좋으니 남아 있는 거에요.”

이 말이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려하지 않지만 가려져있는 얼굴속의 표정은 분명 봉사의 기쁨을 말하고 있었다.

밤 10시가 가까이 되서야 아이들은 하나둘씩 ‘나눔의 집’을 빠져나갔다. 집으로 가는 길,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가현이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 없는 유아시절을 보낸 가현이가 어쩌면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어 안고 싶었던 것은 아니였는지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아동청소년 센터에서 좋은 소식을 들었다. 지은이 어머님의 요청에 따라 지은이에게는 다음 달부터 매월 일정액의 장학금이 수여될 예정이어서, 한 달 후에는 학원을 다닐 수 있을 것이란다. 아이들의 희망은 이렇게 시작되는 듯 싶다.

아직 이 상계동 지역에는 자원과 인력부족으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지은이 사례처럼 무허가 건물 속에서 살면서 공부에 대한 열망은 있지만 길을 찾지 못하는 아이들, 가현이와 같이 가정의 방임 속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이 아이들은 자신의 손끝에 닿는 희망을 기다리고 있다.

그 작은 희망을 마련해 주어할 우리 사회는 지금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발전’이라는 가면에 가려 지금 이 순간에도 ‘끼니를 굶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임대선 기자 lim-txt@hanmail.net
ⓒ2007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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