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순의 진로교육 나침반
진로 교육
정연순의 진로교육 나침반 /
중등학교 완전 취학률을 이룬 우리나라에서 ‘공부하는 학생’에 비해 ‘일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은 미미하다. 지난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를 보면 조사 대상 청소년 가운데 중학교 2학년에서 고등학교 2학년까지 한 번 이상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이들의 비율이 전체의 34.1%였다. 청소년 3명 가운데 1명이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는 얘기다.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전단지 돌리기’나 ‘음식점 서빙ㆍ배달’ 같은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주유소나 음식점 등에서 ‘알바 청소년’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청소년기는 공부에 매진하며 인생을 준비하는 시기라는 인식 탓에, 일하는 청소년들의 존재가 엄연한 현실임에도 사회적으로 간과되기 쉽다. 부모나 교사의 대응은 기껏해야 ‘공부에 방해되지 않도록’ 말리는 수준이다. 부모들의 생각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한 치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입시경쟁에서, 자녀가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은 공부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바람직함의 여부를 떠나 아르바이트는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진로 경험이다. 청소년들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처음으로 직업세계에 참여하게 된다. 사회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 데 초기 경험은 결정적 구실을 하기 마련이다. 어른들의 교육적 관심과 사회적 보호장치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비공식 노동 시장에서, 10대가 직업세계를 어떻게 경험할 것인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임금 체불과 인권 침해에 시달리는 일이 적지 않고, 일의 경험은 주로 소비지출이나 비행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청소년들의 노동권을 보호하면서 일의 경험을 학습으로 연결하는 사회적 기획이 필요하다. 그 가운데 교육 차원에서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우선, 청소년 노동 보호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의 운영이다. 근로기준법이나 노동권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어 가르치면서 임금 체불 등 문제 사태에서의 대처법뿐 아니라 노동의 권리와 의미, 직업윤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청소년들이 일을 통해 학습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근래에 노동부의 청소년 직장체험 프로그램과 같은 지원 제도들이 생기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아직 교육적 설계는 미흡한 측면이 있다. 교육세계와 일의 세계를 연결하고 사회자원을 교육적으로 활용하는 작업에는 매우 세심한 기획력이 필요하다.
아르바이트, 인턴십, 청소년 창업 등과 관련해 좋은 진로교육 모델을 개발하고 배양하는 작업이 동시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 노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일하는 청소년들이 건강한 직업인으로 성장하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깊이 있는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정연순 한국고용정보원 진로교육센터 부연구위원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일하는 청소년’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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