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의 교실 밖 국어여행
김철호의 교실 밖 국어여행 /
[난이도 수준-중2~고1] 27. 높임법③
28. 높임법④
29. 높임법⑤ 역사 드라마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또 한 가지 높임법은 하게체다. 이렇게 사극 속의 대화에서 하게체를 쓰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나이가 엇비슷한 관계에서다. <대왕 세종>을 예로 들자면, 성균관에서 함께 공부한 동문들인 정인지ㆍ김종서ㆍ최만리 같은 인물들 사이에서 하게체가 쓰이고 있다. 또 한 가지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쓰는 경우다. 역시 <대왕 세종>을 예로 들면, 충녕대군(후일 세종)이 자신의 신하 격인 윤회에게, 그리고 중전이 손아래뻘인 후궁 희빈에게 하게체를 쓰고 있다. 방금 예로 든 하게체의 두 경우는 내용이 서로 다른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중요한 공통점이 숨어 있다. 그것은, 두 경우 모두 듣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을 때에만 쓴다는 점이다. 만일 상대가 아직 성년이 안 된 사람이라면 위의 어느 경우에나 해라체나 해체(반말체)를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것은 하게체가 어디까지나 상대를 낮추는 어법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해라체나 해체도 상대를 낮추는 어법이지만, 하게체는 상대의 나이를 대접하는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하게체는 해체나 해라체에 비해 상대를 조금 더 정중하게 대하는 어법이 된다. 자연히,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의 정서적 거리는 그만큼 멀어질 것이다. 이렇게 하게체는 상대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야 쓸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말하는 이는 그 이상으로 나이를 먹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러분같이 청소년기에 있는 사람이 하게체를 쓸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나중에 나이가 웬만큼 들었을 때(빠르면 서른 이후나 늦어도 마흔 정도에는) 이 하게체를 쓸 일이 생길 것이다. 나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높임법을 쓸 일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어느덧 나이가 들면서 마흔을 바라보는 후배 직원이 한 직장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를 함부로 대하기가 어려웠던 나는 상대를 ‘자네’로 부르며 하게체를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 번 물꼬(?)가 트인 뒤로, 그전까지 해체로 대접하던 손아래 처남에게도 하게체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주변의 몇몇 사람들한테 구사하고 있는 하게체는 사실 온전한 것이 아니다. 상대를 가리켜 ‘자네’라고 한다거나 ‘나야’ 하는 말을 ‘나일세’로 표현하는 정도가 고작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경우는 대부분 해체의 종결법을 가져와서, ‘어서 오게’ 할 것을 ‘어서 와’ 한다거나 ‘나 먼저 가네’ 할 것을 ‘나 먼저 갈게’ 하는 식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은 하게체가 상대의 나이를 대접해주는 의미가 있는 반면 말하는 이의 권위도 어느 정도 묻어나는 말투이기도 하다는 점과 관련이 있는 듯싶다. 즉, 상대가 느낄 수도 있는 정서적 거리감을, 해체가 풍기는 친근함으로 없애 보려는 심리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아무튼 하게체는 이제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하오체와 달리 요즘도 간간이 쓰이고 있다. 이것은 하게체가 아직까지는 활용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예컨대 교수가 제자에게, 아버지가 성년을 넘긴 아들의 친구에게, 장인이나 장모가 사위에게, 손위 동서가 손아래 동서에게 하게체를 쓰는 일이 종종 있다. 물론 대부분 해체와 뒤섞여 쓰이고 있으리라 짐작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김철호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저자
[난이도 수준-중2~고1] 27. 높임법③
28. 높임법④
29. 높임법⑤ 역사 드라마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또 한 가지 높임법은 하게체다. 이렇게 사극 속의 대화에서 하게체를 쓰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나이가 엇비슷한 관계에서다. <대왕 세종>을 예로 들자면, 성균관에서 함께 공부한 동문들인 정인지ㆍ김종서ㆍ최만리 같은 인물들 사이에서 하게체가 쓰이고 있다. 또 한 가지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쓰는 경우다. 역시 <대왕 세종>을 예로 들면, 충녕대군(후일 세종)이 자신의 신하 격인 윤회에게, 그리고 중전이 손아래뻘인 후궁 희빈에게 하게체를 쓰고 있다. 방금 예로 든 하게체의 두 경우는 내용이 서로 다른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중요한 공통점이 숨어 있다. 그것은, 두 경우 모두 듣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을 때에만 쓴다는 점이다. 만일 상대가 아직 성년이 안 된 사람이라면 위의 어느 경우에나 해라체나 해체(반말체)를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것은 하게체가 어디까지나 상대를 낮추는 어법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해라체나 해체도 상대를 낮추는 어법이지만, 하게체는 상대의 나이를 대접하는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하게체는 해체나 해라체에 비해 상대를 조금 더 정중하게 대하는 어법이 된다. 자연히,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의 정서적 거리는 그만큼 멀어질 것이다. 이렇게 하게체는 상대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야 쓸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말하는 이는 그 이상으로 나이를 먹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러분같이 청소년기에 있는 사람이 하게체를 쓸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나중에 나이가 웬만큼 들었을 때(빠르면 서른 이후나 늦어도 마흔 정도에는) 이 하게체를 쓸 일이 생길 것이다. 나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높임법을 쓸 일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어느덧 나이가 들면서 마흔을 바라보는 후배 직원이 한 직장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를 함부로 대하기가 어려웠던 나는 상대를 ‘자네’로 부르며 하게체를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 번 물꼬(?)가 트인 뒤로, 그전까지 해체로 대접하던 손아래 처남에게도 하게체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주변의 몇몇 사람들한테 구사하고 있는 하게체는 사실 온전한 것이 아니다. 상대를 가리켜 ‘자네’라고 한다거나 ‘나야’ 하는 말을 ‘나일세’로 표현하는 정도가 고작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경우는 대부분 해체의 종결법을 가져와서, ‘어서 오게’ 할 것을 ‘어서 와’ 한다거나 ‘나 먼저 가네’ 할 것을 ‘나 먼저 갈게’ 하는 식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은 하게체가 상대의 나이를 대접해주는 의미가 있는 반면 말하는 이의 권위도 어느 정도 묻어나는 말투이기도 하다는 점과 관련이 있는 듯싶다. 즉, 상대가 느낄 수도 있는 정서적 거리감을, 해체가 풍기는 친근함으로 없애 보려는 심리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아무튼 하게체는 이제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하오체와 달리 요즘도 간간이 쓰이고 있다. 이것은 하게체가 아직까지는 활용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예컨대 교수가 제자에게, 아버지가 성년을 넘긴 아들의 친구에게, 장인이나 장모가 사위에게, 손위 동서가 손아래 동서에게 하게체를 쓰는 일이 종종 있다. 물론 대부분 해체와 뒤섞여 쓰이고 있으리라 짐작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김철호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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