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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제2외국어’ 일본어·중국어만 있다?

등록 2008-09-07 16:36

 국제학부를 만들고 국제화 전형을 실시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 사회는 글로벌 리더를 원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교육과정에 보장된 제2외국어조차 제대로 배울 수 없다. 사진은 지난해 중앙대 세계음식문화축제에 참석한 학생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국제학부를 만들고 국제화 전형을 실시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 사회는 글로벌 리더를 원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교육과정에 보장된 제2외국어조차 제대로 배울 수 없다. 사진은 지난해 중앙대 세계음식문화축제에 참석한 학생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외국어 선택 폭 좁은 학교 현장
학생들 불어·독어 등 배우고 싶어도
학교의 일방적 결정 강요받기 일쑤
입시준비 바쁜 고2·2때 배정도 문제
커버스토리 /

부산의 오아무개(17)양은 지난 학기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중국어 학원에 다녔다. 학교에서 배우는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선택했지만 수업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상 고2가 되니까 일본어 수업만 있었어요. 중국어를 듣고 싶은 사람은 방학 때 부산외대에 가서 청강하라는 말뿐이었어요.” 오양의 학교에는 중국어 교사가 없다. 일본어 교사만 둘이다. 버스로 20분을 가야 하는 곳에 있는 학원에 다녔지만 금세 지치고 말았다. 결국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겠다는 포부도 접었다.

서울교육청이 국제중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등 ‘국제화된 인재 양성’은 끊임없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공교육이 제공하는 ‘국제화’ 교육의 기회는 외려 뒷걸음질이다. 영어를 뺀 유일한 국제화 교육인 제2외국어 교육은 나날이 위축된다. 교육통계연보를 보면 1998년에는 전체 고교생의 79%(111만4220명)가 5개 외국어(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 에스파냐어)를 공부했다. 반면 2007년에 7개 외국어(러시아어, 아랍어 추가)를 공부하는 학생은 전체 고교생의 46.4%(62만6274명)에 그쳤다.

2001년 제7차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교육과정의 선택 폭은 넓어졌다. 학생 스스로 진로를 설계하고 이에 맞춰 교육과정을 짜도록 한 것이다. 제2외국어 교육의 선택도 넓어졌다. 아랍어가 추가돼 선택할 수 있는 제2외국어도 7개로 늘어났다. 하지만 아이들은 학교에서 중국어와 일본어만의 선택을 강요받기 일쑤다. 독일어 불어 등 나머지 5개 제2외국어를 배우고 싶은 학생들은 설 자리가 없다. 지난해 제2외국어를 배우는 학생 가운데 62%는 일본어, 26%는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경남 진주의 강민주(16)양은 “진주시에는 불어를 선택하는 학교가 한 곳 뿐인데 통학이 너무 불편하고 경쟁률이 높아 포기했다”며 “불어가 정말 하고 싶어서 독학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학원도 없고 다른 공부에 쫓기다 보니 손도 못대고 있다”고 했다.

물론 일본어나 중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학생 선택권은 없고 학교의 선택권만 있다보니, 제2외국어 교육의 편중 현상이 날로 깊어진다. 김일환 전 한국독일어교사회 회장(선유고 교사)은 “제7차 교육과정의 목표가 수요자의 희망과 선택을 존중하는 것인데 기타 외국어를 배우고 싶은 학생들의 희망과 요구를 수렴할 대안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특정 제2외국어를 제외하면 나머지 제2외국어는 무시할 정도인가? 2008학년도 수능에서 아랍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해 응시한 학생은 1만3588명이다. 일부 입시기관에서는 아랍어가 높은 등급을 받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지만 전문가의 견해는 다르다. 김종도 명지대 국제지역학부 교수는 “입시에 유리해서 선택하는 학생들도 일부 있는 것 같지만, 이슬람세계에 대한 소개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고 중요성도 날로 부각되면서 흥미를 느끼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봐야한다”고 했다. 아랍어는 2001년 제2외국어 과목으로 정식 채택됐다. 그러나 여태까지 아랍어가 개설된 학교는 한 군데도 없고 아랍어 교사 임용도 없었다.

수능시험이 제2외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처지를 현실적으로 고려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수능시험 제2외국어의 경우 일반계고와 외국어고출신자들이 같은 시험을 본다. 이들 학교의 제2외국어 수업 이수단위는 크게 5배 까지 차이가 난다. 제2외국어를 전형요소로 반영하는 서울대와 연세대에 지원하는 일반계고 학생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파견돼 수능 불어 시험 등을 출제하는 윤선영 대영고 불어 교사는 “수능 불어 영역에 응시하는 학생의 20%가 외고생”이라며 “결국 외고생을 변별하는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게 된다”고 했다.


국제화 교육의 기본은 외국어 교육이다. 학교에서 제2외국어를 접할 수 있는 학년을 더욱 낮추고, 제2외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전태중 한국일본어교육연구회 회장(서울 강서고 교사)은 “입시에 영향이 거의 없으면서도 입시에 가장 민감한 시기인 고2, 고3 때 제2외국어를 배우게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했다. 경남 창원의 최정빈(17)양은 “이왕 배우는 거 중학교 때 제대로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중학교때 한문 대신 일본어를 공부해 그쪽으로 자기 진로를 정한 뒤에 외고에 간 친구를 보면 부럽다”고 했다. 7차 교육과정은 중학교에서도 생활외국어로 7개 외국어를 배울 수 있게 했지만 90%를 넘는 학교가 한문과 컴퓨터를 선택하고 생활외국어를 선택하는 학교는 26%에 지나지 않는다.

2005년 결성된 한국제2외국어정상화추진연합은 당시 교육혁신위원회에 내는 정책제안서를 통해 중학교에서 기초과정인 제2외국어Ⅰ을 필수로 이수하고 고교에서 심화과정인 제2외국어Ⅱ를 선택적으로 이수하는 제도를 제안한 적이 있다. 특정 지역에서 거점 방과후 학교를 만들어 제2외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하거나, 대학과 연계해 방학 등을 활용해 제2외국어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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