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의 교문지도는 교사와 학생회 간부들이 함께 맡는 일이 많다. 학생회를 ‘학교 편’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이유다.(왼쪽)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학생회가 잘되는 학교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민주적이다. 학생들이 직접 선거로 뽑는 학생회가 학교민주주의의 척도인 이유다.(오른쪽) 〈한겨레〉 자료사진
등교시간 교문지도 하며 교사묵인 속 폭력 휘둘러…구타당한 학생 숨지기도
존댓말로 학생 공감얻고 체벌없이 벌점표 기록만…교칙 바꿀 수 있는 권리도
“학생회의 지키지 못할 약속들. 1.두발 자유화를 하겠다. 2.급식을 개선하겠다. 3.학생회를 적극 운영하겠다.” <학교대사전>(학교대사전 편찬위원회, 이레, 2005)에 실린 내용이다. 학생회의 공약(公約)도 공약(空約)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학생회는 어느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전락했다. 정말 학생회는 없어도 될까. 3일 학생의 날을 맞아, 학생자치의 시금석인 학생회의 현주소를 찾아봤다. 두 고교의 사례는 그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ㄱ고에 없는 것 지난 10월27일 아침, ㄱ고의 교문에는 학생회장이 없었다. 아침마다 교문을 지키며 머리 길이나 교복 차림새를 단속하고 지각생을 벌주던 그였다. 학생회장 ㅂ(18)군은 일주일 전 한 학생을 때려서 숨지게 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중이었다. 3학년 ㅇ(18)군은 “학교에서 소외당하는 애들한테 친절하게 대하고 예의도 바른 애였다”며 “학생회장 잘 뽑았다는 얘기들이 돌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ㄱ고에는 학생을 위한 학생회가 없었다. 학생회의 구실은 교사들의 학생 생활 지도를 대리하는 것이었다. 등교시간에 하는 교문 지도가 학생회의 몫이었다. 이를 위해 교사와 학생회 간부 등이 추천하는 15명의 학생으로 지도부를 꾸렸다. 2학년 ㅇ(17)군은 “지각생들한테는 지도부 형들이 오리걸음이나 앉았다 일어섰다 100~200개 등의 벌칙을 준다”고 말했다.
학생회 간부들의 벌칙이 도를 넘는 일도 있었다. 지각을 피하려고 담을 넘은 한 학생은 학생회 간부 ㄱ(18)군한테 맞아 고막이 터지기도 했다. 교사들은 이때 학생회가 가진 권한의 선을 긋지 않았다. ㄱ군은 “때리는 기술도 없으면서 주먹을 썼다고 혼났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이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면 회장의 폭력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숨진 학생은 조회에 나가지 않고 회장의 지도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ㅂ군에게 맞았다. 이 사건으로 온 학교가 혼란에 빠졌지만 수습에 나서는 주체가 없다. 그 흔한 ‘진상조사위원회’조차 꾸려지지 않았다. 학생회 차원에서 ㅂ군을 면회하는 일도 없었다. ‘학교 폭력 추방’을 위한 거리 시위가 있었지만 시위에 참석했던 학생들은 누가 왜 시위를 조직했는지도 모른다. 2학년 ㅊ(17)군은 “장례식장에 조문가려고 나선 건데 어느 틈에 거리로 나가게 됐다”며 “처음부터 시위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구성원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학교는 언론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제대로 된 학생자치가 없었던 ㄱ고가 처한 현실이다.
#ㅇ고에 있는 것 “죄송한데 학생카드 갖고 계세요?” ㅇ고의 교문 지도에는 존댓말이 있다. 학생회 간부들이 교문 지도를 하는 건 여느 학교와 같았지만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이 학교 학생회장 ㄱ(17)양은 “학기 초에 교문 지도와 관련한 교육을 실시한다”며 “친구나 후배한테도 존댓말을 쓰라는 것은 교문 지도의 첫째 원칙”이라고 말했다. 교문 지도를 하더라도 벌을 주는 일은 없다. 벌점표에 위반 사항을 기록할 뿐이다. 교표나 학생카드를 지니지 않았으면 1점, 양말이나 신발이 교칙에 어긋났다면 2점, 두발에 문제가 있다면 3점, 교복이 불량하다면 4점 등 기준이 뚜렷하다.
ㅇ고에는 학생들의 ‘참여’가 있다. 학생회의 다양한 사업 덕이다. 매 학기 초에 학생회 미화부는 모든 학급을 대상으로 환경미화 심사를 진행한다. 최우수 세 팀을 뽑아 매점상품권을 주는 행사라 학생들의 참여가 뜨겁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미화부는 심사 기준표를 직접 만든다. 기준표는 4개 영역에 23개 세부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최근에는 3학년 선배들을 위해 캠페인을 진행했다. 좋아하는 명언이나 경구를 적어 내면 학생회가 책갈피로 손수 만들어 전달하는 식이었다. 3학년 ㅅ(18)양은 “화장실 문에 붙은 게시판에 생일을 적으면 학생회가 축하카드를 보내주기도 한다”며 “학생회가 열심히 활동하는 덕에 학생들이 혜택을 보는 게 많다”고 말했다.
ㅇ고 학생들은 교칙을 바꿀 수도 있다. 해마다 한 번씩 열리는 교칙공청회를 통해서다. 여기서는 누구나 참여해 교칙에 대한 불만을 얘기할 수 있다. 지난해 교칙공청회에서는 양말에 대한 규제를 풀어 발목양말을 신을 수 있게 됐다. 공청회는 학생회 자율부가 진행한다. ㅇ고에는 학생회가 중심이 된 학생자치가 있는 것이다. 학생회를 맡은 ㅈ교사는 “학생회가 내는 의견은 교장선생님이나 학교가 최대한 수용하려고 한다”며 “학생회 활동이 잘되는 이유는 교사가 학생을 존중하는 교풍 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학생회 간부들의 벌칙이 도를 넘는 일도 있었다. 지각을 피하려고 담을 넘은 한 학생은 학생회 간부 ㄱ(18)군한테 맞아 고막이 터지기도 했다. 교사들은 이때 학생회가 가진 권한의 선을 긋지 않았다. ㄱ군은 “때리는 기술도 없으면서 주먹을 썼다고 혼났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이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면 회장의 폭력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숨진 학생은 조회에 나가지 않고 회장의 지도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ㅂ군에게 맞았다. 이 사건으로 온 학교가 혼란에 빠졌지만 수습에 나서는 주체가 없다. 그 흔한 ‘진상조사위원회’조차 꾸려지지 않았다. 학생회 차원에서 ㅂ군을 면회하는 일도 없었다. ‘학교 폭력 추방’을 위한 거리 시위가 있었지만 시위에 참석했던 학생들은 누가 왜 시위를 조직했는지도 모른다. 2학년 ㅊ(17)군은 “장례식장에 조문가려고 나선 건데 어느 틈에 거리로 나가게 됐다”며 “처음부터 시위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구성원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학교는 언론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제대로 된 학생자치가 없었던 ㄱ고가 처한 현실이다.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에 다시 보는 학생회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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