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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딱딱한 개념도 머리에 쏙쏙~ ‘이야기의 힘’

등록 2009-01-11 16:23

“공양미 삼백 석은 얼마일까?” 학부모 이승희씨와 그의 자녀들이 효녀 심청 이야기를 따라 설치된 어린이민속박물관의 전시물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공양미 삼백 석은 얼마일까?” 학부모 이승희씨와 그의 자녀들이 효녀 심청 이야기를 따라 설치된 어린이민속박물관의 전시물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창의적 문제해결능력
창의 교육 현장 / 스토리텔링 활용 수업·전시

교육 내용에 이야기 접목
지식 쌓고 사고력도 키워
‘열린 시선’ 배우는 효과도

서울 수명초등학교 변영애 교사의 도덕 수업엔 ‘이야기’가 있다. ‘줄거리와 구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이야기’, 즉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활용한 수업이다.

“덴마크에서 실제 일어난 일입니다. 거리에 심은 사과나무가 어찌나 탐스러운지 관광객들 눈이 휘둥그레졌죠. 그런데 모두들 그걸 어떻게 살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거리에 놓인 돈통을 보게 됩니다.”

지난 학기, 변 교사가 5학년 도덕 시간에 학생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통에 돈을 넣어 값을 치른다면 사과를 가져갈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를 알게 된 관광객들은 사과 값에 해당하는 돈을 넣고 사과를 딴다. 짤막한 이 이야기는 ‘정직’의 개념을 알려주는 좋은 수업 도구가 됐다. 오랫동안 스토리텔링을 활용해 수업을 하고 있는 변 교사는 “여러 효과가 있겠지만 일단 이야기 자체가 흥미를 끌기 때문에 집중력과 참여도가 높다”고 했다. “특히 도덕, 사회, 국어과에 잘 맞죠. 효도, 질서 등의 개념을 단순히 설명하거나 암기하게 하는 방법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적절한 상황이 담긴 짧은 이야기 하나가 학생들을 집중하게 하죠.”


스토리텔링이란, ‘맥락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말한다. 가르치는 사람에 따라 수업의 형식은 다르지만 보통 가치가 있는 우화나 동화 등을 들려주고, 그것과 관련해 다양한 질문을 나누는 식으로 진행된다.

‘스토리텔링’은 올 겨울방학 각종 전시관 교육의 열쇳말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심청이를 꼽으라면 누가 있을까요?” 지난 12월23일 재개관한 어린이민속박물관 전시관 벽에 적힌 질문이다. 민속물을 소개하는 전시장에서 이런 질문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이 전시가 ‘스토리텔링’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단순히 ‘조선 후기 민속물’을 만나는 게 아니다. 효녀 심청의 이야기 구조에 따라 전시관을 둘러보고, 심청 이야기가 가장 사랑받았던 조선 후기 민속물을 함께 만난다. 박물관 쪽은 효녀 심청을 중심에 두고 나올 수 있는 질문들을 던져놓았다. 예를 들면, “공양미 삼백 석은 얼마나 될까요?”처럼 역사, 수학 분야에 걸쳐 있는 질문도 있고, “앞을 못 본 심 봉사가 어떻게 심청이를 키웠을까요?”처럼 상상력을 자극하는 질문도 있다. “상상력, 사고력 등 통합적인 능력을 길러주면서 민속물을 만나게 하자는 의도였어요. 그러다 스토리텔링 방식이 적절할 거라는 판단이 섰고요. 효녀 심청이요? 의외로 아이들이 잘 모른다는 설문조사가 나오기도 했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여지가 많다는 점도 고려해 선정했죠.” 섭외교육과 학예연구사 이은미씨는 의식주, 명절 등 비교적 추상적인 주제로 전시관을 꾸리다 스토리텔링을 도입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여자친구 루씨는 오렌지를 너무 싫어합니다. 반대로 같은 마을에 사는 어린 강아지 루씨는 오렌지를 무척 좋아하죠. 이 전시는 강아지 루씨와 어린이 루씨가 미술관에 들어와 탐험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지난 1월3일 어린이미술관 헬로우뮤지움에선 스토리텔링을 이용한 미술 전시교육이 있었다. ‘동물 그림과 함께하는 스토리텔링전’의 주제는 ‘인격을 가진 생명체에 대한 사랑’이다. 담당 큐레이터 이진희씨는 “사랑, 인격 등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맥락이 있는 이야기로 들려주고, 관련 전시물을 본 다음, 실제 자기 생각을 적거나 그려보도록 하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실제 여러 작품들 가운데 윤석남씨의 유기견 관련 작품을 본 학생들은 “나는 유기견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놓고 글로 답하거나 이를 그림으로 표현해 발표했다.

스토리텔링이 교육에 활용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기본적으로는 ‘이야기’의 특성상 ‘흥미 요소’가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강원대학교 스토리텔링학과 박정애 교수는 “‘스토리텔링’이란 말이 인기 용어가 돼서 그렇지 사실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이 세계를 인지하는 기본 방식으로 인간과 매우 친근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개별 단어는 잘 외워지지 않지만 어떤 이야기 안에 있는 단어는 비교적 잘 외워지잖아요. 그만큼 인간에게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박 교수는 “특히 맥락이 있는 이야기들은 지성과 감성을 동시에 자극할 수 있는 텍스트”라고 했다. “보통 주인공이 있는 문학적 스토리라서 감성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지성 영역에 있는 정보도 제공하거나 논리적인 사고를 유도하죠.”

“얼마든지 고쳐 쓸 수 있다”는 이야기의 특성을 잘 활용하면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연습을 하기에도 좋다. 실제 변영애 교사는 특히 의사결정 과정이 담긴 이야기를 놓고 다양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 ‘나’였다면 어땠을지, 다른 해결 방법은 없을지 등을 생각하게 하고, 결말을 다시 써보게 하는 활동이 대표적이다. 변 교사는 “그 지점에서 합리적인 판단력이 길러질 수 있다”고 했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좋은 질문이 주어진다면 ‘이야기의 힘’은 놀라운 성과를 발휘한다. 박 교수는 “스토리텔링 교육이 주는 큰 효과 중 하나는 한 가지 시선으로 보지 않게 하는 것”이라며 “그만큼 창의적인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길러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심청이의 경우, 부모보다 먼저 죽는 걸 불효로 볼 수도 있죠.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고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심청이가 과연 효녀인 건지, 다른 선택을 한다면 어떤 것이 나올 수 있는지 등 이야기를 나눠볼 수도 있죠. 스토리텔링 교육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한 가지로 고정된 잣대나 시선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게 하는 겁니다.”

글ㆍ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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