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7월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 포로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정부기록
우리말 논술 10. 문학 교과서로 논술 접근하기
과목별 논술교과서 / [난이도 수준-중2~고1]
교과서 읽기 / 논점 1. 장용학 <요한시집>으로 본 삶에 대한 태도
줄거리
토끼의 우화: 한 옛날 깊은 산속 굴에 토끼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토끼는 굴에 비치는 일곱 색깔의 근원인 바깥 세계를 동경하기 시작하였으나 나갈 구멍을 찾을 수 없었다. 얼마 후 자기 생일날 토끼는 문득 무언가 깨닫고는 창 쪽으로 발돋움해 그쪽으로 손을 대었다. 그러자 무지갯빛이던 방 안이 까맣게 되었고, 이에 충격을 받은 토끼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열이 물러가자 토끼는 그 창을 통하여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 토끼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굴의 입구에 다다르게 된다. 떨리는 마음으로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 토끼는 너무나 강렬한 태양 광선에 눈이 멀어 쓰러져 버렸다. 일곱 가지의 색깔만 보아온 그의 눈은 자연의 태양 광선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토끼는 그 후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뜨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갈 길을 영영 잃을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 토끼가 죽은 후 그 자리에 버섯이 났는데 동물들은 그것을 ‘자유의 버섯’ 이라고 부르며 그것에 제사 지냈다.
상: ‘나’(동호)는 누혜가 죽은 뒤 반공 포로 수용소에서 나오자마자 누혜의 어머니를 만나기 위하여 하꼬방(판잣집)으로 찾아간다. 누혜는 포로수용소에서 나를 비웃지 않은 유일한 벗이다. 누혜가 죽은 뒤로 나는 배가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나에게 주어진 자유는 오히려 무거움, 또 다른 포로수용소의 문에 지나지 않았다. ‘나’가 찾아간 하꼬방에는 중풍에 걸린 채 아사(餓死)의 위기에 처한 노파가 있었다. 나는 노파를 주시하던 중 그녀와 고양이의 행동을 통하여 그녀가 고양이가 잡아다 주는 쥐를 먹으며 연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구토와 살의를 느끼게 된다. 나는 노파에게서 쥐를 빼앗아 고양이의 면상에 팽개치곤 그녀의 가슴으로 엎어진다. 그리고 노파의 손목에 매달려 어린애처럼 어머니를 부른다. 잠시 후 “누혜!” 하고 마지막으로 절규한 후 노파는 죽는다. 그때 고양이의 두 눈이 파란 요기를 뿜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누혜의 눈처럼 느낀다.
중: 누혜는 철조망에 목을 매고 자살했다. 죽기 전 그는 누워 푸른 하늘을 쳐다보기를 좋아했고, 봉황새나 용이 되어 하늘 너머로 날아가고 싶어했다. 그는 최고 훈장을 받은, 누구보다 용맹했던 괴뢰군이었지만 수용소 안에서는 그런 그의 삶과는 다르게 행동했다. 그는 생명을 장난감처럼 여기는 수용소 내의 비인간적인 살인 행위에 절망을 느꼈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타락한 인민의 적으로 몽둥이질, 발길질을 당했다. 결국 그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하: 누혜의 유서에는 그의 삶의 발자취와 실존적 고민이 담겨 있다. 유서에 따르면 누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인민의 벗이 되고자 당(黨)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에 들어가 보니 인민(人民)은 거기에 없고 인민의 적(敵)을 죽임으로써 인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모순의 벽을 뚫어 보기 위하여 전쟁에 뛰어들었고 결국 포로가 된다. 포로 생활을 하면서 그의 실존과 자유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갔고 결국 그는 모순된 현실을 탈출하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으로 자살을 택하게 된다. 작품 이해의 실마리 이 소설은 머리말에 해당하는 토끼의 우화와 상·중·하의 본문으로 구분되는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토끼의 우화는 대개 소설 전체의 주제를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우화가 소설의 첫머리에 자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화와 본문의 내용이 서로 대응되기 때문이다. 우화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토끼가 ‘자유’를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동굴 속에 살고 있던 토끼는 자신이 느끼는 빛의 근원을 찾아서 바깥 세계를 향해 동굴을 탈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굴을 벗어나자마자 눈이 먼 상황은 이러한 기본적인 이해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게 한다. 자유를 성취했음에도 눈이 멀어 자신의 고향인 동굴 주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설정은 토끼의 이상(理想)이 실제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소설이 창작된 시대적 배경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는 좌익과 우익이라는 치열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의하여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막을 내린 직후였다. 마음의 상처와 폐허만 남은 상황에서 인간은 실존적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이는 <요한시집> 외에도 다수의 전후 소설을 낳게 한 중요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주제에 대한 작가의 말 “주제는 자유를 ‘요한’(John)적인 존재로 본 데에 있다. (…) 예수가 올 길을 닦고 요한이 죽은 것처럼 그 ‘무엇’이 오려면 ‘자유’가 죽어야 한다. 그래서 자유를 죽이려고 한 것이 이 작품이다.”
교과 심화 실존주의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생(生)의 철학’이나 현상학의 계보를 잇는 이 철학 사상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문학이나 예술의 분야에까지 확대하여 오늘날에는 세계적인 한 유행 사조가 되었다. 실존이란 말은 원래 철학용어로서 어떤 것의 본질이 그것의 일반적 본성을 의미하는 데 대하여, 그것이 개별자로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여, 옛날에는 모든 것에 관해 그 본질과 실존(존재)이 구별되었다. 그러나 하이데거나 야스퍼스에서는 실존이란 특히 인간의 존재를 나타내는 술어로 사용된다. 그것은 인간의 일반적 본질보다도 개개의 인간의 실존, 특히 타자(他者)와 대치(代置)할 수 없는 자기 독자의 실존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선구자로서는 키르케고르나 포이어바흐를 들 수 있다. -<위키 백과사전> 거제도 포로 폭동사건 6·25전쟁중이던 1952년 공산군 포로를 집단수용하고 있던 거제도에서 발생한 포로들의 폭동사건이다. 당시 거제도에는 약 13만2000명의 포로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포로들은 북한과 중국으로 돌아가려는 공산 포로와 돌아가지 않으려는 반공 포로로 나뉘어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이들이 대립·분열된 이유는 국제연합(UN)군 측이 포로 개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한국, 북한, 중국, 또는 타이완을 선택할 수 있는 이른바 자유송환원칙을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공산군 측은 모든 북한 공산군과 중공군 포로는 무조건 각기의 고국에 송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략)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논제 해결 주어진 삶의 조건에 대응하는 태도 <논제> 제시문 (가) 속의 토끼가 인간이라고 하는 가정하에, 제시문 (가)와 (나)에 나타난 삶의 태도를 비교 분석하고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건국대 기출 변형) (가) 한 옛날 깊고 깊은 산속에 굴이 하나 있었습니다. 토끼 한 마리 살고 있는 그것은 일곱 가지 색으로 꾸며진 꽃 같은 집이었습니다. (중략) 도무지 불행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일곱 가지 무지개 색밖에 거기에는 없었으니까요. 그러던 그가 그 일곱 가지 고운 빛이 실은 천장 가까이에 있는 창문 같은 데로 흘러든 것이라는 것을 겨우 깨닫기는 자기도 모르게 어딘지 몸이 간지러워지는 것 같으면서 그저 까닭 모르게 무엇이 그립고 아쉬워만 지는 시절에 들어서였습니다. 말하자면 이 깊은 땅속에도 사춘기는 찾아온 것이었고, 밖으로 향했던 그의 마음이 내면으로 돌이켜진 것입니다. 그는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고운 빛을 흘러들게 하는 저 바깥 세계는 얼마나 아름다운 곳일까 ….’ 이를테면 그것은 하나의 개안(開眼)이라고 할까, 혁명이었습니다. 이때까지 그렇게 탐스럽고 아름답게 보이던 그 돌집이 그로부터 갑자기 보잘것없는 것으로 비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는 올빼미가 울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략) 그러나 그것은 그에 못지않게 위험한 사상이었습니다. 손만 가져갔어도 세계는 새까맣게 꺼져 버리지 않았습니까. 열(熱)은 물러갔습니다. 그는 창으로 기어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다가 넓어진 데도 있었지만 벌레처럼 뱃가죽으로 기면서 비비고 나가야 했습니다. 살은 터지고 흰 토끼는 빨갛게 피투성이였습니다. 그 모양을 멀리서 보면 마치 숨통을 꾸룩꾸룩 기어오르는 객혈(喀血) 같았을 것입니다. (중략) 드디어 마지막 관문에 다다랐습니다. 이제 저 바위틈으로 얼굴을 내밀면 그 일곱 가지 색 속에 소리의 리듬이 춤추는 흥겨운 바깥 세계는 그에게 현란한 파노라마를 펼쳐 보이는 것입니다. 전율하는 생명의 고동에 온몸을 맡기면서 그는 가다듬었던 목을 바위틈 사이로 쑥 내밀며 최초의 일별(一瞥)을 바깥 세계로 던졌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쿡! 십 년을 두고 벼르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홍두깨가 눈알을 찌르는 것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만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얼마 후, 정신을 돌린 그 토끼의 눈망울에는 이미 아무것도 비쳐 드는 것이 없었습니다. 소경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일곱 가지 색으로 살아온 그의 눈은 자연의 태양 광선을 감당해 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나) 그런데 저 엄항수라는 이는 일찍이 나에게 지면(知面)을 요구한 적이 없었지만, 나는 언제나 그를 칭찬하려는 마음이 간절하였다네. (중략) 왕십리의 배추, 살곶이 다리의 무, 석교(石郊)의 가지, 오이, 수박, 호박, 연희궁의 고추, 마늘, 부추, 파, 염교 청파의 물미나리, 이태인(이태원)의 토란 따위를 심는 밭들은 그중 상(上)의 상을 골라 쓰되, 그들이 모두 엄씨의 똥을 써서 기름지고 살지고 평평하고 풍요로워, 해마다 육천 냥이나 되는 돈을 번다는 거야. 그렇지만 엄항수는 아침에 밥 한 그릇만 먹고도 기분이 만족해지고, 저녁에도 한 그릇뿐이지. 남들이 그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권하면, ‘목구멍에 내려가면 나물이나 고기나 마찬가지로 배부른데, 왜 맛있는 것만 가리겠소?’하면서 사양했다네. 또 남들이 새 옷을 입으라고 권하면, ‘넓은 소매 옷을 입으면 몸에 익숙지 않고, 새 옷을 입으면 길가에 똥을 지고 다니지 못할 게 아니오?’ 하면서 사양했다네. 해마다 정월 초하룻날이 되면 비로소 갓을 쓰고 띠를 띠며, 새 옷에다 새 신을 신었지. 이웃 동네 어른들에게 두루 돌아다니며 세배를 올리고, 다시 돌아와 옛 옷을 찾아 입더군. 다시금 흙 삼태기를 메고는 동네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거지. 엄항수야말로 자기의 모든 덕행을 저 더러운 똥 속에다 커다랗게 파묻고, 이 세상에 참된 은사(隱士) 노릇을 하는 자가 아니겠는가? (중략) 엄항수는 똥과 거름을 져 날라서 스스로 먹을 것을 장만하기 때문에, 그를 지극히 조촐하지는 않다고 말할는지는 모르겠네. 그러나 그가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방법은 지극히 향기로웠으며, 그의 몸가짐은 지극히 더러웠지만 그가 정의를 지킨 자세는 지극히 고항(高抗)했으니, 그의 뜻을 따져 본다면 비록 만종의 녹을 준다고 하더라도 바꾸지 않을걸세. 이런 것들로 살펴본다면 세상에는 조촐하다면서 조촐하지 못한 자도 있고, 더럽다면서 더럽지 않은 자도 있다네. 그래서 나는 음식을 먹다가 차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차려졌을 때에는 반드시 나보다도 못한 사람을 생각했다네. 그런 엄항수의 경지에 이른다면 견디지 못할 게 없겠지. -박지원, <예덕선생전> ◎ 해결 방향 제시된 두 글은 주어진 삶의 조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제기하고 있다. 제시문 (가)에서는 주어진 조건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위험을 무릅쓰며 좀더 나은 삶을 위해 도전하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며, 제시문 (나)에서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와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양쪽 모두 자신의 삶에 대해 ‘의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능동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양쪽의 삶에 대한 태도에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제시문 (가)의 토끼는 삶의 전환점에서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무작정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다가 결국은 눈이 멀게 되었고, 눈이 먼 이후에는 자신이 나온 구멍 주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태도와는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지나치게 급진적인 태도가 초래하는 부정적 상황에 대하여 비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제시문 (나)의 경우 그것이 과연 진정한 행복이며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엄항수의 태도는 사회적 질서를 거스르지 않고, 그 속에서 자신의 직분을 다하는 것 자체에 만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삶의 태도는 개인과 사회와의 조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반대로 사회 질서의 부조리함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비합리적인 사회제도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이 가능하다. 논제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답안을 서술하려면 이렇게 각 제시문에 나타난 삶의 태도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필요하다. 단지 제시문 (가)는 진취적이고 제시문 (나)는 소극적이거나 분수에 맞춰 사는 것이라는 식으로 단순화해 상투적인 결론을 내린다면, 이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제시문에 대해 편견을 갖지 말고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지 않도록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방향에서 제시문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창의적인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다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자료 검색 장용학 1921년 함북 부령에서 태어나 1940년에 경성공립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1942년 와세다대학 상과에 입학한 후 학병으로 일본군에 입대했다가 해방과 더불어 귀국했다. 1950년 5월 ‘지동설’이 <문예>지에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이후 교사와 신문사 논설 위원 등을 역임하며 창작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전후 사회에서의 인간의 삶의 모습에 관한 작품을 주로 발표하였다. 작품으로는 ‘기상도’(1954), ‘그늘진 사찹’(1955), ‘현대의 야’(1960), ‘원형의 전설’(1962) 등이 있다. 관련 작품(전후 소설) 전후 소설은 전쟁 이후의 삶의 상황과 문제를 다룬 소설을 말한다. 최인훈의 ‘광장’, 손창섭의 ‘비 오는 날’ 등이 대표적인 소설이다.
중: 누혜는 철조망에 목을 매고 자살했다. 죽기 전 그는 누워 푸른 하늘을 쳐다보기를 좋아했고, 봉황새나 용이 되어 하늘 너머로 날아가고 싶어했다. 그는 최고 훈장을 받은, 누구보다 용맹했던 괴뢰군이었지만 수용소 안에서는 그런 그의 삶과는 다르게 행동했다. 그는 생명을 장난감처럼 여기는 수용소 내의 비인간적인 살인 행위에 절망을 느꼈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타락한 인민의 적으로 몽둥이질, 발길질을 당했다. 결국 그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하: 누혜의 유서에는 그의 삶의 발자취와 실존적 고민이 담겨 있다. 유서에 따르면 누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인민의 벗이 되고자 당(黨)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에 들어가 보니 인민(人民)은 거기에 없고 인민의 적(敵)을 죽임으로써 인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모순의 벽을 뚫어 보기 위하여 전쟁에 뛰어들었고 결국 포로가 된다. 포로 생활을 하면서 그의 실존과 자유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갔고 결국 그는 모순된 현실을 탈출하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으로 자살을 택하게 된다. 작품 이해의 실마리 이 소설은 머리말에 해당하는 토끼의 우화와 상·중·하의 본문으로 구분되는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토끼의 우화는 대개 소설 전체의 주제를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우화가 소설의 첫머리에 자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화와 본문의 내용이 서로 대응되기 때문이다. 우화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토끼가 ‘자유’를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동굴 속에 살고 있던 토끼는 자신이 느끼는 빛의 근원을 찾아서 바깥 세계를 향해 동굴을 탈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굴을 벗어나자마자 눈이 먼 상황은 이러한 기본적인 이해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게 한다. 자유를 성취했음에도 눈이 멀어 자신의 고향인 동굴 주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설정은 토끼의 이상(理想)이 실제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소설이 창작된 시대적 배경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는 좌익과 우익이라는 치열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의하여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막을 내린 직후였다. 마음의 상처와 폐허만 남은 상황에서 인간은 실존적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이는 <요한시집> 외에도 다수의 전후 소설을 낳게 한 중요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주제에 대한 작가의 말 “주제는 자유를 ‘요한’(John)적인 존재로 본 데에 있다. (…) 예수가 올 길을 닦고 요한이 죽은 것처럼 그 ‘무엇’이 오려면 ‘자유’가 죽어야 한다. 그래서 자유를 죽이려고 한 것이 이 작품이다.”
교과 심화 실존주의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생(生)의 철학’이나 현상학의 계보를 잇는 이 철학 사상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문학이나 예술의 분야에까지 확대하여 오늘날에는 세계적인 한 유행 사조가 되었다. 실존이란 말은 원래 철학용어로서 어떤 것의 본질이 그것의 일반적 본성을 의미하는 데 대하여, 그것이 개별자로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여, 옛날에는 모든 것에 관해 그 본질과 실존(존재)이 구별되었다. 그러나 하이데거나 야스퍼스에서는 실존이란 특히 인간의 존재를 나타내는 술어로 사용된다. 그것은 인간의 일반적 본질보다도 개개의 인간의 실존, 특히 타자(他者)와 대치(代置)할 수 없는 자기 독자의 실존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선구자로서는 키르케고르나 포이어바흐를 들 수 있다. -<위키 백과사전> 거제도 포로 폭동사건 6·25전쟁중이던 1952년 공산군 포로를 집단수용하고 있던 거제도에서 발생한 포로들의 폭동사건이다. 당시 거제도에는 약 13만2000명의 포로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포로들은 북한과 중국으로 돌아가려는 공산 포로와 돌아가지 않으려는 반공 포로로 나뉘어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이들이 대립·분열된 이유는 국제연합(UN)군 측이 포로 개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한국, 북한, 중국, 또는 타이완을 선택할 수 있는 이른바 자유송환원칙을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공산군 측은 모든 북한 공산군과 중공군 포로는 무조건 각기의 고국에 송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략)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논제 해결 주어진 삶의 조건에 대응하는 태도 <논제> 제시문 (가) 속의 토끼가 인간이라고 하는 가정하에, 제시문 (가)와 (나)에 나타난 삶의 태도를 비교 분석하고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건국대 기출 변형) (가) 한 옛날 깊고 깊은 산속에 굴이 하나 있었습니다. 토끼 한 마리 살고 있는 그것은 일곱 가지 색으로 꾸며진 꽃 같은 집이었습니다. (중략) 도무지 불행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일곱 가지 무지개 색밖에 거기에는 없었으니까요. 그러던 그가 그 일곱 가지 고운 빛이 실은 천장 가까이에 있는 창문 같은 데로 흘러든 것이라는 것을 겨우 깨닫기는 자기도 모르게 어딘지 몸이 간지러워지는 것 같으면서 그저 까닭 모르게 무엇이 그립고 아쉬워만 지는 시절에 들어서였습니다. 말하자면 이 깊은 땅속에도 사춘기는 찾아온 것이었고, 밖으로 향했던 그의 마음이 내면으로 돌이켜진 것입니다. 그는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고운 빛을 흘러들게 하는 저 바깥 세계는 얼마나 아름다운 곳일까 ….’ 이를테면 그것은 하나의 개안(開眼)이라고 할까, 혁명이었습니다. 이때까지 그렇게 탐스럽고 아름답게 보이던 그 돌집이 그로부터 갑자기 보잘것없는 것으로 비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는 올빼미가 울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략) 그러나 그것은 그에 못지않게 위험한 사상이었습니다. 손만 가져갔어도 세계는 새까맣게 꺼져 버리지 않았습니까. 열(熱)은 물러갔습니다. 그는 창으로 기어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다가 넓어진 데도 있었지만 벌레처럼 뱃가죽으로 기면서 비비고 나가야 했습니다. 살은 터지고 흰 토끼는 빨갛게 피투성이였습니다. 그 모양을 멀리서 보면 마치 숨통을 꾸룩꾸룩 기어오르는 객혈(喀血) 같았을 것입니다. (중략) 드디어 마지막 관문에 다다랐습니다. 이제 저 바위틈으로 얼굴을 내밀면 그 일곱 가지 색 속에 소리의 리듬이 춤추는 흥겨운 바깥 세계는 그에게 현란한 파노라마를 펼쳐 보이는 것입니다. 전율하는 생명의 고동에 온몸을 맡기면서 그는 가다듬었던 목을 바위틈 사이로 쑥 내밀며 최초의 일별(一瞥)을 바깥 세계로 던졌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쿡! 십 년을 두고 벼르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홍두깨가 눈알을 찌르는 것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만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얼마 후, 정신을 돌린 그 토끼의 눈망울에는 이미 아무것도 비쳐 드는 것이 없었습니다. 소경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일곱 가지 색으로 살아온 그의 눈은 자연의 태양 광선을 감당해 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나) 그런데 저 엄항수라는 이는 일찍이 나에게 지면(知面)을 요구한 적이 없었지만, 나는 언제나 그를 칭찬하려는 마음이 간절하였다네. (중략) 왕십리의 배추, 살곶이 다리의 무, 석교(石郊)의 가지, 오이, 수박, 호박, 연희궁의 고추, 마늘, 부추, 파, 염교 청파의 물미나리, 이태인(이태원)의 토란 따위를 심는 밭들은 그중 상(上)의 상을 골라 쓰되, 그들이 모두 엄씨의 똥을 써서 기름지고 살지고 평평하고 풍요로워, 해마다 육천 냥이나 되는 돈을 번다는 거야. 그렇지만 엄항수는 아침에 밥 한 그릇만 먹고도 기분이 만족해지고, 저녁에도 한 그릇뿐이지. 남들이 그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권하면, ‘목구멍에 내려가면 나물이나 고기나 마찬가지로 배부른데, 왜 맛있는 것만 가리겠소?’하면서 사양했다네. 또 남들이 새 옷을 입으라고 권하면, ‘넓은 소매 옷을 입으면 몸에 익숙지 않고, 새 옷을 입으면 길가에 똥을 지고 다니지 못할 게 아니오?’ 하면서 사양했다네. 해마다 정월 초하룻날이 되면 비로소 갓을 쓰고 띠를 띠며, 새 옷에다 새 신을 신었지. 이웃 동네 어른들에게 두루 돌아다니며 세배를 올리고, 다시 돌아와 옛 옷을 찾아 입더군. 다시금 흙 삼태기를 메고는 동네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거지. 엄항수야말로 자기의 모든 덕행을 저 더러운 똥 속에다 커다랗게 파묻고, 이 세상에 참된 은사(隱士) 노릇을 하는 자가 아니겠는가? (중략) 엄항수는 똥과 거름을 져 날라서 스스로 먹을 것을 장만하기 때문에, 그를 지극히 조촐하지는 않다고 말할는지는 모르겠네. 그러나 그가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방법은 지극히 향기로웠으며, 그의 몸가짐은 지극히 더러웠지만 그가 정의를 지킨 자세는 지극히 고항(高抗)했으니, 그의 뜻을 따져 본다면 비록 만종의 녹을 준다고 하더라도 바꾸지 않을걸세. 이런 것들로 살펴본다면 세상에는 조촐하다면서 조촐하지 못한 자도 있고, 더럽다면서 더럽지 않은 자도 있다네. 그래서 나는 음식을 먹다가 차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차려졌을 때에는 반드시 나보다도 못한 사람을 생각했다네. 그런 엄항수의 경지에 이른다면 견디지 못할 게 없겠지. -박지원, <예덕선생전> ◎ 해결 방향 제시된 두 글은 주어진 삶의 조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제기하고 있다. 제시문 (가)에서는 주어진 조건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위험을 무릅쓰며 좀더 나은 삶을 위해 도전하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며, 제시문 (나)에서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와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양쪽 모두 자신의 삶에 대해 ‘의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능동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양쪽의 삶에 대한 태도에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제시문 (가)의 토끼는 삶의 전환점에서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무작정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다가 결국은 눈이 멀게 되었고, 눈이 먼 이후에는 자신이 나온 구멍 주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태도와는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지나치게 급진적인 태도가 초래하는 부정적 상황에 대하여 비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제시문 (나)의 경우 그것이 과연 진정한 행복이며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엄항수의 태도는 사회적 질서를 거스르지 않고, 그 속에서 자신의 직분을 다하는 것 자체에 만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삶의 태도는 개인과 사회와의 조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반대로 사회 질서의 부조리함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비합리적인 사회제도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이 가능하다. 논제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답안을 서술하려면 이렇게 각 제시문에 나타난 삶의 태도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필요하다. 단지 제시문 (가)는 진취적이고 제시문 (나)는 소극적이거나 분수에 맞춰 사는 것이라는 식으로 단순화해 상투적인 결론을 내린다면, 이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제시문에 대해 편견을 갖지 말고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지 않도록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방향에서 제시문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창의적인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다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자료 검색 장용학 1921년 함북 부령에서 태어나 1940년에 경성공립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1942년 와세다대학 상과에 입학한 후 학병으로 일본군에 입대했다가 해방과 더불어 귀국했다. 1950년 5월 ‘지동설’이 <문예>지에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이후 교사와 신문사 논설 위원 등을 역임하며 창작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전후 사회에서의 인간의 삶의 모습에 관한 작품을 주로 발표하였다. 작품으로는 ‘기상도’(1954), ‘그늘진 사찹’(1955), ‘현대의 야’(1960), ‘원형의 전설’(1962) 등이 있다. 관련 작품(전후 소설) 전후 소설은 전쟁 이후의 삶의 상황과 문제를 다룬 소설을 말한다. 최인훈의 ‘광장’, 손창섭의 ‘비 오는 날’ 등이 대표적인 소설이다.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