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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아버지 잃은 상처, 장애우 성민이 어루만져줘”

등록 2009-04-05 19:39수정 2009-04-05 19:40

양진영(18·이화여대 수리물리학과)
양진영(18·이화여대 수리물리학과)
편견 갖고 있던 나에게
먼저 다가와 마음열어
“내 인생이 바뀌었어요”




봉사활동 성공사례
#1 봉사대회 금상 양진영

‘봉사활동은 왜 하는 것일까?’

누군가 이렇게 물으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대부분은 제일 먼저 ‘봉사시간을 채워야 하니까’라고 대답할 것이다. ‘타인에 대한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 ‘남을 돕는 데서 오는 행복감 때문에’라는 봉사활동의 본질적인 가치와 관련된 대답은 그다음이다. 그런데 여기, 봉사활동은 사랑이요 행복이며, 봉사활동이 결국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고 제일 처음 말하는 이가 있다. ‘제10회 전국 중고생 자원봉사대회’ 금상을 받은 양진영(18·이화여대 수리물리학과)씨다. 얼마 전에는 모교인 제주과학고의 추천으로 2009대한민국 인재상을 받기도 했다.

진영씨의 봉사활동은 중학교 시절 시작되었다. 그때는 세살 터울의 오빠가 하는 봉사활동을 따라다니는 수준이었다. “봉사활동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보람을 느끼면서 했던 건 아니었어요.” 사람을 직접 돕는 일보다는 수화교실에서 수화를 배우는 일이 더 재미있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20시간만 딱 채우던 또래 친구들보다는 봉사활동에 투자한 시간이 많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선생님이셨거든요. 봉사활동을 유독 강조하셨어요.” 아버지는 중학생이던 진영씨와 함께 장기기증 서약을 할 정도였다.

그랬던 아버지가 2007년 설 연휴에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해 3월 제주과학고에 입학하는 딸의 모습도 보지 못한 채였다. 사춘기가 되어서도 뽀뽀 세례를 받을 정도로 아버지와 친밀했던 진영씨한테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없다’는 게 이상했어요.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져 버렸죠. 공부도 손에 안 잡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이는 과학고에 적응하려면 입학부터 치열한 공부를 해야 했지만 책상에 앉으면 눈물만 나왔다. 3월 한 달을 그렇게 보냈다.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진영씨한테 구원이 돼 준 것은 봉사활동이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봉사활동이라도 하라고 권유해서 시작하게 됐다. 탐라장애복지관에 가 일대일 장애우 결연 프로그램에 신청했다. 지체장애 1급을 지닌 성민(가명)이를 그렇게 만났다. “성민이를 본 순간 웃는 모습이 아빠랑 너무 닮아서….” 그때를 떠올리던 진영씨는 울먹였다.

“처음에는 섣불리 다가섰다가 성민이한테 상처만 줄까봐 겁이 나기도 했어요.” 진영씨도 여느 사람들과 똑같이 장애인한테 편견 없이 다가서는 방법을 몰랐다고 한다. 중학교 때 봉사활동을 다녔던 장애아동 복지시설에서는 주로 청소를 했기 때문에 장애아동을 직접 돕지는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성민이가 진영씨를 불편해하지 않고 솔직하게 받아주었다. 마음을 열어야 했던 것은 진영씨였다.


일주일에 한 번 성민이와 만나 영화를 보고 놀이공원에 가고 숙제를 돕는 사이 처음의 어색함은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아버지를 잃은 상처도 아물었다. “내 아픔만 큰 아픔이 아니구나…. 나보다 더 큰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구나…. 제가 성민이를 도운 게 아니라 성민이가 절 도왔어요.” 진영씨는 “성민이를 안 만났으면 고등학교를 제대로 다녔을까 싶다”며 “성민이가 내 인생을 바꿨다”고 말했다.

진영씨는 성민이한테 과학고생의 특기를 살린 선물도 했다. ‘우산 잡는 가방’이다. “성민이는 손이 불편해서 우산을 제대로 못 펴요. 비 오는 날에 항상 비를 맞고 다녔죠.” 가방 어깨끈에 우산 손잡이를 넣는 작은 주머니를 달고 우산대가 넘어지지 않도록 지지하는 장치를 달아 만들었다. 우산 잡는 가방은 전국학생발명대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이제 자기도 친구들한테 우산을 씌워 줄 수 있다면서 기뻐하는 걸 보고서는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진영씨는 그렇게 ‘봉사활동은 곧 자기 스스로를 돕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를 잃은 상처를 극복한 것 말고도 성민이가 진영씨한테 준 선물은 또 있다. 봉사활동의 참맛을 알게 해 준 것이다. 성민이를 만나면서부터 월드비전, 유니세프 등을 통해 작은 돈이나마 기부를 해 왔다. 소아암 환자한테 긴 머리를 잘라 천연가발을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을 안 뒤로 머리를 기른 지도 3년이 됐다.

올해 원래 고3이 돼야 할 진영씨는 조기졸업을 하고 이화여대 새내기가 됐다. 대학에 입학해 든 동아리도 ‘이화 로타랙트’라는 봉사동아리다. 대학에 입학하면 더 재미있는 걸 찾게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한테는 봉사가 제일 재미있는 활동”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윤정희(정의여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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