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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교육발언대] 학생 학력 키우려면 교사 잡무 줄여야

등록 2009-04-19 15:53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해 이 자리에서 왈가왈부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교사로 살아가는 데 심한 자괴감을 느낀다.

우선 국가 수준의 학업성취도를 봐야만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교사가 판별할 수 있다고 하는 교육부의 생각이 기분 나쁘고,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은 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만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저절로 파악이 된다. 이미 아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아까운 수업 시간과 비용을 날린다고 생각하면 참 허탈하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위해 내놓은 대책도 마찬가지다. 한 학교에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100명이라고 가정하면 100명의 멘토를 쓰겠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학생 5명당 1명꼴로 총 20명의 멘토를 쓴다는 것인가? 멘토의 수당은 한 달에 얼마나? 설마 10만원? 그래, 일자리도 없는데 월급 팍 깎아서 10만원 주면 한 학교당 멘토링 비용으로 한 달에 200만원.(멘토나 보조교사가 5명의 학생을 10만원에 가르쳐준다고 했을 때 가능하겠지만) 올해 우리 학교에 일 년 동안 대학생 멘토링을 할 지원금으로 40만원이 내려왔다. 멘토나 보조교사를 구하는 것도 문제다. 서울이야 발에 차이는 사람이 대학생이겠지만 시골은 대학생이 귀하다. 시골일수록 학력 미달 학생이 더 많을 텐데 말이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은 지금까지 내 교직 경력의 경험으로(올해 19년째다) 볼 때 가정의 경제력이나 환경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대개는 부모들이 아이들의 학업 결손을 보충해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아이들의 학업 결손을 보충해줄 수 있는 사람은 교사밖에 없다. 교사가 한글 미해득자나 기초적인 수리 개념을 모르는 학생들을 남겨서 가르쳐야 한다. 교사가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근본적인 처방인 것을, 그것을 무시하고 다른 처방만을 찾고 있으니 교사들의 호응과 협조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사들은 학생보다 행정 처리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교육방송>(EBS) 청취에, 명상의 시간에, 독후 활동에, 학년 협의회에, 한자 급수 공부에, 특별 구역 청소에 …. 그러다 보면 수업 시간이고, 쉬는 시간엔 공문 처리하고, 또 수업하고, 점심시간 밥 퍼주고, 먹는 거 보고, 정리하고, 수업하고, 못 다한 공문 처리하고, 종례하고, 청소하고, 방과후 수업하고, 네이스(NEIS)에 들어가 출결 마감하고, 또 공문 처리하고… 화장실조차 참고 참았다가 점심시간 양치질하며 가는데 말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는 내가 가장 잘 안다. 그 아이가 무엇을 못 하는지, 어디가 부족한지. 교사들은 자기가 답답해서라도 학력 미달인 학생들을 데려다 가르친다. 나도 그랬다. 91~92년, 내가 답답해서 우리 반 한글 미해득자인 애를 붙잡아 앉혀서 한글을 깨치게 만들었다. 지금처럼 잡무가 많지 않았던 때의 일이다. 모든 교사들의 잡무를 없애는 게 힘들다면 적어도 한글과 수리 개념을 깨우쳐야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교사들에게만은 잡무를 맡기지 않았으면 한다. 진정한 기초학력을 쌓아야 하는 이 시기에 교사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한 20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외화 ‘천사들의 합창’. 멕시코라는 가난한 나라에서 선생님이 15명 남짓한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수업하며 생기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통해 아이들의 순수함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그걸 보며 나는 ‘아! 저렇게 못사는 나라도 학급당 인원수가 우리보다 훨씬 적구나!’하고 생각했다. 우리보다 훨씬 못사는 멕시코가 20년도 더 전에 했던 일을 그들보다 훨씬 더 잘사는 우리가 왜 못 하나.

박현숙/장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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