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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커버스토리] 우리는 베타맘이다

등록 2009-06-21 19:53수정 2009-06-23 17:08

우리는 베타맘이다
우리는 베타맘이다
3인의 자기주도적 교육성공기

4당5락. 명문대 합격의 오래된 공식이다. 그때는 자녀의 노력이 유일한 변수였다. 할아버지의 재력+엄마의 정보력+자녀의 노력. 공식은 점점 복잡해지고 ‘엄마’라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무수한 엄마들이 학원 쇼핑을 다니고 정보 사냥에 나서는 배경이다. 자녀의 ‘성공’을 위해 전략과 전술로 무장하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엄마, ‘알파맘’의 등장이다.

한혜원(46·경기도 고양시)씨의 큰 아들은 과학고를 나와 연세대를 다닌다. 알파맘의 냄새가 나는 자녀의 이력이지만 그는 다르다. 자녀가 초등학생이 될 때부터 학교상담 자원봉사자 일을 시작해 성교육 강사, 생태교육 강사로 끊임없이 바깥 활동을 했다. 아들을 위해 학원을 쫓아다니는 대신 자기 삶을 살았다. 그는 “애들이나 나나 자기 삶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독립적인 인격체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명문대 합격을 위한 치밀한 전략은 없지만 자기주도적 삶을 위한 철학과 소신이 있는 그는 ‘베타맘’이다. 지난 17일, ‘베타적’으로 자녀를 명문대에 보낸 세 엄마들이 모이자 ‘베타적’ 교육의 얼개가 드러났다.

■ 연민의 마음으로 자녀를 대하다=김민자(49·서울시 관악구)씨는 두 아이들은 모두 서울대에 다닌다. 큰 아들은 원래 모범생이었지만 둘째 딸은 아무도 그가 서울대에 갈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딸은 ‘엄마가 참고 기다려주지 않았으면 비행 청소년이 됐을 것’이라며 공을 엄마한테 돌린다.

“딸 애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 호출로 학교에 갔더니 우리 딸이 선생님들한테 미운 털이 박혔더라고요. 자기 딴에는 정의감으로 다른 친구들이 못하는 얘기를 대신 해주곤 했는데 선생님들 눈에는 버릇없어 보인거죠.”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 딸한테 화도 나고 속상했다. 그러나 그날 김씨는 딸을 혼내지 않았다. “갑자기 우리 딸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학교에서도 야단맞고 집에서도 야단 맞으면 애는 갈 데가 없잖아요.”

그때부터 김씨는 딸을 야단치거나 혼내지 않았다. 딸은 그때를 ‘어느 순간 엄마가 날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회상한다. 대신 쪽지 편지를 많이 썼다. 엄마가 믿고 기다리는 동안 딸은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했다. 이는 곧 늦된 학구열의 동력이 됐다. “우리 아이들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특별히 우수한 애들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성적은 꾸준히 올랐어요. 고3 때 성적이 제일 좋았죠.”

알파맘·베타맘
알파맘·베타맘


■ 학교를 신뢰하라=베타맘들한테는 학교가 자녀 학습과 교육의 보루다. 한혜원씨는 과학고를 준비하는 아들한테 특별히 주의를 주기도 했다. “과고 준비하는 애들한테는 입시에 반영되는 주요 과목만 공부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다른 과목 시간에 주요 과목 공부를 하는 일도 많고요.” 그는 아들한테 ‘중요한 과목과 그렇지 않은 과목을 네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과목이 기본 소양이니까 열심히 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엄마나 학원이 정한 선택과 집중의 전략에 따라 국, 영, 수, 사, 과 등에만 몰두하는 과고 준비생들과는 달리 그의 아들은 모든 과목 성적이 고루 좋았다. ’베타맘’의 아들한테 음악 시간에 수학 문제집을 푸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민자씨 역시 자녀와 함께 학교를 믿었다. 학원에 가는 대신 학교에서 하는 야간 자율학습에 3년 내내 참여했다. “어느 순간에는 아들이 불안한지 야자 그만두고 학원에 다니면 안되느냐고 물었어요. 그런데 그때 야자는 한번 빠지면 6개월 동안 기다려야 했거든요. 교직 경험이 풍부한 교장 선생님께서 자기 스스로 하는 공부가 제일 좋다고 하시니, 믿고 따라가 보자고 아들을 설득했죠.”

■ 자녀 스스로 선택하게 하라=한혜원씨는 지금 작은아들과 문이과 선택을 위해 일주일 째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우리는 부모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가 독단적으로 결정하지도 않아요. 항상 같이 찾아보고 연구하고 얘기하죠. 지금도 직업 선택, 전공 선택, 문이과 선택, 사회 탐구 교과목 선택까지 같이 풀어야 할 게 너무 많아요.”

김민자씨도 다르지 않다. 자녀에 대해 제일 잘알고 있는 게 부모라며 자녀한테 선택을 강요하는 일은 없었다. “제가 볼 때는 두 아이 모두 문과 성향이었어요. 하지만 단정하는 얘기는 하지 않았어요. 그냥 같이 고민해 보자, 너는 뭐가 좋니? 라고 물으면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게 도와줬을 뿐이죠.”

그래서 때로는 자녀의 선택에 따른 시행착오도 감수해야 한다. 조경선(48·서울시 동작구)의 큰딸은 연세대 건축학과에 재수를 해서 들어갔다. 원래는 화학을 좋아해서 화학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갔는데 생각이 바뀐 것이다. 어렸을 때 미술을 정말 좋아하고 소질도 있는 딸 아이를 보며 건축학과로 가면 좋겠다 생각했던 엄마의 뜻 그대로였다. “제가 좀더 일찍 건축학과로 가라고 말했다면 우리 아이가 재수를 안했을까요? 아니요. 딸은 화학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제 제안을 받아들였을 리 없어요. 시행착오를 겪어야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봐요. 좀 늦게 시작하면 어떤가요?”

■ 강요하지 말고 모범을 보여라=이날 모인 베타맘들의 공통점은 각자 몰입하는 활동이 있다는 점이었다. 조경선 씨는 큰딸이 고3, 작은딸이 고1 일 때, 청소년커리어코치라는 새 인생을 시작했다. “나중에 아이들 때문에 내 인생 희생하고 살았다는 얘기는 하지 말아야겠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엄마는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이렇게 열심히 산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이들한테 ‘산 교육’이 되겠다는 판단도 섰지요.”

김민자씨 역시 큰아들이 중학생, 작은딸이 초등학생일 때 2년 동안 가톨릭교리신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공부를 직접 가르쳐 주는 엄마보다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엄마가 자녀들의 학구열에 불을 지피는 데는 훨씬 효과가 있었다.

한혜원씨는 스스로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가는 모범을 보였다. “저는 인간이라면 자기 삶은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우리 아이들도 그렇지만 나 자신도 그래야 한다고 봐요. 가정 형편이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스스로 설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일찌감치 내 일을 찾은 것 같아요.”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베타맘의 숙지사항

교육 정책은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거기에 기생해 사교육은 학부모를 위협하기 일쑤다. 알파맘은 베타맘이 되기 어렵지만, 베타맘은 알파맘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럼 베타맘은 언제 흔들릴까? <엄마는 꿀맛 선생님>의 저자 최연숙씨가 베타맘의 갈등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했다. 그는 큰딸이 세 살 때부터 맞벌이를 하면서도 학원 한번 보내지 않은 알짜 베타맘이다.

"자녀를 사랑하고 믿고 지지해라." 베타맘의 교육은 고루하고 진부하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사진은 학부모와 상담하는 최연숙씨.
"자녀를 사랑하고 믿고 지지해라." 베타맘의 교육은 고루하고 진부하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사진은 학부모와 상담하는 최연숙씨.

고딩 엄마 잔소리보다 믿음 보여주라

? 고딩 엄마의 갈등 상황. 정애영

(49·경기도 구리시)

딸이 고3인데 공부를 곧잘 합니다. 공부하는 데 크게 간섭은 안 하려고 하는데 딸이 텔레비전 드라마나 인터넷을 하는 걸 보면 자꾸 잔소리를 하게 돼요. 잠자는 시간 빼고는 하루 종일 공부만 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니까요.

! 엄마가 좋은 결과를 잔소리로 강요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좋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자녀한테 믿게 해주는 게 더 효과적이죠. 우리 어머니는 옛날에 제가 시험을 칠 때면 항상 제가 좋아하는 고등어구이랑 식혜를 해 놓고 기다리셨어요. 시험을 잘 치든 못 치든 상관없이 한결같이 좋은 마음으로 기다리는 엄마를 생각하면 시험을 건성으로 치를 수가 없었죠. 우리 어머니는 공부하란 말씀을 한번도 하지 않으셨지만 이런 식으로 저를 스스로 공부하게 만드셨어요.

제가 아이를 키울 때는 학교에서 돌아온 뒤 항상 “슬픈 일 두 개, 기쁜 일 세 개씩 얘기해 보자”고 했어요. 학교에서 기쁜 일이 있었을 거라는 엄마의 믿음은 자녀의 학교생활을 정말 기쁘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중딩 엄마 공부의 이유 깨우쳐 줘야

? 중딩 엄마의 갈등 상황. 최은실

(가명·44·경기도 구리시)

딸은 이제 중1이에요. 기말고사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 한 과목도 제대로 마무리를 못했어요. 수학 학원에 다녀와서 숙제하고 나면 이내 잠들기 일쑤죠. 하는 수 없이 제가 새벽에 깨워서 공부를 하게 시키는데, 앉아 있는 모습만 봐도 집중을 제대로 안 하고 있다는 게 훤히 보여요. 계획까지 짜주면서 공부를 강요하게 돼요.

! 아이들한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게 우선이에요. 마음속에 꿈이 있어야 하는 거죠.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책을 보면 R(Realization·실현)=VD(Vivid Dream·생생한 꿈)라는 공식이 나와요. 꿈을 실현하려면 생생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뜻으로 저는 받아들였어요. 아이들한테는 말보다 직접 그리고, 만들어서 보여주는 게 제일 좋아요.

저는 옛날부터 아이들하고 마주 앉아서 삶에서 10대가 갖는 의미를 직접 그려서 설명했어요. 긴 막대를 그리고 그걸 0살부터 80살까지의 삶으로 보는 거예요. 그리고 20살을 표시한 뒤 20살의 의미를 설명해요. 대학, 전공, 직업이 결정되는 20살에 삶의 대부분이 결정된다는 걸 알려주는 거죠. 앞선 20년으로 뒤의 60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연필로 적으면서 설명하면 “학창시절이 중요하다”고 말로만 듣던 것보다는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여요. 아이들과 함께 그린 그림은 아이들 방에 붙여놨죠.


초딩 엄마 비교보다 칭찬을 많이 하라

? 초딩 엄마의 갈등 상황. 김지현

(37·경기도 구리시)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하고 엄마표 영어를 하고 있어요. 학원에 의존하기 싫어서 선택한 길인데 아이가 잘 안 따라주니까 힘이 드네요. 어학원 다니는 애들만큼은 해야 하는데 그렇게 늘지도 않는 것 같고요. 엄마표 영어 하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봐도 성과가 다르니까 조바심이 나요.

! 우리 딸이 중학교에 다닐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엄마, ○○는 되게 불쌍해. 걔는 목표가 날 이기는 거야. 오늘 시험도 되게 잘 봤는데 날 못 이겼다고 울면서 집에 갔어.” 우리 딸은 시험 볼 때 누구를 이기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게 목표였어요. 전에 친 시험 결과보다 성적이 조금이라도 잘 나왔으면 우리 딸은 만족했어요. 그리고 자기보다 시험 잘 친 친구를 사심없이 축하해 줬죠.

부모들이 흔히 자녀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는데 부작용이 너무 큽니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녀의 어제와 비교하세요. 남보다는 못하지만 어제보다는 조금 잘했다면 칭찬해 주세요. 엄마한테 중요한 인성 가운데 하나는 ‘낙담시키지 않는 인성’(nondiscouraging personality)이에요. 시험 결과에 대해 자녀가 실망할 수 있지만 용기를 잃지는 말게 격려해 주세요. 그런 점에서는 엄마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글·사진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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