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근대 장편 소설인 이광수의 <무정>은 부르주아 지식인의 내면세계를 통해 계몽주의 의식을 표출하였다. 그러나 추상적 계몽주의, 식민지 현실에 대한 역사적 인식 결여로 뒷날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사진은 조선영화주식회사가 1939년에 제작한 영화 <무정>의 촬영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말 논술 30. 문학 교과서로 논술 접근하기
과목별 논술교과서 / [난이도 수준-중2~고1]
■ 교과서 읽기
논점 1. <무정>을 통해 본 문학의 기능
전체 줄거리
경성 학교 영어 교사인 ‘이형식’은 김 장로의 딸 ‘선형’에게 영어를 가르치러 다닌다. 이때, 고아였던 그를 거두어 준 박 진사의 딸인 ‘영채’의 방문을 받는다. 영채는 투옥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기생이 되었는데 이형식을 만나기 위해 정절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선형에게 마음이 쏠리기 시작한 이형식에게서 확실한 언질을 받지 못한다. 급기야 경성 학교 배 학감에게 순결을 빼앗기게 된 그녀는 형식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살의 길을 떠난다. 그러나 영채는 동경 유학생 ‘병욱’을 만나 마음을 돌이키게 되고 병욱과 함께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유학의 길을 떠나기로 한다. 마침, 형식도 선형과 약혼을 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어, 그들은 기차 안에서 만나게 된다. 도중에 그들은 삼랑진 수재민을 위해 자선 음악회를 열고 다 같이 우리 민족을 구할 힘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을 다짐하며 유학의 길을 떠난다. - 고등학교 <문학>, 디딤돌 외 9종
어떻게 읽을까
<무정>은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작품으로 최초의 근대 장편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신소설과 비교해 볼 때,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 개성적인 인물형의 등장, 구어체 문장의 확립 등을 <무정>이 이루어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또 소설 전체에 흐르는 작가의 민족주의적 이상과 계몽주의적 태도는 <무정>의 문학사적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이상의 사항들은 <무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오히려 본질적인 소설의 독해에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작품을 충분히 이해한 뒤에 후속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다. <무정>은 지나친 계몽주의적 태도로 인해 비판받고 있는데, 이에 대한 심도 있는 학습이 필요하다. 작가가 왜 소설의 흐름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계몽주의적 의식을 표출했는지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문학의 기능을 돌아볼 수 있다. 당시는 민족의 모든 구성원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일제 강점기였다. 따라서 작가가 지성인으로서의 책임을 지녔다면 그런 부자연스러움은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 교과 심화 <무정>에 대하여 이광수의 장편소설 <무정>(無情)은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후 단행본으로 간행됐다. 이 소설은 식민지시대에 신소설이 빠져들었던 통속화 경향을 극복하고 근대소설의 서사적 속성을 성공적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학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설 무정의 시대는 무엇보다도 개인에 대한 발견과 자아에 대한 각성이 요청된 시기이다. 민족적 자기인식과 그 주체적 확립이 가능하지 않은 식민지 상태에 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문학이 자아에 대한 각성을 주장했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여기에는 개인의 자각과 각성에서 출발할 때에 민족 전체의 주체적인 자기 확립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가 전제되어 있다. (중략) 소설 무정에서 볼 수 있는 자아의 각성과 개인의 발견은 현실에 근거하고 있는 개인의 존재와 그 인식을 중시하는 근대소설의 요건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근대소설은 사회에 대한 개인의 관계를 개인의 운명이라는 형식을 빌려서 보여준다. 근대소설은 경험적인 세계 속에서 개인의 삶의 양상을 총체적으로 포착해 내는 것이므로, 자아에 대한 인식의 확대를 통해 개인의 삶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단계에서 성립된다. 개인의 행동과 그 행동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조건이 서로 관련되어 있는 모습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때에 진정한 근대소설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소설 무정에서 그려내고 있는 개인의 자기 발견 과정이 반성적인 자기 각성의 단계에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정이 개인과 사회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 권영민 교수,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이광수의 문학 세계 그의 문학은 50년이라는 지속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소설 외에도 시가·평론·수필 등 전 영역에 걸친 방대한 규모를 드러냈다. 그러나 주류는 역시 소설이며 더불어 문학사적 가치를 1차적으로 결정해주는 것은 1910년대 계몽주의 소설들이다. <무정>과 같은 계몽소설의 연장에 놓이는 <흙>은 농촌계몽소설로서, 브나로드 운동 등의 민족적 교화운동의 일환에서 나온 작품이다. 이광수의 농촌 현실에 대한 관심은 이보다 앞선 1916년 <매일신보>에 발표한 <농촌계발>이라는 논문에서 발견되는데, 그는 이 글에서 우리 농촌의 결점 중의 하나로 ‘교육이 없음’을 지적하며 선각자적 지식인이 농촌계발에 앞장서야 함을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정신에서 나온 <흙>은 농민과의 정신적 연대성이 고조되던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며 주인공 ‘허숭’은 자신의 신분(변호사)을 버리고 농촌으로 돌아가는 이상적인 지식인으로 그려진다. 한편 이광수의 작품 중 상당수가 남녀의 애정을 다루고 있는데 <유정>(1933)·<그 여자의 일생>(1934~35)·<사랑>(1938) 등에 나타난 남녀간의 애정은 통속적인 애정소설과는 달리 정신적인 이상주의를 지향하는 특유한 성격을 지닌다. 예를 들면 <사랑>에서와 같이 남녀간의 애정은 애욕을 초월한 종교적인 사랑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이러한 사랑이 인간의 구체적인 현실을 토대로 한 것이냐는 문제를 불러오기도 한다.
■ 논제 해결 소설 ‘무정’에 나타난 계몽주의의 한계 제시문 (나)를 참고로 하여 (가)의 내용에서 계몽주의적 태도가 나타난 양상을 분석하고, 이것의 의의와 한계를 함께 서술하시오. (500자 안팎) [2003 인천교대 기출 변형] (가)위의 ‘교과서 읽기’의 ‘전체 줄거리’ 가운데 “경성 학교 영어 교사인 ‘이형식’은”부터 “유학의 길을 떠난다.”까지. (전략) 서장은 병욱에게서 그 돈을 받는 듯이 또 한 번 고개를 숙이고 일동을 향하여 그 돈으로 될 수 있는 대로 좋은 방법을 취하여 수재 만난 사람을 구제하겠노라 하였다. 일동은 병욱과 다른 두 사람의 성명을 듣고자 하였으나 그네는 다만 고개를 숙일 뿐이요, 말이 없었다. 이러하는 동안에 집 잃은 사람들은 여전히 어찌할 줄을 모르고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차차 시장증이 나고 몸이 떨리기 시작하였으나 그네에게는 아무 방책도 없었다. 그네는 다만 되어 가는 대로 되기를 바랄 뿐이다. (중략) 그네의 얼굴을 보건대 무슨 지혜가 있을 것 같지 아니하다. 모두 다 미련해 보이고 무감각(無感覺)해 보인다. 그네는 몇 푼어치 아니 되는 농사한 지식을 가지고 그저 땅을 팔 뿐이다. 이리하여서 몇 해 동안 하느님이 가만히 두면 썩은 볏섬이나 모아 두었다가는 한번 물이 나면 다 씻겨 보내고 만다. 그래서 그네는 영원히 더 부(富)하여짐이 없이 점점 더 가난하여진다. 그래서 (몸은 점점 더 약하여지고 머리는 점점 더) 미련하여진다. 자대로 내어 버려 두면 마침내 북해도의 ‘아이누’나 다름없는 종자가 되고 말 것 같다. 저들에게 힘을 주어야 하겠다. 지식을 주어야 하겠다. 그리해서 생활의 근거를 안전하게 하여 주어야 하겠다. “과학(科學)! 과학!” 하고, 형식은 여관에 돌아와 혼자 부르짖었다. 세 처녀는 형식을 본다. “조선 사람에게 무엇보다 먼저 과학(科學)을 주어야겠어요. 지식을 주어야겠어요.” 하고, 주먹을 불끈 쥐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으로 거닌다. “여러분은 오늘 그 광경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말에 세 사람은 어떻게 대답할 줄을 몰랐다. 한참 있다가 병욱이가, “불쌍하게 생각했지요.” 하고 웃으며, “그렇지 않아요?” 한다. 오늘 같이 활동하는 동안에 훨씬 친하여졌다. “그렇지요, 불쌍하지요! 그러면 그 원인이 어디 있을까요?” “물론 문명이 없는 데 있겠지요─생활하여 갈 힘이 없는 데 있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저들을 … 저들이 아니라 우리들이외다 … 저들을 구제할까요?” 하고 형식은 병욱을 본다. 영채와 선형은 형식과 병욱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병욱은 자신 있는 듯이, “힘을 주어야지요? 문명을 주어야지요?” “그리하려면?” “가르쳐야지요? 인도해야지요!” “어떻게요?” “교육으로, 실행으로.” 영채와 선형은 이 문답의 뜻을 자세히는 모른다. 무론 자기네가 아는 줄 믿지마는 형식이와 병욱이가 아는 이만큼 절실(切實)하게, 단단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방금 눈에 보는 사실이 그네에게 산 교육을 주었다. 그것은 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할 것이요, 대 웅변에서도 배우지 못할 것이었다. -고등학교 <문학>, 디딤돌 (나)우리나라의 계몽주의는 계몽사상·애국계몽운동·계몽주의문학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사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것은 서양철학의 수용과 전개라는 시각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유길준은 합리적 자유주의 정신 위에서 실리를 추구한 현실주의자이며, 구습을 타파하고 서양의 선진문명을 받아들이기를 열렬히 주장한 공리주의적 계몽주의자였다. 그는 스펜서의 진화론을 소개하였고, 철학을 ‘공용(貢用)의 학’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당시 일본과 미국에서 유행하였던 프랑스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간주된다. (중략) 우리나라에서는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 일제로부터 침탈당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애국계몽운동이 전개되었다. 민족산업을 육성하여 자립적인 경제부강을 이룩하려는 산업개발운동, 민족의식을 높여 자주독립의 기반을 조성하려는 언론운동·국민교육운동 등이 애국계몽운동의 중심을 이루었다. 보호국 체제 아래에서 애국계몽운동은 정치운동으로서의 성격이 약화되고 사회운동 중심으로 전개된 것이 특징이다. (중략) 애국계몽운동은 신문발행을 통한 언론운동의 성격을 띠고 전개되기도 하였다.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제국신문>·<만세보>·<대한민보> 등이 간행되어 국민계몽과 애국심의 고취에 큰 구실을 담당하였다. 양기탁·신채호·박은식·장지연 등은 일제의 침략상을 폭로하고 사설을 통하여 전국적인 계몽운동을 펼쳤다. 한편, 국민교육운동의 성과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갑오경장 이후 정부가 근대교육을 보급시키기 위하여 관립학교를 전국에 걸쳐 설립하였으나, 보호국 체제 아래서는 정상적인 민족교육기관으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한 민간 유지들이 사립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확대시켜나갔다. 특히, 기독교 계열의 학교 수가 크게 증가하였다. 한글에 대한 연구도 주시경 등에 의하여 본격화되어 국문연구소가 설치되고, 한글소설·한글신문이 간행되어 한글이 점차 보급되어 나갔다. 역사서적을 간행하여 애국사상을 고취시키려는 시도도 있었다. 한편, <을지문덕전>·<강감찬전>·<이순신전> 등 외적의 침입을 물리친 우리나라 영웅들의 전기와, 외국에서 애국운동과 혁명운동을 전개한 인물들의 전기인 <이태리건국삼걸전>·<워싱톤전>·<피터대제>(彼得大帝) 등이 출판되어 국민들에게 읽힘으로써 독립의지와 역사의식이 고양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애국계몽운동은 그 성과에도 불구하고 오랜 전제 지배체제 아래에서 국민 개개인의 인권이나 창의력,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애국심이 성장할 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많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해결 방향 제시문 (가)는 이광수의 <무정>이라는 작품의 결말 부분이다. 이 대목은 형식과 선형이 미국으로, 병욱과 영채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 각기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는 도중에, 삼랑진이란 곳에서 수해를 만나 기차가 연착되자 수재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자선 음악회 등 봉사활동을 마치고 난 후 나눈 대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작품 전체의 줄거리와 비교했을 때,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은 작가가 작품의 중심 인물인 형식, 선형, 영채 간의 삼각관계로 인한 갈등보다는 국가의 위기 속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더욱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제시문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논제를 해결하려면 제시문 (나)의 계몽주의가 어떤 부분에서 (가)와 연결되는지 파악해야 한다. (나)의 내용 중에서 문학을 통해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개화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노력과 관련한 부분을 찾아 정리할 수 있으면 된다. 정리하면, 당시 일본의 보호국 체제 아래에서 애국계몽운동이 정치운동으로서의 성격이 약화되고 사회운동 중심으로 전개된 시대 상황에서, 작가가 국민들을 계몽하고 민족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작품을 창작한 부분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국가의 위기 속에서 지식인의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주제의식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작품 전체의 흐름이 어색해지고, 각 인물의 개성을 경직시키는 등의 한계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작품에 나타난 계몽주의적 태도는 소수의 유능한 인물들에 의해서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일깨운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시대의 주체인 민중을 과소평가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논제에서 요구한 <무정>에서 나타난 계몽주의의 의의와 한계는 이외에도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다.
<무정>은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작품으로 최초의 근대 장편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신소설과 비교해 볼 때,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 개성적인 인물형의 등장, 구어체 문장의 확립 등을 <무정>이 이루어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또 소설 전체에 흐르는 작가의 민족주의적 이상과 계몽주의적 태도는 <무정>의 문학사적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이상의 사항들은 <무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오히려 본질적인 소설의 독해에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작품을 충분히 이해한 뒤에 후속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다. <무정>은 지나친 계몽주의적 태도로 인해 비판받고 있는데, 이에 대한 심도 있는 학습이 필요하다. 작가가 왜 소설의 흐름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계몽주의적 의식을 표출했는지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문학의 기능을 돌아볼 수 있다. 당시는 민족의 모든 구성원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일제 강점기였다. 따라서 작가가 지성인으로서의 책임을 지녔다면 그런 부자연스러움은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 교과 심화 <무정>에 대하여 이광수의 장편소설 <무정>(無情)은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후 단행본으로 간행됐다. 이 소설은 식민지시대에 신소설이 빠져들었던 통속화 경향을 극복하고 근대소설의 서사적 속성을 성공적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학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설 무정의 시대는 무엇보다도 개인에 대한 발견과 자아에 대한 각성이 요청된 시기이다. 민족적 자기인식과 그 주체적 확립이 가능하지 않은 식민지 상태에 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문학이 자아에 대한 각성을 주장했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여기에는 개인의 자각과 각성에서 출발할 때에 민족 전체의 주체적인 자기 확립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가 전제되어 있다. (중략) 소설 무정에서 볼 수 있는 자아의 각성과 개인의 발견은 현실에 근거하고 있는 개인의 존재와 그 인식을 중시하는 근대소설의 요건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근대소설은 사회에 대한 개인의 관계를 개인의 운명이라는 형식을 빌려서 보여준다. 근대소설은 경험적인 세계 속에서 개인의 삶의 양상을 총체적으로 포착해 내는 것이므로, 자아에 대한 인식의 확대를 통해 개인의 삶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단계에서 성립된다. 개인의 행동과 그 행동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조건이 서로 관련되어 있는 모습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때에 진정한 근대소설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소설 무정에서 그려내고 있는 개인의 자기 발견 과정이 반성적인 자기 각성의 단계에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정이 개인과 사회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 권영민 교수,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이광수의 문학 세계 그의 문학은 50년이라는 지속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소설 외에도 시가·평론·수필 등 전 영역에 걸친 방대한 규모를 드러냈다. 그러나 주류는 역시 소설이며 더불어 문학사적 가치를 1차적으로 결정해주는 것은 1910년대 계몽주의 소설들이다. <무정>과 같은 계몽소설의 연장에 놓이는 <흙>은 농촌계몽소설로서, 브나로드 운동 등의 민족적 교화운동의 일환에서 나온 작품이다. 이광수의 농촌 현실에 대한 관심은 이보다 앞선 1916년 <매일신보>에 발표한 <농촌계발>이라는 논문에서 발견되는데, 그는 이 글에서 우리 농촌의 결점 중의 하나로 ‘교육이 없음’을 지적하며 선각자적 지식인이 농촌계발에 앞장서야 함을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정신에서 나온 <흙>은 농민과의 정신적 연대성이 고조되던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며 주인공 ‘허숭’은 자신의 신분(변호사)을 버리고 농촌으로 돌아가는 이상적인 지식인으로 그려진다. 한편 이광수의 작품 중 상당수가 남녀의 애정을 다루고 있는데 <유정>(1933)·<그 여자의 일생>(1934~35)·<사랑>(1938) 등에 나타난 남녀간의 애정은 통속적인 애정소설과는 달리 정신적인 이상주의를 지향하는 특유한 성격을 지닌다. 예를 들면 <사랑>에서와 같이 남녀간의 애정은 애욕을 초월한 종교적인 사랑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이러한 사랑이 인간의 구체적인 현실을 토대로 한 것이냐는 문제를 불러오기도 한다.
■ 논제 해결 소설 ‘무정’에 나타난 계몽주의의 한계 제시문 (나)를 참고로 하여 (가)의 내용에서 계몽주의적 태도가 나타난 양상을 분석하고, 이것의 의의와 한계를 함께 서술하시오. (500자 안팎) [2003 인천교대 기출 변형] (가)위의 ‘교과서 읽기’의 ‘전체 줄거리’ 가운데 “경성 학교 영어 교사인 ‘이형식’은”부터 “유학의 길을 떠난다.”까지. (전략) 서장은 병욱에게서 그 돈을 받는 듯이 또 한 번 고개를 숙이고 일동을 향하여 그 돈으로 될 수 있는 대로 좋은 방법을 취하여 수재 만난 사람을 구제하겠노라 하였다. 일동은 병욱과 다른 두 사람의 성명을 듣고자 하였으나 그네는 다만 고개를 숙일 뿐이요, 말이 없었다. 이러하는 동안에 집 잃은 사람들은 여전히 어찌할 줄을 모르고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차차 시장증이 나고 몸이 떨리기 시작하였으나 그네에게는 아무 방책도 없었다. 그네는 다만 되어 가는 대로 되기를 바랄 뿐이다. (중략) 그네의 얼굴을 보건대 무슨 지혜가 있을 것 같지 아니하다. 모두 다 미련해 보이고 무감각(無感覺)해 보인다. 그네는 몇 푼어치 아니 되는 농사한 지식을 가지고 그저 땅을 팔 뿐이다. 이리하여서 몇 해 동안 하느님이 가만히 두면 썩은 볏섬이나 모아 두었다가는 한번 물이 나면 다 씻겨 보내고 만다. 그래서 그네는 영원히 더 부(富)하여짐이 없이 점점 더 가난하여진다. 그래서 (몸은 점점 더 약하여지고 머리는 점점 더) 미련하여진다. 자대로 내어 버려 두면 마침내 북해도의 ‘아이누’나 다름없는 종자가 되고 말 것 같다. 저들에게 힘을 주어야 하겠다. 지식을 주어야 하겠다. 그리해서 생활의 근거를 안전하게 하여 주어야 하겠다. “과학(科學)! 과학!” 하고, 형식은 여관에 돌아와 혼자 부르짖었다. 세 처녀는 형식을 본다. “조선 사람에게 무엇보다 먼저 과학(科學)을 주어야겠어요. 지식을 주어야겠어요.” 하고, 주먹을 불끈 쥐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으로 거닌다. “여러분은 오늘 그 광경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말에 세 사람은 어떻게 대답할 줄을 몰랐다. 한참 있다가 병욱이가, “불쌍하게 생각했지요.” 하고 웃으며, “그렇지 않아요?” 한다. 오늘 같이 활동하는 동안에 훨씬 친하여졌다. “그렇지요, 불쌍하지요! 그러면 그 원인이 어디 있을까요?” “물론 문명이 없는 데 있겠지요─생활하여 갈 힘이 없는 데 있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저들을 … 저들이 아니라 우리들이외다 … 저들을 구제할까요?” 하고 형식은 병욱을 본다. 영채와 선형은 형식과 병욱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병욱은 자신 있는 듯이, “힘을 주어야지요? 문명을 주어야지요?” “그리하려면?” “가르쳐야지요? 인도해야지요!” “어떻게요?” “교육으로, 실행으로.” 영채와 선형은 이 문답의 뜻을 자세히는 모른다. 무론 자기네가 아는 줄 믿지마는 형식이와 병욱이가 아는 이만큼 절실(切實)하게, 단단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방금 눈에 보는 사실이 그네에게 산 교육을 주었다. 그것은 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할 것이요, 대 웅변에서도 배우지 못할 것이었다. -고등학교 <문학>, 디딤돌 (나)우리나라의 계몽주의는 계몽사상·애국계몽운동·계몽주의문학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사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것은 서양철학의 수용과 전개라는 시각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유길준은 합리적 자유주의 정신 위에서 실리를 추구한 현실주의자이며, 구습을 타파하고 서양의 선진문명을 받아들이기를 열렬히 주장한 공리주의적 계몽주의자였다. 그는 스펜서의 진화론을 소개하였고, 철학을 ‘공용(貢用)의 학’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당시 일본과 미국에서 유행하였던 프랑스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간주된다. (중략) 우리나라에서는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 일제로부터 침탈당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애국계몽운동이 전개되었다. 민족산업을 육성하여 자립적인 경제부강을 이룩하려는 산업개발운동, 민족의식을 높여 자주독립의 기반을 조성하려는 언론운동·국민교육운동 등이 애국계몽운동의 중심을 이루었다. 보호국 체제 아래에서 애국계몽운동은 정치운동으로서의 성격이 약화되고 사회운동 중심으로 전개된 것이 특징이다. (중략) 애국계몽운동은 신문발행을 통한 언론운동의 성격을 띠고 전개되기도 하였다.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제국신문>·<만세보>·<대한민보> 등이 간행되어 국민계몽과 애국심의 고취에 큰 구실을 담당하였다. 양기탁·신채호·박은식·장지연 등은 일제의 침략상을 폭로하고 사설을 통하여 전국적인 계몽운동을 펼쳤다. 한편, 국민교육운동의 성과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갑오경장 이후 정부가 근대교육을 보급시키기 위하여 관립학교를 전국에 걸쳐 설립하였으나, 보호국 체제 아래서는 정상적인 민족교육기관으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한 민간 유지들이 사립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확대시켜나갔다. 특히, 기독교 계열의 학교 수가 크게 증가하였다. 한글에 대한 연구도 주시경 등에 의하여 본격화되어 국문연구소가 설치되고, 한글소설·한글신문이 간행되어 한글이 점차 보급되어 나갔다. 역사서적을 간행하여 애국사상을 고취시키려는 시도도 있었다. 한편, <을지문덕전>·<강감찬전>·<이순신전> 등 외적의 침입을 물리친 우리나라 영웅들의 전기와, 외국에서 애국운동과 혁명운동을 전개한 인물들의 전기인 <이태리건국삼걸전>·<워싱톤전>·<피터대제>(彼得大帝) 등이 출판되어 국민들에게 읽힘으로써 독립의지와 역사의식이 고양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애국계몽운동은 그 성과에도 불구하고 오랜 전제 지배체제 아래에서 국민 개개인의 인권이나 창의력,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애국심이 성장할 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많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해결 방향 제시문 (가)는 이광수의 <무정>이라는 작품의 결말 부분이다. 이 대목은 형식과 선형이 미국으로, 병욱과 영채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 각기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는 도중에, 삼랑진이란 곳에서 수해를 만나 기차가 연착되자 수재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자선 음악회 등 봉사활동을 마치고 난 후 나눈 대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작품 전체의 줄거리와 비교했을 때,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은 작가가 작품의 중심 인물인 형식, 선형, 영채 간의 삼각관계로 인한 갈등보다는 국가의 위기 속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더욱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제시문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논제를 해결하려면 제시문 (나)의 계몽주의가 어떤 부분에서 (가)와 연결되는지 파악해야 한다. (나)의 내용 중에서 문학을 통해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개화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노력과 관련한 부분을 찾아 정리할 수 있으면 된다. 정리하면, 당시 일본의 보호국 체제 아래에서 애국계몽운동이 정치운동으로서의 성격이 약화되고 사회운동 중심으로 전개된 시대 상황에서, 작가가 국민들을 계몽하고 민족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작품을 창작한 부분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국가의 위기 속에서 지식인의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주제의식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작품 전체의 흐름이 어색해지고, 각 인물의 개성을 경직시키는 등의 한계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작품에 나타난 계몽주의적 태도는 소수의 유능한 인물들에 의해서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일깨운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시대의 주체인 민중을 과소평가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논제에서 요구한 <무정>에서 나타난 계몽주의의 의의와 한계는 이외에도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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