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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한의 정서를 표출하는 매개체

등록 2009-09-13 14:44수정 2009-09-13 14:56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산·수’를 예술 작품의 소재로 삼아 생명력을 부여했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에 대한 대유법에 그치지 않고 윤리관·세계관 그리고 심미감을 담는 그릇이 되었다. 사진은 물방울에 투영된 국회의 일그러진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산·수’를 예술 작품의 소재로 삼아 생명력을 부여했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에 대한 대유법에 그치지 않고 윤리관·세계관 그리고 심미감을 담는 그릇이 되었다. 사진은 물방울에 투영된 국회의 일그러진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말 논술 34. 문학 교과서로 논술 접근하기
과목별 논술교과서 / [난이도 수준-중2~고1]

■ 교과서 읽기
논점 1. <공무도하가>와 ‘물’의 상징적 의미

公無渡河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임은 기어이 물을 건너셨네.

墮河而死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當奈公何 이제 임이여 어이할꼬.

- 고등학교 <문학>

어떻게 읽을까

이 노래는 <황조가>와 함께 집단적 서사시에서 개인적 서정시로 넘어가는 분기점이 되는 중요한 문학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표출되는 ‘한’(恨)의 정서는 후대의 여러 시가로 이어져 전통적 한국 정서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국적, 작자, 내용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하여 고정된 해석을 하기보다는, 기본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다양하게 작품을 분석할 수 있다.

먼저 작품의 배경설화를 참고하여 해석할 때와 오로지 작품만을 놓고 해석할 때의 차이점을 파악해 보는 활동을 할 수 있으며, 물의 상징성에 초점을 맞추어 물에 대한 세계적인 상징적 의미를 바탕으로 우리의 시가에서 발견되는 물의 상징적 의미를 비교하는 활동도 가능하다. 그리고 작품의 여러 요소 중에서 어떠한 부분이 이 작품을 서정시가로 해석할 수 있게 하는지, 민요적 성격은 없는지를 파악해 보는 것도 작품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교과 심화

문학이 태어나는 자리 - 죽음

우리 문학사는 ‘죽음의 충격’으로부터 시작한다. 뱃사공 곽리자고가 새벽에 배를 손질하고 있는데, 흰머리를 산발한 미친 사람이 술병을 끼고 거센 물결을 가로질러 갔다. 그의 아내가 따라가며 말렸으나, 끝내 남자는 빠져 죽고 말았다. 그의 아내는 공후를 뜯으며 슬픈 노래를 부르더니 또한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에 얽힌 사연이다.

여보 물을 건너지 마오/ 당신은 그예 물을 건넜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으니/ 아아 당신을 어이할거나.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當奈公何.)

수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넋두리에 가까운 노래이다. 하지만 이 짧은 노래에는, 건너지 말라는 마음과 건너고 마는 행동 사이에 원초적 긴장이 팽팽하고, 긴장은 끝내 물을 건너다 빠져 죽는 강렬한 파탄으로 깨진다. 남는 것은 체념이다. 순간적으로 형성되었다 끊어지는 강렬한 긴장과 파탄은 이어지는 그녀의 죽음으로 더욱 강화된다. 상황만 다를 뿐 세상의 수많은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이 대개 그러하다. 이 단순한 노래가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는 이유이다.

죽음은 서서히 다가와 우리를 충격과 혼란에 빠뜨리고 유유히 사라진다. 죽음과의 거리에 따라 사람들의 정서적 반응은 공포와 불안에서, 당혹감과 공허감을 거쳐, 회고와 그리움으로 달라져간다. 죽음이 꼬리를 감추고 사라지면서 죽음은 우리 삶에 내면화된다. 사람들은 삶에서 죽음을 읽고, 죽음을 전제로 삶을 통찰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호수의 표면이 반짝이듯 삶은 비의를 지니고 아름다워진다.

- 이승수(경희대 연구교수), <경향신문> 2008년 7월11일치

물의 문학적 심상(心像)

민속신앙의 품에 안겨서 종교적 상상력을 촉발함으로써, 창세기적 창조력과 영속적인 생명력 및 풍요의 원리, 그리고 청정한 정화력 등으로 형상화된 것이 우리들의 물이다.

그 속에서 바로 우리들의 물이 지녔던 신화적 원형성을 찾을 수도 있다. 그처럼 종교적 상상력의 텃밭일 수 있었던 물이 문화적 상상력을 촉발하면서 갖가지 풍성한 심상을 낳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산(山)·수(水)’를 더불어 일컬어 왔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에 대한 대유법에 그치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우리들의 윤리관·세계관, 그리고 심미감(審美感)마저 담겨 있었다.

고조선의 <공후인>에서 이미 그 모습을 드러낸 물은 신라 향가인 <찬기파랑가>에서 노래되다가, 고려에 이르러서는 <청산별곡>에서 혹은 <서경별곡>에서 또는 <동동>에서 노래불리고 있다.

그 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이른바 ‘강호도가’(江湖道歌)로 묶는 가사 작품이나 시조들에서 조선시대 문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와 심상(이미지)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물은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폭넓고 긴 소재사(素材史)를 형성해 오면서 민속신앙적인 상상력이 가꾼 정신적·심리적 원형성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다. 그러나 강호도가에서 절정에 이른 물의 심상은 자연과 세계, 그리고 인생의 섭리, 가장 자연스럽고 자유롭고 그러면서도 유연한 순리라는 관념을 길러낸 것이다.

이리하여 물은 세계와 삶의 가장 이상적인 이법(理法) 그 자체로 관념화되기도 한 것이니, 선비다운 기품, 유유자적한 관조, 청아한 지조 등으로 이상화되어 수없이 노래불렸다.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山) 절로절로 수(水) 절로절로/ 산수문(山水門)에 나도 절로절로/ 그중에 절로절로/ 자란 몸이니 늙기도 절로절로 하리라”와 같은 시조를 그 전형으로 지적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물이 언제나 이상화되어 노래불린 것은 아니다. 심리적 원형성이 짙은 심상일수록, 모순등가성(矛盾等價性)이 높아지기는 물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물이 변덕과 삶의 풍파를 상징하기도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칠 새/ 내가 되어 바다에 가나니”라고 <용비어천가>는 노래하고 있다. 그렇듯이 물은 우리 겨레의 종교적 심성을 위한 가장 깊은 샘에서 솟아올라 종교사와 문학사의 커다란 두 물줄기를 따라 변함없이 유구하게 흘러 마침내 겨레의 가장 속깊은 정신적·심리적 원형의 바다를 이룩하였다. - 민족문화대백과


■ 논제 해결

문학작품에서 물의 상징적 역할

제시문 (가)와 (나)에 나타난 ‘물’의 역할과 상징적 의미를 (다)를 참고로 하여 비교·분석하시오. (500자 안팎)

(가) 위의 ‘공무도하가’

(나)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 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고등학교 <문학>

(다) 모든 문화권에서 물은 일찍이 생명력과 죽음의 양면을 지닌 상징으로 인식되어 있다. 대하소설 속 역시 물-바다와 강을 통틀어-은 그 두 가지 면을 보여준다. 쫓기는 주인공 앞에 나타난 물은 인물에게 한쪽 언덕에서 다른 쪽 언덕으로 향하기를 요구하는데, 이는 주인공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하나의 통과의례로서 물을 건넌다는 것은 어떤 신분이나 다른 상태로의 이행을 요구하는 적극적인 배경이라 할 수 있다. 대하소설 속에서 물은 인물에게 고난과 그 해결을 결단하게 하는 인생 과제를 상징하기도 하고, 모든 물이 바다에 이르는 것이 상징하듯 죽음과 같은 상태로 그 속에 뛰어듦으로써 모든 갈등의 해소와 재생의 실마리를 함축하기도 한다. - 문화원형사전


◎ 해결 방향

물은 일반적으로 생명력의 원천으로서의 의미를 상징하며 아울러 재생의 의미도 가진다. 여기서의 재생이란 한 존재가 통과제의를 거쳐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죽음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대개의 신화에서 탄생의 배경으로 물이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물은 정화력을 뜻하기도 한다. 제의에서 행하는 목욕재계나 세례는 이러한 의미를 보여주는 한 예이다.

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물이 가진 상징적 의미를 제시문 (다)를 통해 파악하고 이를 (가)와 (나)에 각각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와 (나)에 나타난 ‘물’의 의미를 비교하면 된다.

제시문 (가)에서 ‘물’은 시적 화자에게 이별과 죽음을 의미한다. 시적 화자가 바라보는 대상인 ‘임’에게 ‘물’은 경우에 따라서 재생이나 정화의 의미를 지닐 수 있지만, 기본적인 해석은 어디까지나 작품의 중심인 시적 화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제시문 (나)에서 ‘물’은 재생과 정화와 같은 생명력에 관련된 의미를 지닌다. 시에서 ‘물’은 불로 인하여 파괴된 세계를 치유하고 모두를 하나로 모으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기본적인 사항을 포함하여 자신의 분석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포괄적으로 논제를 해결하면 된다.


◎ 자료 검색

물의 원형성의 유래

우리는 오랜 농경생활, 특히 수도경작의 비중이 매우 높은 농경생활을 영위해 온 만큼 물이 생활에서 갖는 기능과 가치는 매우 높았다. 그러나 수도경작 위주의 농경생활이 물신앙을 성립시키는 유일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물을 생명력과 풍요의 원리로 여기는 일이 농경생활을 맞아 비로소 생겨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은 농경생활을 넘어선 차원에서도 그 생명력과 풍요의 원리를 향유하고 있었으되, 다만 농경생활의 역사에 의해서 그러한 물의 속성이 더욱 보완되고 증강되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시베리아 원주민과 일본 신화 등 적지 않은 세계 신화들이 물을 모든 생명이 있는 존재들의 첫 모태로 여기고 있는데, 이것은 풍요와 생명의 원리로서 물이 갖는 원형성이 농경생활을 넘어서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베포도업침’이라고 일컬어지는 제주도 천지개벽 신화의 첫머리인 “삼경개문도업(三更開門都業) 제일릅긴, 요 하늘엔 하늘로 청이슬 땅으로 흑이슬 중앙 황이슬 나려 합수(合水)될 때, 천지인황(天地人皇) 도업으로 제이르자.”에서 보면, 우주적인 이슬기운이 모여서 된 합수를 개벽의 계기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천지개벽의 계기가 된 물을 ‘원수’(源水)라고 하거니와, 이 원수의 관념을 농경생활에 일방적으로 묶어서 생각할 수는 없다. 한국인이 가꾸어 온 물의 원형성은 이와 같은 신화적 원수의 관념과 농경생활에 관련된 풍요·생명력의 원리가 상호작용을 끼치면서 복합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봄이 옳을 것이다.


◎ 관점 넓히기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공을 차다가 들어갈 종이 치자 아이들이 수돗가로 달려간다. 아이들의 등에서 머리에서 김이 난다. 아이들이 고개를 쳐들고 수도꼭지에서 하얗게 쏟아지는 물을 받아먹고는 얼굴을 씻고 나서 머리를 쏟아지는 물 밑으로 들이민다. 물이 아이들의 머리로 쏟아진다. 물이 찬지 한 아이가 물이 철철 흐르는 머리를 흔들어 댄다. 같이 있던 아이들이 손사래를 치더니, 쏟아지는 수돗물을 손으로 때려 물장난을 하기 시작한다. 수도꼭지를 하나씩 차지하고 도망가고 쫓기며 물장난을 치자 2층 유리창 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아이들을 부른다. 아이들이 물장난을 멈추고 머리를 흔들어 대며 교실을 향해 뛴다. 아이들 머리에서 물방울이 하얗게 튄다.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가자 나는 내 자리로 들어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강물을 바라본다. 봄이 오는 강물은 늘 저렇게 애매한 색깔을 띠고 있다.

물, 나는 지난 월말 캄보디아에 다녀왔다. 환경재단과 지구촌공생운동을 펼치고 있는 단체에서 캄보디아에 우물을 팠고, 그 준공식을 하러 간 것이다. 그곳을 다녀온 이후 나는 물을 보면 혼자 움찔움찔 놀라곤 한다. 참으로 놀라운 일들을 보고 온 것이다. 캄보디아는 절대적으로 식수가 부족한 나라다. 환경재단의 후원으로 판 우물을 찾아 시골의 작은 마을까지 가는 동안 나는 그곳에서 우물 파주기 운동을 하고 있는 분으로부터 물 부족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캄보디아는 지금 건기였다. 텅 빈 벌판에는 하얀 소들이 드문드문 풀을 뜯고 있었고, 벼를 베어 낸 들판에도 소들이 하얗게 땅에 코를 박고 풀을 뜯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캄보디아 벌판은 키 큰 야자수들이 멋들어지게 자라고 있는 아주 평화롭고 복받은 땅처럼 보였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땅을 들여다보면 소들이 도대체 무엇을 뜯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땅은 메마르고 건조하며 풀이 보이지 않았다. 1센티미터도 안 된 풀을 찾아 뜯는 소들은 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고, 마을 근처에서 들로 나와 먹이를 찾고 있는 닭이나 개를 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가련하게 비쩍 말라 있었다. 사람이 먹을 것도 없는데, 소나 닭이나 개가 먹을 사료가 없어 그들 스스로 먹을 것을 그렇게 빈 들판에서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다. 마을 가까이 가면 돼지들이 작은 웅덩이에서 오리들과 먹을 것을 뒤지고 있었다. 물은 파랗게 썩어 있고, 돼지와 닭과 오리와 소가 놀고 있는 물은 흙탕물이었다. 그 더러운 흙탕물을 사람들이 먹는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썩은 물도 없다는 것이다. 나라는 뭐 하냐고? 거기에 나라는 없었다. (중략)

목숨을 가진 것들에게 물이 얼마나 절대적이라는 말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물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수없이 병들고 죽어간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물 부족으로 인하여 오늘도 이 지구촌에서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죽고 병들어 간다. 캄보디아에서 우물 하나를 파는 데 드는 비용은 우리나라 돈으로 50만원쯤 된다. 50만원이 목말라 병들어 죽어가는 어린 목숨들을 살린다. ‘물먹는다’는 말이 그렇게나 절실하게 아름다운 말인지 나는 그곳에 가서 알았다.

- 김용택, <한겨레> 2008년 3월13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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