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서점들은 청소년이 볼 만한 성장소설을 따로 모아 진열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서점 진열대의 청소년 도서 코너 모습이다.
성장소설 예찬
입시위주 교육이 전부인 10대
성장통 겪는 과정서 ‘동행’ 가족·친구·학교 등 주제 풍성
자아 찾는 길 ‘또다른 선생님’ 문화 다른 외국작품 고를땐
자극적 요소 많아 주의를 성장소설 출간이 붐을 이루고 있다. 25만부가 넘는 판매 기록을 세우며 성장소설 바람을 일으킨 <완득이>에 이어 <개밥바라기 별>, <위저드 베이커리> 등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유명 출판사들은 성장소설의 약진에 힘입어 청소년문학상을 잇달아 만들고 있다. ‘청소년’이 문학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성장소설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뭘까? 최근 <스프링벅>을 읽고 공감했다는 이수정(중대부중 1)양은 “작품 속 등장인물의 모습들이 학교생활 속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했다. “저도 학교에서 연극을 한 적이 있어요. 성적 때문에 엄마가 좀 반대했었죠.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제 모습이 많이 생각났어요.” <스프링벅>은 연극을 통해 꿈을 찾아가는 주인공을 그린 성장소설이다. 이양은 ‘국어독해’ 시간에 읽은 ‘영희가 0형을 선택한 이유(<라일락 피면> 중에)’도 여학생들의 소소한 일상을 잘 짚어냈다고 말했다. 성장소설은 주인공이 내면의 자아를 발견하고 외부와의 갈등 속에서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독일에서 태동한 성장소설은 ‘교양소설’ 또는 ‘발전소설’이라고도 불린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등이 성장소설의 바탕이 됐다. 외국에선 성장소설의 전통이 오래됐지만, 우리 사회에선 최근에야 성장소설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입시 위주의 교육 탓일 수도 있지만, 학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성장소설이 많지 않은 이유도 있다. 또 교과서 속 성장소설은 한국전쟁 이전과 이후, 아니면 50~60년대의 지독한 가난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성장환경이 현실과 너무 다르다.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고전’으로 꼽히는 외국 작품들 역시 학생들의 언어 수준과는 맞지 않아 읽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인터넷소설이나 판타지소설에 열광한다. 김대경 서울 양재고 국어교사는 “학생들은 선생님이 권하는 책에 선입견이 있어 자신들을 관리의 대상으로 보고 교훈적으로 이끌려고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최근의 성장소설은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장소설이 다루는 주제와 소재가 예전에 비해 훨씬 다양해진 점도 인기 요소다. 김현애 한국독서지도연구회 회장은 “요즘 학생들이 겪는 성장과정은 혹독하다”며 “성장기에 겪는 여러 문제들, 삶의 방향에 대한 조언을 얻지 못하는 현실에서 성장소설이 빛을 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학교와 가족이 하지 못하는 일을 성장소설이 대신 해주고 있는 셈이다. 임성미 독서교육 전문가도 “성장소설은 학생들의 정신적 성장을 도울 수 있다”며 “청소년기는 자기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성장소설을 통해 자기를 되돌아보고 위로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책을 멀리하는 학생들도 성장소설에는 쉽게 몰입하는 경향을 띤다. 문학을 입시의 도구로만 여겨왔던 학생들이 성장소설을 읽으며 책과 친근해진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친구, 가족, 학교 문제 등을 다루기 때문에 책을 읽고 다른 이들과 고민을 함께 나누기도 한다. 10대 미혼모를 다룬 <키싱 마이 라이프>를 읽었다는 최유빈(일산동고 1)양은 “특별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크게 공감하긴 힘들었지만,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친구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했다. 성장소설은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인식에도 도움을 준다. 원종찬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성장소설은 한국 사회의 성장 조건이 자기 삶의 성장 조건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며 “사회현실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성장소설의 ‘양’은 많아졌지만, 어떤 책을 권해야 좋을지 몰라 난감할 때가 있다. 무턱대고 도움이 되니 읽으라고 하는 것은 부정적 반응을 낳을 수 있다. 김대경 서울 양재고 국어교사는 “선생님이나 학부모가 먼저 읽고 내용을 파악한 후에 학생들에게 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장소설이 우울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그냥 던져줘선 안 된다는 것이다. 외국 작품의 경우 우리와 문화가 많이 다르고 다루는 내용이 자극적이라 더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 학생들의 독서능력도 고려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면 검증된 출판사에서 나오는 시리즈를 우선 권하고, 관련 서평을 관심 있게 보는 것도 좋다. 책을 읽은 뒤에는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해보자. 소통의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통해 성장소설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것도 훌륭한 독후활동이 될 수 있다. 현실에서 경험한 친구관계나 성적 등을 주제로 글을 쓰면서 자기 얘기를 끌어내면 자기 치유와 함께 문학적 감수성도 기를 수 있다. 윤소영 서울 중앙고 사서교사는 “남자고등학교 학생들은 청소년 소설을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자신의 일상을 다룬 성장소설을 꾸준히 읽고 느낀 점을 쓰면서 조금씩 변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완득이>의 김려령 작가는 “성장소설은 내용이나 결말이 열려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많은 학생들에게 적합하다”며 “저학년 시기엔 ‘나’보다는 ‘이웃’이나 ‘우리’와 관련된 책을 읽고, 고학년에 올라갈수록 내면의 깊이를 다룬 책을 읽었으면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에 대한 자의식이 강한 학생들이 ‘나’보다는 ‘이웃’과 ‘세상’을 먼저 배웠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성장소설은 학부모와 선생님에게도 권할 만한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학생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고, 상처받은 학생들의 마음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의 성장소설이 대중성과 상업성에 휘둘리고 있다는 비판이 있기도 하다. 보편적인 10대 청소년의 삶 대신 특수한 경험을 한 아이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김현애 한국독서지도연구회 회장은 “일탈도 청소년의 삶의 한 부분인 만큼 성장소설을 통해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내가 누구인지,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묻지 않은 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성장소설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다. 글·사진 이란 기자 rani@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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