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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아동 성폭력 예방교육 부쩍 늘었지만
예산·강의내용은 들쑥날쑥

등록 2009-11-01 15:55

10월28일 경기도 안산 초지초등학교 1학년 4반 학생들이 엄미영 교사와 함께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고 있다.
10월28일 경기도 안산 초지초등학교 1학년 4반 학생들이 엄미영 교사와 함께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고 있다.
[커버스토리]
학교 현장에 성폭력 예방 교육이 한창이다. 경기도에서 아동 성폭력 예방 교육 전문강사로 활동하는 이아무개(37)씨는 “지난해에는 안양 사건 때문에 성폭력 예방 교육이 많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올해는 학교에 예산이 배정되지 않아 강의가 거의 없었는데 2학기 들어 갑자기 강의 문의가 늘었다”고 말했다. ‘조두순 사건’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방 교육은 효과가 있을까.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방 교육 현장을 다녀왔다.

#1. ㄱ초등교 가보니

‘조두순 사건’뒤 강사들 바빠졌지만
강사료 10만원에 5개반 강의 요청
방송 모니터로 교육 ‘요식’ 그치기도

10월27일 서울 ㄱ초등학교

“여러분, 조두순 사건을 알지요?” “네!” “그런 일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죠?” “저요!”


이 학교 교장은 성폭력 예방 교육을 “내가 나를 스스로 지켜야 되겠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소개했다. 4학년 한 학급이 모인 교실에서였다. 4, 5, 6학년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지만 강사는 한 학급만을 대상으로 강의한다. 나머지 학생들은 각자의 교실에서 모니터와 방송으로 교육을 받는다. 조두순 사건처럼 위험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배우는 자리치고는 너무 무성의해 보였다.

“여러분, 성폭력은 성기와 성기가 접촉하는 것을 말해요. 여기 학생들 중에는 생리를 하는 학생들도 있죠? 이럴 때 성폭력을 당하면 임신을 할 수도 있어요.” 강사가 성폭력의 위험성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몇몇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 쪽으로 고개를 돌려 눈치를 살폈다. 강의실에는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이 섞이지 않고 따로 앉아 있었다. 서로를 이성으로 의식하는 아이들은 창피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실제로 강의를 들은 이아무개(11)양은 “갑자기 생리 얘기를 하셔서 좀 민망했다”고 말했다. 강사는 이런 얘기가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강사를 처음 본 아이들은,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준비 없이 들은 아이들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지역 학생들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한 강사 역시 종종 당황했다. “버디버디, 싸이월드 안 하는 사람 없죠?”라는 물음에 두서너 명을 뺀 거의 모든 학생이 “없다”고 손을 들었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친구의 신체를 찍어서 공유하는 등의 사이버 성폭력에 대해 설명하는 중이었다. 결국 “나중에 크면 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로 넘어갔다. 교장, 보건교사, 담임교사는 모두 “우리 학교 아이들은 비교적 순진하다”고 말했지만 그런 아이들의 특성을 강사한테 알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전문강사 이아무개(37)씨는 “한번 강의할 때 양성평등, 음란물 예방,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한꺼번에 하라고도 하고, 강사료 10만원을 주면서 한 반에 2만원씩 다섯 반을 들어가라고 하는 학교도 있다”며 “교육의 질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교장이나 교사의 책임은 아니다. 이 학교 교장은 저소득층 학생을 따로 후원하는 ‘교육자’였다. 누구의 탓인지는 모호하다. 다만 성폭력 예방 교육이 요식 행위에 그치는 사이 아이들은 내 몸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만 떠안은 채 실제로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는 모르는 상황에 놓였다.


#2. 초지초등교 가보니

보건교사가 ‘위험장소 피해가기’ 교육
‘인상좋은 사람도 조심’ 실제적 강의
‘어머니 폴리스’ 운영 범죄예방 눈길

10월28일 경기 안산 초지초등학교

“여러분, 여러분이 아무리 조심해도 어른이 억지로 데려갈 수 있어요. 그래서 특히 위험한 장소와 시간을 피해야 해요. 알겠죠?” “네!” 엄미영 보건교사의 말에 얼굴이 주먹만한 1학년 학생들이 씩씩하게 대답한다. 무슨 말인지 알고나 하는 걸까. 그때 엄 교사가 활동지를 나눠준다.

“이건 우리 학교 주변 지도예요. 학교에서 여러분의 집까지 가는 길을 표시해 보세요.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왠지 무서운 느낌이 드는 곳이 있으면 별 모양으로 표시를 하세요.” 위험한 장소를 자기 주변에서 스스로 찾게 하는 활동이었다.

“11단지를 지나는데요, 이상한 남자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그쪽으로 안 다닌다는 임다빈(7)양이 별을 그리는 모습이 신중하다. 다른 학생들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저마다 별을 그린다. 위험한 곳을 피해 다녀야 한다는 예방 교육의 핵심을 자연스레 체득하는 시간이다.

엄 교사의 예방 교육에는 “내 몸은 내가 지킨다”는 주입이 없다. “아이의 몸은 아이가 지키는 게 아니라 어른이 지켜야 해요. 이 작은 아이들이 강력 범죄를 어떻게 막겠어요.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우선이죠.” 성남의 한 지역에서 보건교사로 일할 때 그는 환경의 중요성을 뼈아프게 느꼈다. 학교 앞에 유흥가가 즐비했던 그곳에서 아침에도 성폭행을 당하고 오는 아이들을 맞이해야 했다고 한다.

엄 교사는 기술을 가르치기보다 스스로 위험을 인지하고 안전한 상태를 찾도록 하는 데 무게를 둔다. 이날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낯선 사람이 꼭 모자나 마스크를 쓰고 상처가 있는 험악한 인상이 아님을 배웠다. 아동 성범죄자들은 대개 인상이 좋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아이들 스스로 위험을 알아차리도록 교육하는 일은 곧 가장 근본적인 예방법이기도 하다.

초지초의 어머니들도 학생들한테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나섰다. 노란 조끼에 노란 모자를 쓴 72명의 ‘어머니 폴리스’다. 이들은 하루 4명씩 모둠을 이뤄 학교 주변의 으슥한 곳을 순찰한다. 1시간 동안 걸어야 할 정도로 넓은 지역이다. 어머니 폴리스는 혜진·예슬이 사건이 있은 뒤 지난해 4월 경찰청에서 만든 것으로 각 초등학교의 어머니들이 활동한다.

어머니 폴리스 회장 김미정(41)씨는 어른들의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딸이 6살 때쯤인가. 아파트에서 일곱 살쯤 된 여자아이가 남자아이한테 끌려가는데 어른들이 보면서도 가만히 있는 거예요. 오빠, 동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제가 보기엔 그게 아니었어요. 어쩔 수 없이 제가 나서서 둘을 떼어 놨죠.” 그 일은 내내 잊히지 않았고 어머니 폴리스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모든 아이들을 지키는 것이 곧 내 아이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은 어머니 폴리스의 ‘사상’이다. 5학년 아들과 2학년 딸을 둔 최영미(36)씨는 “유괴 미수범이 경찰에서 진술을 하다 노란 조끼 입은 아줌마들 때문에 실패한 적이 있었다고 하더라”며 “그냥 돌아다니기만 하는 게 무슨 효과가 있겠나 싶지만 그래도 예방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겨울에는 방한복도 없이 모자 쓰고 달랑 조끼만 달랑 입고 순찰을 도는 이유다.

초지초에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지킨다’는 교육 공동체의 합의가 있다. 이 점이 바로 안 하느니만 못한 예방 교육을 하는 여느 학교들에는 없는 것이다.

글·사진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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