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수월성 교육에 대한 오해 ●
“공교육을 활성화해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가난한 가정의 학생들도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수월성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다.” 지난달 30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한 말이다. 이후 수월성 교육과 평등주의 교육의 대립으로 치닫던 외고폐지론의 기세가 한층 꺾였다. 대통령이 수월성 교육의 손을 들어 준 셈이다.
이 대통령의 말은 수월성 교육의 대상이 외국어고나 과학고 등의 특목고에 진학하는 학생들에 국한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는 수월성 교육에 대한 편협한 이해라는 지적이 많다. 2006년에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모든 학생을 위한 수월성 교육’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낸 조석희 미국 세인트존스대학교 교수는 “고령화 시대에는 어린이 한 명이 여러 명의 어른을 부양해야 하는데, 이는 곧 미래 사회에는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역량을 갖추어야 함을 의미한다”며 “우리는 이제 단 1명의 학생도 놓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수월성 교육은 영재와 우수한 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타고난 소질과 적성을 최대로 계발해야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시절 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수월성 교육 종합대책(2004)’이나 ‘수월성 제고를 위한 고교 체제 개편 방안(2007)’에는 영재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 학생들을 위한 수월성 교육의 방안들도 제시된 바 있다. 부산 금곡고의 무학년제 방과후 보충수업이나 명호고의 수준별 이동수업은 모두 이 대책들이 포함한 내용이다.
따라서 수월성 교육을 위해 외고가 있어야 한다는 외고 존치론의 근거는 매우 빈약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재춘 영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1등만을 위한 수월성 교육은 경제나 과학 분야에서는 필요하지만 교육은 2등, 3등을 위한 다양한 수월성 교육을 해야 한다”며 “학술적으로 외국어 영재는 성립되지 않는데도 외고를 영재 교육 기관인 특목고의 형태로 존속해야 하는가를 따지는 게 먼저”라고 외고 논쟁의 핵심을 정리했다.
정병오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지금 외고 존치론자들이 말하는 수월성은 지역 명문고에 엘리트들을 모아 놓고 교육하던 것을 의미하는 낡은 개념”이라며 “평준화 체제에서도 학교가 외국어, 과학 등의 특성화한 교육과정을 운영해서 얼마든지 수월성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미숙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센터 소장은 2006년에 쓴 ‘평준화 제도 안에서 수월성 교육은 불가능한가’라는 글에서 “실제로 특목고를 통해 해당 분야의 영재 교육이 취지에 맞게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를 찾기는 현재로서는 어렵다”며 특목고에 대해 “수월성의 큰 성과 없이 애꿎게 형평성만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일부 언론이나 교육학자, 외고 관계자들이 외고 무용론을 형평성만 강조한다며 수월성을 무시하는 것으로 왜곡한다는 점이다. 김재춘 교수는 “외고가 수월성 교육의 상징처럼 되어 있어서 외고를 폐지하면 수월성 교육을 폐기하는 것처럼 인식하는 여론이 조성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윤미 홍익대 교육학과 교수는 “모든 학생을 위한 수월성 교육은 형평성과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며 “수월성 교육을 특권 교육, 엘리트 교육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외고 논란을 수월성과 형평성의 대립으로 몰고 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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