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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편안한 구속과 불편한 자유

등록 2010-03-21 15:56수정 2010-03-21 16:08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고2~고3]

25. 나는 고발한다. 생각의 함정들을
26. 감시와 처벌 - 세상이 감옥이 된다면
27. 관용은 폭력보다 나을까?

<우리들>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지음/석영중 옮김, 열린책들
<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지음, 지경자 옮김/홍신문화사

〈우리들〉, 〈자유로부터의 도피〉
〈우리들〉, 〈자유로부터의 도피〉

기원후 29세기. 세상은 완벽해졌다. 사람들은 모두 ‘시간 율법표’에 따라 움직인다. 수백만명이 하나인 듯 일을 시작하고 동시에 일을 끝낸다. 생활은 질서로 꽉 짜여 있다. 모든 사람들은 가슴에 황금색 번호가 적힌 푸른 제복을 입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스스로를 ‘번호’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자신을 ‘개인’이 아닌 ‘전체를 이루는 벽돌 한 조각’으로 여길 뿐이다.

건물의 벽은 모두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다. 모두가 똑같은데 굳이 감출 필요가 뭐 있겠는가. 사생활이란 머리가 덜 깬 시대에나 필요했던 것이다. 세상은 수학 공식처럼 명쾌하고 깨끗하게 돌아간다. 심지어 씹는 횟수까지도 ‘한 숟가락당 50번’으로 정해져 있다.

도덕윤리는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이 네 가지로 만들어진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수학에서처럼 계산해 버리면 되는 까닭이다.

인류를 그동안 괴롭혔던 문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먹고사는 문제였다. 29세기 인류는 ‘석유 식량’을 만들어내어 굶주리는 일은 해결해버렸다. 다른 하나는 ‘사랑’ 문제였다. 그들은 사랑을 위대한 ‘성(性)법전’으로 해소해 버린다. “모든 번호(사람)들은 어떤 번호(사람)라도 성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성법전의 내용이다. 평소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점찍어 놓았다가 ‘자유 시간’에 일을 치르면 된다. 욕구가 생기면 손쉽게 풀어버리는 구조다. 그러니 세상에 고민거리가 뭐 있겠는가.


물론, 완벽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자들은 제멋대로 살려 할지 모른다. 그래도 걱정 없다. 세상을 지배하는 ‘은혜로운 분’과 보안요원들이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까. “(망가진) 소수를 재빨리 없애버리는 편이 다수에게 자신을 파멸시킬 기회를 주는 것보다 낫다.” 29세기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은 온통 장밋빛이다. 주인공인 D-503은 자신이 사는 세상을 늘 뿌듯해한다. 자유란 범죄를 낳을 뿐이다. 이는 비행기와 속력의 관계와 같다. 속도가 0이라면 비행기는 날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유가 0이 되면 범죄는 사라져 버린다. 2×2는 4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건 구굿셈의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이처럼 29세기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하게 돌아간다. 미래가 불안할 까닭은 전혀 없다. 일상은 규칙에 따라 반복되며, 모든 것은 거울처럼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러시아 작가 자먀찐이 <우리들>에서 그리는 미래 세계의 모습이다. 이 광경을 보며 ‘정말 멋진 세상이구나!’ 하고 감탄할 사람이 있을까? 오히려 독자들 대부분은 가슴 답답해할 듯싶다. 꽉 막히고 자유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우리는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늘 자유를 그리워한다. 그러면서도 주어진 자유는 버거워한다. 은퇴한 사람들을 예로 들어보자. 그들의 하루는 자유로 가득 차 있다. 하루 24시간이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살림살이가 여유롭다면, 그들은 자유를 빼앗는 노동을 하지 않으려 해야 옳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일자리에 매달린다.

<우리들>에 나오는 ‘세 명의 해방된 노예’ 이야기는 우리 모습을 비추고 있는 듯하다. 이야기 속의 세 명의 ‘번호’들은 한 달간 휴가를 받았다. 하지만 ‘시간 율법표’에서 벗어난 그들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작업장 근처를 기웃거리다가, 손에 익은 망치질 흉내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러다 10일째 되는 날, 절망한 그들은 손을 맞잡고 강물에 몸을 던진다.

우리 시대 은퇴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삶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 우리는 자유를 되레 버거워한다. 왜 그럴까? 자유를 누릴 ‘능력’을 기르지 못한 탓이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우리의 모습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왜 독일인들은 히틀러의 나치즘에 달떠버렸을까? 강한 자의 그늘에 들어가면 마음 편한 법이다. 보잘것없었던 나의 가슴은 훌륭한 이들과 위대한 역사를 꾸려간다는 자부심으로 벅차오를 테다. 어디 그뿐인가. 생활이 괴로워져도 내 탓은 아니다. 힘세고 못된 독재자가 나를 짓누르고 있을 뿐이니까. 못된 권력자를 좇으면서도 마음은 되레 편해지는 까닭이다. 자유는 독재만큼이나 우리를 두렵게 한다.

<우리들>에서 D-503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이 ‘영혼이 생긴 병’에 걸렸다며 병원을 찾아간다. 모두가 하나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감정은 질병에 지나지 않는다. 기계처럼 돌아가는 일상을 뭉그러뜨릴 뿐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병에서 낫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유와 감정을 오롯이 즐기고 싶은 우리의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결국 주인공은 ‘두뇌 소독’을 받는다. 그러곤 ‘가시가 뽑힌 듯’ 사라진 감정과 자유에 후련해한다.

D-503과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우리 주변에는 숱한 폐쇄회로 카메라들이 널려 있다. 누군가 작정하고 전산망을 살펴보면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속속들이 드러날 테다. 독재자들이 이런 짓을 했을까? 아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시민들이 나서서 폐쇄회로 카메라를 설치해 달라고 난리다. ‘통합 전산망’을 만들어 금융 거래와 신상 자료를 한 번에 처리해 달라는 요구들도 많다. 감시당할 수 있지만 손에 쥐는 편리함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렇게 점점 감옥이 되어간다. 편리하고 쾌적한 감옥 말이다. <우리들>에서 그리는 29세기의 세계와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뛸 능력 없으면서 뛰게 해 달라고 요구하면 뭐하겠는가? 학교에서는 자유는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될 가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과연 ‘자유를 누릴 능력’이 있을까? 사회와 학교는 우리에게 노동에 필요한 도덕과 능력을 알려준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자유에 어울리는 능력’을 배운 적이 있던가? <우리들>의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진정 무엇이 필요한지 깊이 고민해 볼 일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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