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양, 이재환 군
토론대회 수상자의 ‘말짱 비결’
“이 얘기 하면 애들이 웃던데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안도현씨의 <연어>를 읽었었거든요. 거기서 ‘강물’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잖아요. 강물은 연어한테 어떤 배경 구실을 하죠. 강물이 연어에게 배경이 돼준다는 자체가 제겐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문득 내 배경은 누굴까 생각했는데 두 사람이 떠오르더라구요. 아버지 아니면 선생님. 저도 누군가에게 든든한 배경이 되고 싶어졌어요. ‘선생님’이란 배경 말이죠. 근데 중·고교 교사보단 초등학교 교사가 좋을 거 같아요. 교사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많을 걸 가르쳐주고 헌신하려면 우선 교사의 자기 발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우리나라에서 중·고교 교사는 너무 바쁘잖아요.”
“왜 초등학교 교사가 되려고 하는지 이유와 동기를 설명해보라”는 질문에 이재환(경기 의왕 우성고 3년)군이 답을 하자 이지영(의왕 우성고 3년)양이 재치 있게 말을 이었다. “그래. 네 제자들이 잘 배워서 중학교나 고등학교 올라오면 내가 잘 키우면 되겠다. 저는 국어교육을 전공하려고 해요. 뭣보다도 말하기, 토론 수업이 활기차게 이루어지는 교실을 만들고 싶어요.(웃음)”
밝은 표정, 또박또박 바른 말투, 진솔한 스토리텔링 능력까지 겸비한 두 사람은 지난해 숙명여대와 교보문고가 주최한 전국독서토론대회(고등부) 은상 수상자다. 지난 7월16일, “말하는 걸 좋아해 중학교 땐 함께 학교 축제 사회를 보기도 했다”는 두 사람이 토론에 앞서 말을 잘하게 된 이유를 이야기해줬다.
쓰기 능력은 많이 읽고 많이 써서 향상되지만 말하기 능력은 타고날 수밖에 없다. 두 학생이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할 소리였다. 물론 둘 다 말하는 걸 좋아하긴 했다. 하지만 겁이 많아 사람들 앞에 나가면 잘 떨기 일쑤였고(지영양), 말은 많지만 하고 싶은 말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말하진 못했다(재환군). 말하기 앞에선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다. 이랬던 두 사람이 논리적 말하기의 최고 단계라는 토론을 잘하게 된 중심에는 우성고 토론·논술동아리인 ‘청열지사’(지도교사 양준모, 임유환)가 있었다. “‘청춘과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란 뜻이에요. 어느 날, 선배가 교실에 들어와서 동아리 설명회를 하더라구요. 두 가지가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체계적인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일단, 커리큘럼이 탄탄하더라구요. 그리고 뭣보다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동아리라는 것도 매력적이었어요.” 지영양이 동아리에 가입하게 됐던 사연을 이야기했다.
의지만 보고 누구나 다 받아주는 ‘만만한’ 동아리는 아니었다. 청열지사에서 활동하려면 꽤 어려운 관문을 뚫어야 했다. 1차는 지원 동기 등을 보는 서류전형, 2차는 대면면접. 2차 시험은 만만치 않았다. 지원자를 가운데 앉혀두고 선배 여섯 명이 둥글게 모여 앉아 지원 동기부터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생각 등을 심층적으로 묻는 면접은 대학 입학 모의 면접을 연상시켰다. “전 2학년 때 추가모집을 통해 들어왔거든요. 아직도 기억나요. 얼굴이 완전 빨개졌고, 대답도 제대로 못했던 거 같아요.(웃음)” “아니야. 너 잘했어. 말도 얼버무리지 않았고, 앞뒤도 잘 맞았어요. 자세가 좋아서 선배들이 좋게 봤었죠.” 지영양은 “면접 봤을 때 한 선배가 해줬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달달 떨고, 말은 빨리 하고 그러던 가운데 한 선배가 “네가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대처하겠니!”라고 콕 짚어 말했어요. ‘한 방’ 먹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게 자극이 된 거 같아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동아리원들은 활동 기간 동안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 그 ‘전통’이 뭐냐고 물으니 두 학생은 한쪽 서가를 가리켰다. 서가엔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신문을 분야별로 스크랩해둔 파일이 꽂혀 있었다. “누구 한 사람 것이 아니에요. 각자 관심 있는 분야의 시사 뉴스가 있으면 오려서 스크랩해두고 가요. 아래 글도 써놓고. 그럼 다른 사람들도 와서 볼 수 있잖아요.” 이들은 “시사 뉴스를 스크랩하고 여기 나온 주제로 논술, 토론 등을 하면서 ‘말하기’의 밑바탕에 기본적으로 ‘읽기’가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재환군은 “모든 말하기가 그렇지만 특히 토론에선 자료조사가 없으면 티가 확 난다”고 했다. “제 경우 말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배경지식이 없는 논제를 만나니까 할 말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로봇을 인간으로 취급해야 하냐는 논제였거든요. 잘 모르니까 그냥 흥분만 했죠. 뭔가를 조리 있게 말하려면 생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생각의 바탕이 되는 글을 읽어둬야 하잖아요. 하지만 공부 때문에 시간은 없고, 그럴 때 좋은 게 신문 같아요.”
이들의 말하기 실력은 철저한 ‘또래학습’의 결과이기도 하다. ‘말하기’는 둘 이상 또는 집단끼리 하는 것이기 때문에 논리가 안 맞는 부분부터 어색한 표현, 태도 등이 있으면 종종 서로 지적을 해준다. 재환군은 지영양이 면접관처럼 날카롭게 어색한 태도를 지적해줬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전 흥분해서 말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럼 지영이가 손가락으로 저지를 해줘요. 너무 흥분해서 말이 빨라지면 손가락 하나 들어주는 식이죠. 그것 말고도 상대방 발표하는 걸 보면서 말투, 속도, 눈빛 이런 걸 유심히 보면서 저도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하죠.”
동아리 활동에 더해 이들의 말하기 실력을 키워준 것은 일상의 습관들이다. 재환군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정말 사소하고 이상한 행동 같지만 혼자 중얼거리기를 잘한다”고 했다. 아무 의미 없는 말을 하는 건 아니다. “애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해요. 혼잣말한다구요. 근데 그냥 말하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어떤 주제에 대해서 혼자 머릿속으로 찬, 반을 나눠요. 그리고 제가 두 입장이 되어서 서로 치고받는 논리를 저 혼자서 말해보는 거예요.” 지영양은 “아빠와 대화 많이 나누고,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100분 토론> 등의 토론 프로그램을 많이 본다”고 했다.
말 잘하는 두 학생이 말하기를 통해 얻은 건 수상실적만은 아니었다. 말하기를 통해 논술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재환군은 “말하기가 그것 자체로 완성된 단계는 아니고 정점은 논술 같다”고 했다. “글쓰기 다음이 말하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전 아니라고 봐요. 읽기, 생각하기, 말하기, 쓰기 순서 아닐까요. 논술이라는 게 상대의 논리를 알고, 그것이 왜 타당하지 않은지 이유를 댈 수 있어야 하잖아요. 이때 말하기를 통해 상대 논리의 허점이 뭔지 짚고, 내 논리의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거 같아요. 단순히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는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논리적인 생각을 다지는 데도 말하기는 반드시 필요하죠.”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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