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27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27
[난이도 수준-중2~고1]
‘정의파’를 말리고 싶다.
‘정의란 무엇인가’ 제2탄이다. 두 주 전엔 선과 악의 문제로 정의를 말했다. 오늘은 전혀 다른 차원의 정의다. 누군가가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하리라. “다짜고짜 내리지는 말아야 할 것.” 정의(正義)가 아니라 정의(定義)다.
중딩 준석의 글은 초딩 은서의 그것보다 한 차원 높다. 은서는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준석은 주어진 명제를 다양하게 분석하려 한다. 중딩인 만큼 어른스럽게 철학적인 태도로 논리를 구사하려고 애를 쓴다. 이 과정에서 두드러져 보이는 게 바로 ‘정의’다.
“날라리란 무엇인가.”(날라리에 대하여) “‘센스’의 반대말, ‘난센스’. 센스에 ‘non’을 붙임으로서 ‘센스가 없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난센스는 ‘말이 안됨’을 일컫는 말이다.”(난센스퀴즈에 대하여) “……그 중에서도 학창 시절, 가장 인연이 깊은 사람은 ‘선생님’이다. 그럼 ‘선생님’이란 무엇인가?”(내가 만난 선생님) “동생, 자식이 둘 이상 있는 집안에서는 형, 언니, 오빠, 누나를 제외한 다음으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가족의 구성원이다.”(나에게 동생이란)
글의 도입부에선 예외없이 ‘~은 무엇인지’ 개념을 짚고 넘어간다. 날라리란? 난센스란? 선생님이란? 동생이란? 준석에게 굳어진 글버릇이 되었다. 나는 준석을 ‘못말리는 정의파’라고 정의하기로 했다. “개념정의부터 안 하면 글이 아니잖아요”라는 강박 또는 착각.
준석의 스타일이 그르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논리적 서술의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나가기 위해선 불가피할 수도 있다. ‘서론-본론-결론’ 또는 ‘기-승-전-결’이라는 글의 전통적 구성을 무턱대고 무시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럼에도 준석을 말리련다. 첫째, 매번 같은 방식으로‘만’ 쓰기 때문이다. 글의 흐름이 천편일률이다. 새롭게 쓰면 덧나니? 지난번에 A처럼 썼다면 이번엔 C처럼 써보자. 다음엔 X처럼, 다다음엔 Z처럼 써보자. 둘째, 창의적인 형식이 아니라서다. 개념정의란 다르게 말하면 ‘포괄적인 규정’이다. 어떤 논리를 증명하는 논술이 아닌 경우, 개론부터 더듬고 각론으로 가는 방식은 긴장감 없이 나태할 뿐이다. 자유롭게, 제멋대로 써야 한다. 주어진 틀에 얽매이지 마라. 왠지 준석은 틀의 노예가 된 것만 같아 슬프다.
준석은 ‘내가 만난 선생님’이란 글에서 ‘선생님’에 관해 정의한 뒤 선생님의 역사(조선시대), 선생님의 종류(학원 선생님, 과외 선생님 등등) 순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상상력을 전혀 자극하지 않는 ‘선생님 개론’이 아닌가. ‘개론’의 틀을 부수기 바란다. 그 대안 중 하나는 ‘하찮은 디테일’이다. 사람에 관해 전체적 인상부터 평할 수 있지만, 그의 새끼손톱에 낀 때만을 묘사할 수 있다. 새끼손톱의 디테일이 때로는 전체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선생님에 관한 글이라면, 잊지 못할 선생님과의 엉뚱한 추억 하나가 더 힘이 셀 수 있다는 말이다. 얼마 전 이 칼럼에서 ‘정색’이 가장 싫어하는 색이라고 했다. 정형도 좋을 리 없다. 김형, 이형, 박형, 최형, 윤형 다 좋은데 정형은 좀…. 정씨 제위들 화내지 마시길. 바른 형식의, ‘정형’(正形) 얘기다.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준석은 ‘내가 만난 선생님’이란 글에서 ‘선생님’에 관해 정의한 뒤 선생님의 역사(조선시대), 선생님의 종류(학원 선생님, 과외 선생님 등등) 순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상상력을 전혀 자극하지 않는 ‘선생님 개론’이 아닌가. ‘개론’의 틀을 부수기 바란다. 그 대안 중 하나는 ‘하찮은 디테일’이다. 사람에 관해 전체적 인상부터 평할 수 있지만, 그의 새끼손톱에 낀 때만을 묘사할 수 있다. 새끼손톱의 디테일이 때로는 전체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선생님에 관한 글이라면, 잊지 못할 선생님과의 엉뚱한 추억 하나가 더 힘이 셀 수 있다는 말이다. 얼마 전 이 칼럼에서 ‘정색’이 가장 싫어하는 색이라고 했다. 정형도 좋을 리 없다. 김형, 이형, 박형, 최형, 윤형 다 좋은데 정형은 좀…. 정씨 제위들 화내지 마시길. 바른 형식의, ‘정형’(正形) 얘기다.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