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난이도 수준-고2~고3]
8. 테러 - 높은 국격(國格)과 소셜 네트워크가 테러예방책이다?
로마는 너무 강했다. 몇 차례 맞섰던 유대인들은 된통 당하고 말았다. 그들은 싸우는 방법을 바꿨다. 로마와 손잡은 유대인들을 손보는 것으로 말이다. 첫 목표는 대(大)제사장이었다.
대제사장 주변은 늘 사람들로 붐볐다. 암살자는 웅성거리는 무리에 섞여 조용히 대제사장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시카리(sicari)라는 칼을 꺼내 휘둘렀다. 쏟아지는 피와 비명 소리, 순식간에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살인자는 도망치는 사람들 속에 조용히 몸을 숨겼다. 기원후 50년께, 이른바 ‘시카리파(派)’가 썼던 테러 방법이다.
누구를 해치고 파괴하는 것은 테러의 진짜 목적이 아니다. 테러(terror)는 원래 ‘공포’를 뜻한다. 테러리스트들은 두려움을 퍼뜨리는 데 더 신경을 쓴다. 제사장이 죽은 후, 높은 사람들은 시민들 무리에 섞이지 못했다. 누군가 다가오면 움찔 놀랄 정도였다. 로마와 친하다고 나댔다가는 칼을 맞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살해당한 사람은 몇 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공포는 모두에게 널리 퍼졌다. 그럴수록 로마에 대한 충성도 흐릿해졌다. 시카리파의 테러는 꽤 성공을 거둔 셈이다.
정치학자 공진성 교수에 따르면, 테러는 서로 다른 세 무리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첫째는 테러리스트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테러는 이들에게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두번째는 ‘적’들이다. 그들에게는 당신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긴다. 마지막은 돌아가는 일에 신경 안 쓰는 사람들이다. 테러는 이들의 관심도 끌어모은다. 죄 없는 이들도 테러에 희생되곤 한다. 이 지경으로 세상이 불안해졌으니, 당신도 어느 편인지 분명히 하라고 닦달하는 꼴이다.
로마가 즐겨 썼던 십자가 형벌도 마찬가지다. 십자가형은 ‘국가가 나서서 하는 테러’라 해도 좋겠다. 로마는 반역자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눈에 잘 띄는 곳에 내보였다. 이를 보는 로마 시민들은 속이 후련했을 터였다. 자기를 위협하던 자가 죽임을 당하니 말이다. 반면, 로마와 싸웠던 이들은 가슴이 철렁했을 테다. 자기도 저 신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심 없던 사람들도 정신이 퍼뜩 들었을 것이다. 섣부른 짓 했다가는 험한 꼴을 볼지 모른다고 말이다.
물론, 메시지를 제대로 전하려면 테러 대상도 중요하다. 9·11 때 알카에다는 세계무역센터와 미국 국방부 건물을 공격했다. 둘은 미국의 경제와 군사력을 대표하는 곳이다. 이런 데일수록 사람들의 눈과 귀는 더 쉽게 쏠린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인터넷이 널리 퍼진 곳은 테러하기도 좋다. 두려움이 더 빨리, 더 넓게 퍼지는 탓이다. 그러나 테러는 어느덧 너무 흔해지고 말았다. 테러 소식은 뉴스에서 하루도 빠지는 법이 없다. 그럴수록 사람들도 테러 소식에 심드렁해진다. 이럴 때 관심을 끌어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남보다 더 크고 잔인하게 테러를 하는 방법밖에 없겠다. 드라마의 폭력 수준이 점점 올라가듯, 테러의 끔찍함도 날로 더해만 간다.
그뿐 아니다. 테러도 ‘세계화’의 흐름을 피하지는 못한다. 이제는 테러리스트들끼리도 경쟁을 하는 시대다. 돈이 있어야 테러도 꾸리지 않겠는가. 세계 곳곳에서 오사마 빈라덴에게 테러 계획들이 흘러든단다. 알카에다는 이를 심사(?)하여 ‘활동 지원비’를 보낼지를 결정한다.
테러를 둘러싼 경제도 확실하게 꾸려진 모양새다. 테러를 일으키는 데 드는 돈은 매년 1조 5천억 달러에 이른다. 영국 1년 GDP에 2배에 이르는 규모다. 그럴수록 테러리즘을 뿌리뽑기는 어려워진다. 테러 산업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밥줄을 쉽게 내놓을 까닭이 없다.
테러를 없앨 방법은 무엇일까? 테러리스트를 찾아내어 벌을 주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원인을 잡지 못하면 병은 언제고 다시 도진다. 테러도 똑같다. 게다가 테러 자체만 신경을 쓰다 보면, 어느새 나라는 독재국가처럼 되어버린다.
도둑이 있기에 경찰도 있다. 테러리스트가 있기에 국가는 시민들을 감시하고 필요하면 군대도 푼다. 테러가 빈번할수록 나라 분위기는 점점 감옥처럼 바뀌어 간다. 이는 테러만큼이나 두려운 일이다.
테러를 송두리째 없애려면 ‘원인’부터 제대로 짚어내야 한다. 사람들은 왜 테러를 할까? 자기 할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테러를 할까? 세상을 설득해서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는 곳에서는 테러가 자리잡지 못한다. 폭력을 쓸 필요가 없을뿐더러, 테러를 했다간 사람들의 눈총만 사기 때문이다. 설득 없이 냅다 주먹부터 휘두르는 자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이렇게 보면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는 확실한 ‘테러 예방책’이다. 테러를 안 하고도 주장을 펼치고 정치세력을 모을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예멘에서 시카고 유대인 예배당으로 가는 폭탄 소포 2개가 발견되었다. 그리스에서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노린 폭탄 소포가 나왔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테러 비상이 걸렸다. G20 회의를 코앞에 둔 우리나라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호들갑을 떨수록 테러리스트들의 함박웃음은 늘어난다. 그들의 목적은 ‘두려움의 확산’에 있다. 터지지도 않은 폭탄이 터진 폭탄과 똑같은 효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정말 테러를 막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존경받는 나라’가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정의로운 사람이나 국가가 고통받는 모습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이들을 상대로 테러를 벌이기는 어렵다. 테러리스트라고 주변에 적만 잔뜩 만들 짓을 할 까닭은 없다. 겁먹은 모습을 보일수록 테러는 기승을 부린다. 그러나 정의롭고 떳떳한 마음은 두려움을 없앤다. 제대로 된 국격(國格)이 절실해지는 요즘이다.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테러〉공진성 지음/ 책세상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