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린 리. 디베이트 교육 전문가.
[함께하는 교육] 대한민국 교육을 바꾼다, 디베이트 /
조사→읽기→말하기→듣기→글쓰기
1석5조의 학습 효과를 한꺼번에
조사→읽기→말하기→듣기→글쓰기
1석5조의 학습 효과를 한꺼번에
2. 디베이트를 ‘형식적인 토론’이라고 하는 이유
3. 읽고 쓰고 듣고 말하기를 한꺼번에 - 디베이트의 놀라운 효과
4. 인터뷰, 리더십, 인성교육, 자원봉사, 시민의식 교육에 대입까지 - 디베이트의 놀라운 효과 2
디베이트 프로그램은 공부에 관한 한 종합예술이다. 음악으로 치자면 오케스트라와 마찬가지다. 공부에 필요한 요소가 다 들어 있다. 그러니 같은 시간에 훨씬 다양한 효과를 내는 것이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디베이트 주제가 정해지면 참가 학생들은 우선 자료를 찾아야 한다. 조사(Research)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교복을 착용하는 것이 좋은가’를 두고 디베이트를 한다고 하자. 그럼 학생들은 교복을 제정하게 된 배경, 당시의 논란, 이후 발생한 교복의 부정적 측면 및 긍정적 측면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학생들에게 디베이트 리서치를 하라고 시키지는 않는다. 아직은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해서 처음에는 디베이트 코치가 주제와 함께 관련 자료를 대신 찾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시대회에 나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어린 학생들이라고 해도 주제만 달랑 주기 때문에 관련 조사는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과정을 주기적으로 하다 보면 주제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내는 능력이 향상된다.
조사된 자료는 읽어야 한다. 읽기(Reading) 활동이다. 그런데 이게 간단한 읽기가 아니다. 이른바 비판적 읽기(Critical Reading)다. 자료를 읽으면서 한편으로 그 자료가 제시하는 포인트와 근거, 사례를 자기 머릿속에서 재구성해야 한다. 또 디베이트는 매주 또는 격주, 한달별로 주제가 달라진다. 참가자들은 매번 새로운 주제의 글을 읽으면서 ‘다양한 글 읽기’를 한다. 주지하다시피 읽기에서 중요한 것은 비판적 독해와 다양한 글 읽기이다. 디베이트를 하게 되면 이게 저절로 가능해진다.
읽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향상되는 것은 어휘 능력이다. 매번 주제가 달라지는 만큼 관련된 핵심 어휘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이라크 포로에 관한 주제라면 국제법, 전쟁, 평화, 제네바 협정, 인권 같은 단어들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런 단어들을 자료를 통해 되풀이해서 읽으면서 그 낱말의 뜻과 쓰임새를 익힌다. 원래부터가 어휘는 이런 식으로 익히는 것이 아니었던가?
만약 디베이트 주제를 일주일에 하나씩 바꾼다면 일년이면 약 50개의 주제를 다루게 된다. 4년이면 200개가 된다. 내 경험으로는 디베이트를 4년 정도 하면 모르는 것이 없게 된다. 우리 생활의 이슈들이라고 해봐야 200개 정도로 정리되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에 이를 모두 찬성과 반대의 입장에서 한번쯤 리뷰해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니 똑똑해질 수밖에 없다.
여담이지만 나는 학부모들한테서 “디베이트를 하더니 아이가 뉴스를 곧잘 들어요!” 하는 소리를 듣곤 했다. 어릴 때는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의 배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텔레비전의 뉴스 시간이 지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디베이트를 하게 되면 이 세상 주요 정책이나 사건들이 어떤 논쟁을 배경으로 발생한 것인지를 알게 되고, 이렇게 배경을 이해하니 뉴스가 재미있어지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한가지 더 경험을 소개한다. 디베이트 초창기 이야기다. 미국에서 내가 한 디베이트 설명을 듣고, 어떤 부모님이 자녀에게 디베이트에 참여하도록 권했다. 그리고 보름인가 지났을까, 그 부모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거 좀 큰일이네요. 아이가 일주일 내내 디베이트 준비만 해요.”
“그게 왜 문제죠?”
“자료를 읽고 이를 찬반으로 나누고, 포인트를 찾아내고, 근거와 사례를 구별하고, 반박 포인트를 찾아야 하는데, 일주일 내내 자료만 읽으면서 끙끙거려요.”
‘아하!’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았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그랬으니까. 당시 나는 세미나식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관련 자료를 읽을 때 무슨 내용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으나, 이를 비판적으로 분석해서 읽어내지는 못했다. 비판적 읽기가 안 되었던 것이다.
‘이해는 가지만, 분석할 수는 없다.’ 다지선다형 문제풀이만 훈련했던 내가 대학에서 부딪혔던 문제를 이 학생은 디베이트에서 부딪혔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걸 제대로 하자고 디베이트를 하는 거예요. 디베이트 열심히 하면 그런 능력이 저절로 생겨요. 걱정 마세요. 격려나 많이 해주세요.”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나는 그 어머니에게 지금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 어머니의 답이다.
“어휴… 이제는요, 자료를 읽어가면서 바로 그 자료에 메모를 해요. 이건 찬성 포인트, 이건 반박의 예… 이런 식으로요. 전엔 일주일 걸리던 것이 이젠 한시간이면 충분해요.”
당시 5학년이던 그 학생은 이후 발표력이 늘어 중학교에 가서 부학생장까지 했고, 여세를 몰아 미국 최고의 기숙학교(보딩스쿨)라는 필립스 엑서터에 전액장학금을 받고 진학했다. 당시 전업주부였던 그 어머니는 얼마 뒤 우리와 손잡고 디베이트 전문 센터를 차려 수없는 디베이터들을 양성했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자. 디베이트를 하게 되면 말하기(Speech) 능력도 향상된다.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발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는 말하는 내용이 논리적인가도 훈련하지만, 말하기의 형식, 그러니까 목소리, 톤, 몸짓(제스처), 눈맞춤도 더불어 훈련하게 된다. 이런 스피치 훈련을 어려서부터 하면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이 무섭지 않게 된다. 오히려 자신있는 태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스피치를 할 수 있게 된다.
오랜 세월 한국에서는 ‘침묵은 금’ 또는 ‘어른 앞에서는 말을 삼가라’ 혹은 ‘과묵한 사람이 좋다’는 풍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대학가에서도 ‘공통적으로 한국 학생들은 조용한 것이 특징’이란 말까지 있을 정도다. 하지만 글로벌 사회에서는 좀더 적극적이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유리하다. 글로벌 인재를 지향하는 학생에게 디베이트는 필수 교육 활동이다.
디베이트를 하게 되면 듣는(Listening) 실력도 늘게된다. 청력이 개선된다는 뜻이 아니다. 이른바 비판적 듣기다.
어떤 사람은 어디서나 자기 혼자서 말하려고 한다. 남이 말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남이 말하고 있을 때 경청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한다. 그러고는 그 사람 말이 끝나면 애먼 소리를 한다. 어떤 사람은 남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중간에 자르고 들어온다. 모두들 듣는 훈련이 안 된 결과다. 우리 주변에 보면 이런 사람들 부지기수다. 이런 사람들끼리 모여 회의를 하면 5분도 안 되어 고성이 난무하고, 결과물은 없다.
그런데 디베이트를 하면 듣는 훈련이 자연스럽게 된다. 우선은 디베이트 순서 자체에 남이 말할 때 나는 들어야 하는 시간이 있다. 남이 말할 때 내가 끼어들면 이건 디베이트 규칙을 어기는 것이다. 또 들을 때는 경청하면서 노트를 해야 한다. 말하는 사람의 포인트를 잡아내려 애써야 한다. 그래야 다음번 순서 때 상대방의 논리 허점을 지적하면서 자기 논리를 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노트하는 능력도 자연스레 향상된다. 실제 디베이트 대회 현장에 나가 보면 참가 학생들이 하나라도 빠뜨릴세라 열심히 듣고 적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마지막이다. 디베이트를 하게 되면 에세이 연습이 된다. 이는 두가지 측면에서 가능하다. 하나는 디베이트 프로그팸 자체에 맨 마지막 순서로 디베이트가 끝날 때마다 학생들에게 에세이를 쓰게 한다. 그러니 자연스레 에세이 실력이 늘게 된다. 또 디베이트에서 하는 찬성과 반대 논리 개발 자체가 에세이의 구조와 같다. 에세이는 흔히 도입부, 주장 1, 주장 2, 주장 3, 결론의 구조로 이뤄진다. 디베이트에서 연습하는 내용과 일치한다. 입론 부분에서의 발언은 도입부에 해당하고 주장은 각 팀에서 하는 포인트에 해당한다. 그리고 결론은 디베이트에서도 결론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실은 디베이트를 하는 것 자체가 에세이 논리 연습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디베이트틀 잘하면 에세이도 저절로 잘 쓰게 되는 것이다.
Help@TogetherDebateClub.com
※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은 필자 사정으로 2주 동안 쉽니다.
디베이트는 투자한 시간에 비해 거둘 수 있는 효과가 큰 교육 방법이다. 사진은 가정독서모임에서 토론을 하는 모습이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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