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난이도 수준-고2~고3]
16. 계몽의 변증법: 야만으로 후퇴하는 현대 - 문화산업, 독재보다 무서운
<계몽의 변증법-야만으로 후퇴하는 현대>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지음/노명우 풀어씀/살림
예술가들은 장사치들을 대놓고 무시했다. 저잣거리의 작자들이 어찌 고상한 예술을 이해하겠는가. 제대로 감상하려면 교양과 학식을 갖추어야 한다. 나아가, 아름다움을 진정 아는 사람들은 예술가들에게 기꺼이 도움을 베푼다. 부자나 귀족은 기꺼이 후원자가 되어 지갑을 열었다. ‘패트런’(patron)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대중예술’은 이런 태도를 고까워한다. 몇몇 사람만 즐기는 음악과 미술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생활인의 삶은 지겹고 힘든 법이다. 예술은 지루하고 무거운 일상에 재미와 감동을 주어야 한다. 예술은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오락거리여야 한다는 논리다. 이들의 주장은 한발 더 나아간다. 예술가들은 더 이상 힘 있고 돈 많은 몇몇에게 기댈 필요가 없다. 제대로 된 작품이라면 보통 사람들도 기꺼이 돈을 내고 즐길 테다. 패트런은 더 이상 귀족이나 돈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일반 시민이 ‘패트런’이 되는 셈이다. 이제는 예술 작품도 상품과 다르지 않다. 인기를 모으면 더 많이 팔리고, 주머니가 두둑해지면 원하는 예술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많이 팔릴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렇게 예술은 ‘비즈니스’가 되었다. 이제 ‘문화산업’이라는 말도 낯설지 않다. 돈의 눈으로 보자면, 자동차 만드는 작업이나 노래를 만드는 일이나 별다르지 않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는 벌어들일 돈이 판가름해줄 테다.
물론 시장은 민주주의를 낳곤 한다. 장사를 하려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래서 예술이 상품이 될수록, 문화는 점점 사람들에게 다가가려 한다.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기는 수준으로 자리잡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문화산업 논리가 꼭 마음 편하게 다가오지만은 않는다. 왜 그럴까?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그 이유를 조목조목 풀어준다. 문화산업은 독재보다도 훨씬 무섭다. 독재자는 일일이 예술에 간섭하며,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활동은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문화산업도 똑같다. 상업예술이 판을 치는 곳에선 돈이 되지 않는 예술은 자리잡을 곳이 없다. 독재자는 권력의 잣대로 예술을 억누른다. 반면 문화산업은 돈의 논리로 예술가들을 옥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돈의 독재’를 좀처럼 깨닫지 못한다. 문화산업은 사람들의 욕망을 채워주면서 서서히 사회를 길들여 나가기 때문이다. “라디오를 듣는 이들은 히틀러의 연설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토스카니니(유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 방송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게다가 문화산업은 창의성마저 억누른다. 돈이 지배하는 예술 시장에서는 획기적인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튀는 시도가 버겁게 다가오는 탓이다. 대중은 눈과 귀에 익숙해진 스토리에 더 끌린다. 할리우드 영화나 인기 티브이 드라마도 내용이 비슷비슷하지 않던가. 시장은 예술가들에게 ‘틀을 깨는 참신함’을 바라지 않는다. 색다른 양념 정도의 변화만을 바랄 뿐이다. 문화산업에서 “새로움은 새로움을 없애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산업이 자리잡을수록 사람들의 모양새도 비슷해진다. 어떤 권력자가 나서서 사람들의 차림새와 행동거지를 일일이 간섭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서로 다르게 보이지 않으려 노력한다. 대중예술이 유행을 이끄는 덕분이다. “아웃사이더가 된다는 것은 큰 죄다.” 인기 연예인들은 광고로, 드라마로, 우리가 어떻게 입고 말해야 하는지에 대한 ‘행동 기준’을 내놓는다. 유행의 힘은 정치선전보다 훨씬 더 효과가 있다. 사람들이 스스로 나서서 흐름을 따라가려 하는 탓이다.
동시에 유행은 사람들을 좌절시키기도 한다. “착 달라붙은 스웨터 속의 가슴, 스포츠 영웅의 벌거벗은 윗몸은 사람들의 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긴다. (중략) 그럼에도 이는 현실적으로 채워지지 못할 욕심일 뿐이다.” 사람들은 뜨거운 눈으로 연예인들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욕구를 접는 법을 계속 연습하는 셈이다. 이렇게 문화산업은 사람들을 작아지도록 길들인다.
문화산업은 로또복권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연예기획사들은 스타를 ‘우연히’ 캐스팅했다는 점을 강조하곤 한다. 누구나 신데렐라가 될 수 있음을 은근히 내세우는 식이다. “신인 여배우는 화려한 옷을 입는다는 점에서 보통 사람과 차이가 난다. 하지만 그녀는 근본적으로 여(성)사무원의 상징이다.” 스타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자신에게도 행운이 찾아올지 모른다며 가슴 설레어 한다. 물론, 사람들은 이것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꿈이라는 사실도 안다. 이러면서 일상의 비루함을 더욱 잘 받아들이게 된다.
문화산업의 무서움은 더 큰 곳에 있다. 사람들은 일터에서 비슷비슷한 삶을 산다. 대중문화는 여가시간까지도 똑같게 만들어 버린다. 저녁이면 텔레비전을 켜고 누구나 아는 연예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본다. 이렇게 사람들의 생각도, 대화 거리도 도토리 키 재기가 된다. 이렇게 대중문화는 독재 사회로 사람들을 은근하게 밀고 나간다.
<계몽의 변증법>은 ‘역사상 가장 어두운 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문화산업의 힘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이 물음에 답을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계몽의 변증법>은 무겁고 두려운 예언서처럼 다가온다.
인기 걸그룹 멤버들이 갈등을 겪었나 보다. 한때 팀이 해체 위기까지 몰렸단다. 우리와 일본의 팬들의 마음고생이 컸다. 그러나 20년 뒤에도 우리는 이 걸그룹을 마음에 품고 살고 있을까. 대중의 마음속에 인기그룹은 언제나 바뀐다. 인기 떨어진 걸그룹은 다른 걸그룹이 대신할 테다. 그들의 매력에 한없이 끌리면서도 마음에 찾아드는 처연함은 무엇 때문일까?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대중예술’은 이런 태도를 고까워한다. 몇몇 사람만 즐기는 음악과 미술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생활인의 삶은 지겹고 힘든 법이다. 예술은 지루하고 무거운 일상에 재미와 감동을 주어야 한다. 예술은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오락거리여야 한다는 논리다. 이들의 주장은 한발 더 나아간다. 예술가들은 더 이상 힘 있고 돈 많은 몇몇에게 기댈 필요가 없다. 제대로 된 작품이라면 보통 사람들도 기꺼이 돈을 내고 즐길 테다. 패트런은 더 이상 귀족이나 돈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일반 시민이 ‘패트런’이 되는 셈이다. 이제는 예술 작품도 상품과 다르지 않다. 인기를 모으면 더 많이 팔리고, 주머니가 두둑해지면 원하는 예술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많이 팔릴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렇게 예술은 ‘비즈니스’가 되었다. 이제 ‘문화산업’이라는 말도 낯설지 않다. 돈의 눈으로 보자면, 자동차 만드는 작업이나 노래를 만드는 일이나 별다르지 않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는 벌어들일 돈이 판가름해줄 테다.
<계몽의 변증법-야만으로 후퇴하는 현대>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지음/노명우 풀어씀/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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