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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드라마, 우리 시대 최고의 소비재

등록 2011-02-28 09:20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난이도 수준-고2~고3]

18.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 왜 우리는 드라마에 빠져들까?: 드라마, 시대를 비추는 거울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이영미 지음 생각의 나무

1950년대, ‘눈물의 여왕’이라 불리는 전옥(全玉)은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그녀가 나온 작품들은 제목부터 억울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화류비련> 등등. 맡은 배역도 그랬다. 겁탈당해 정조를 잃은 부인, 기생이라 당당하게 가족 앞에 서지 못하는 여인, 죄 많아 자식과 생이별하는 어미 같은 역이었다.


기막히게 답답한 상황, 영화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눈물을 철철 흘리며 자신의 한 많은 신세를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다. 거친 세상에 질질 끌려가는 불쌍한 여인의 모습이다. 당시 인기를 끌던 ‘신파극’의 풍경이다.

관객들은 그녀의 절절한 연기에 눈물을 쏟았다. 왜 사람들은 전옥에게 빠져들었을까? 자신들의 처지와 전옥의 역이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독한 일본 전쟁과 6·25 전쟁은 세상을 한없이 신산스럽게 했다. 여성의 인권이 바닥이었던 시대, 여인들의 고난과 희생은 또 어땠겠는가. 전옥은 한 많은 조선 여인네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아이콘’이었던 셈이다.

1960년대에 들어서자 신파의 인기는 수그러들었다. ‘잘살아 보자’는 외침이 농촌에 퍼져나가던 시기, 눈물만 찍어내는 여인이 매력 있을 리 없었다. 이 시대에는 “남자 열 몫을 해낼 정도로 강인함과 고집이 있어 보이면서도, 되바라지지 않게 과묵하고 현숙한 이미지를 가진” 여배우가 인기를 끌었다. 한마디로 맏며느리 같은 스타일이다.

최은희는 당시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쌀>에서, 그녀는 억척여인으로 나온다. 영화에서 그녀는 애인을 도와 산간마을에 굴을 뚫어 물길을 끌어들이는 사업을 당당하게 이루어낸다. 인기드라마 <아씨>도 마찬가지다. 아씨는 온갖 어려움을 딛고 종갓집을 지켜낸 품위 있는 맏며느리로 그려진다.

1970년대는 청춘 문화가 꽃피었던 시기다. 이때에 와서야 여주인공들은 주부의 모습을 벗어던진다. 이른바 ‘안인숙적 인물형’들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난 아직 어려요. 열아홉 살인걸요/ 화장도 할 줄 몰라요/ 사랑은 처음인걸요.” 영화 <별들의 고향>에 나오는 ‘열아홉 살이에요’라는 노래의 가사다. 사람들은 철부지 같고 때 묻지 않은 세련된 여인들에게 매력을 느꼈다.

이처럼 영화와 드라마의 여주인공 모습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티브이드라마를 머리 굴리며 보고 싶은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은 고단한 일상에서 놓여나기 위해 화면에 빠져들 테다. 오락물로 드라마를 ‘소비’하는 셈이다. 대중예술은 사람들의 ‘평균적인 감수성’에 비위를 맞춘다. 어떻게 해야 ‘드라마 소비자’들의 눈을 티브이에 붙들어 맬까?

방법은 간단하다. 사람들의 소망을 드러내고 아쉬운 부분을 긁어줄 것. 여주인공이 각 시대마다 가장 매력적인 여인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가 꿈꾸는 여성의 모습은 어떨까? 대중예술평론가 이영미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물음의 답을 찾아낸다.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이영미 지음 /생각의 나무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이영미 지음 /생각의 나무

1994년에 인기를 끌었던 <종합병원>을 예로 들어보자. 주인공 신은경은 남성같이 털털한 모습으로 나온다. 90년대 들어서 여성의 직장생활은 당연한 듯 여겨졌다. 경쟁하며 야망을 틔우는 ‘커리어 우먼’이 당당하게 여주인공의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여주인공들의 모습은 되레 남성들 뒤로 숨는 모양새다. 이영미는 이런 특징을 드라마 <궁>의 윤은혜 배역에서 찾는다. 여주인공들에게는 야망이 없다. 그렇다고 별다른 재주도 없다. ‘킹카’를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것 정도가 인생의 꿈이다. 당연히 스토리도 자잘한 오해와 애정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설명이 잘 다가오지 않는다면, <꽃보다 남자>에서 금잔디를 떠올려보라. 그녀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그럼에도 꽃미남 네 명은 죽자고 그녀를 좋아한다. 금잔디가 사랑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연히’ 돈 많고 잘생긴 남자들을 만나는 판타지가 행운처럼 찾아들었을 뿐이다.

이런 여주인공들의 모습은 많은 생각거리를 담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시대, 이제 노력으로 성공을 이루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유일한 희망은 돈 많고 멋진 누군가가 ‘행운’처럼 자기를 선택해주는 것 밖에 없다. 이런 암담한 현실은 지금 드라마에 그대로 나타난다. 넓게 보면 <성균관 스캔들>에서의 김윤희도 이 부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싶다. 자신을 바라보는 이선준이 없다면 김윤희의 치열한 공부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

‘시체도 일으켜 텔레비전 앞에 앉힐 작가’라는 우러름을 받는 김수현에 대한 분석도 눈길을 끈다. 김수현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은 개성이 뚜렷하고 자기 색깔을 분명하게 내세운다. 하지만 그녀들의 마음을 끄는 남자 주인공들은 더 강하고 능력 있다. 여주인공은 당차지만, 자신의 남자를 책임지는 수준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묘하게 가부장제의 그늘 안으로 숨는 모양새다. 이렇게 이영미는 드라마를 통해 우리 사회의 맨얼굴을 샅샅이 드러내고 보여준다. 이 점에서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라는 제목은 책의 내용과도 잘 어울린다.

주목받던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이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여러 질병에 시달렸지만, 죽음에 이르는 데는 생활의 어려움이 큰 몫을 했다는 평가다. 이를 계기로 열악한 대중예술가들의 생활이 비로소 사회의 관심을 끌고 있다. 대중예술에는 한 시대의 환상과 꿈이 담긴다. 모질고 거친 생활을 겪는 작가가 균형 있게 사회를 바라보고 건강한 꿈을 꾸기가 쉬울까? 나약해지는 여주인공들의 모습은 작가들의 처지와 관계없을까? 작가들의 생활고가 우리 시대 예술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칠 듯싶지 않다. 최고은의 죽음이 안쓰러움을 넘어 문화의 위기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시사브리핑: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지난 1월29일,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자신의 집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웃집 문에 붙여놓은 마지막 메시지는 “창피하지만 남은 밥과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였다. 그녀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예술가를 위한 복지체계가 부실했음을 자성하는 목소리가 높다. 최씨의 죽음을 계기로 예술가 복지를 위한 법안 제정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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