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계약 만료를 앞둔 영어회화전문강사들이 1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소복을 입고 해고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4년 만료된 526명 해고 직면
‘62살 정년 가능’ 약속 헌신짝
“창고서 수업·임신했다고 퇴직…
학교에선 비정규직 차별 설움”
‘62살 정년 가능’ 약속 헌신짝
“창고서 수업·임신했다고 퇴직…
학교에선 비정규직 차별 설움”
4년 전, 아니 지난해까지만 해도 자신이 죽음을 상징하는 하얀 소복을 입고 기자회견을 열 것이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19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만난 경북의 한 중학교 영어회화전문강사(영어강사) 김경휘(44·여)씨는 “지금 이 상황이 혼란스럽다”고 했다. 초·중·고교에서 정규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영어회화를 가르치는 영어강사 526명의 대규모 계약해지가 코앞으로 다가온 탓이다. 김씨도 그중 한 명이다.
원래 기아차에서 근무하다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둔 김씨는 2008년 실용영어를 가르치는 학교 영어강사 직종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1년간 준비에 매진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김씨는 영어회화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전문자격증인 테솔 과정을 이수했고, 학원강사로 일한 경험도 있다. 2009년 김씨가 본 교육청의 공고문에는 ‘62살까지 정년 가능’, ‘한 학교 4년 근무’라고 표기돼 있었다. 당시 그는 이 영어강사직을 “비전이 있는 직업”으로 여겼다. 그래서 더욱 지금의 상황이 믿기질 않는다.
시험 절차도 까다로웠다. 1차 서류전형에는 테솔 자격과 영문과 졸업 학력, 학원강사 경력을 냈다. 2차 전형에서는 본인이 미리 낸 수업계획서의 내용을 통째로 외워 장학사 3명 앞에서 영어로 수업했다. 3차에서는 장학사와 원어민의 영어 면접을 봤다. 어렵게 통과한 만큼 자부심도 컸다. 그런데 합격하고 나서부터 낌새가 이상했다. 장학사들은 ‘제도가 처음 시행돼 영어강사의 미래와 관련해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는 “처음 일주일 연수를 갔는데, 생각했던 것과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계약서를 쓸 때도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것일 뿐 4년이 지나면 완전히 계약이 해지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영어강사 생활은 간단치 않았다. 비정규직이라 겪는 설움이 많았다. 제도 도입 초기인 2009년에는 특히 심했다. “저는 그나마 학교에서 잘해준 편이에요. 다른 강사는 교실이 없으니까 창고에 가서 수업하라고 해서 직접 청소를 다 하고 수업했다고도 하더라고요. 임신했다고 퇴직을 강요해 유산된 경우도 봤고요.”
차별은 그의 ‘친구’였다. 정규교사와 비슷한 수준으로 일을 하지만, 명절 때 나오는 명절수당은 받아본 적이 없다. 성과급이나 복지 성격의 학자금 보조도 없다. 김씨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고, 다른 교사들도 말을 안 해주니까 명절수당 등이 얼마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방학이 돼도 쉬지 못했다. 정규교사는 당직 설 때 하루 정도 나오지만, 영어강사들은 방학 내내 학교에서 진행하는 영어캠프를 준비하고 가르쳐야 했다. 방학 중 원어민 강사들의 수업 관리도 김씨의 몫이다.
그는 “이렇게 영어강사로 1년 정도 일하며 차츰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영어강사 운용과 관련한 교육청의 지침이 중간에 계속 개정돼 내려오더라고요. 영어강사가 없어진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교육부에 물어보면 아니라고만 하고….”
그러던 터에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4년 근무자들이 4년 추가 근무할 수 있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김씨는 다른 영어강사 2명과 함께 직접 교육부를 찾아 담당 팀장을 만나기도 했다. “그때 담당자는 확신을 했어요. 반드시 고용이 안정될 수 있게 하겠다고. 안 되면 옷을 벗겠다고까지 했어요.”
4년을 추가로 일해봐야 도로 4년의 비정규직 생활을 하는 것이지만, 그나마도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교육부와 계속 대화를 해왔는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에요. 퇴직 절차를 거쳐 새로 학교의 시험에 응시하라고 하는데 공정한 시험이 될지 모르겠어요. 응한다고 해서 된다는 보장도 없고, 저도 아이들이 고1, 중2이기 때문에 대학까지 보내려면 돈이 많이 필요한데, 남편 혼자서는 힘들잖아요. 그나마 저는 괜찮지만, 한부모 가정의 가장인 분들이 너무 많아요.” 김씨가 말끝을 흐렸다.
김씨와 같은 1기 영어강사에 이어 2기로 선발된 1500여명은 내년 2월, 3기로 선발된 1000여명도 2015년 2월이면 계약기간 4년을 채우게 된다. 무더기 해고가 매년 이어지게 돼 있다. 그에게 학교란 항상 필요한 일을 비정규직에게 시키고 필요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잘라버리는 회전톱날에 불과하다.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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