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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여학생은 시집이나 잘 가라고? 고조선이야 뭐야~”

등록 2017-05-23 08:40수정 2021-12-11 11:33

[함께하는 교육] 청소년 ‘이슈메이커’를 만나다

세월호·강남역여성살인·탄핵 등
어지러웠던 정치·사회 분위기 속
‘우리도 할 말 있다’ 나선 청소년

성평등 문화제 기획·주최하고
동아리·신문 등 다양한 채널 활용해
‘어젠다’ 던지며 목소리 냅니다
지난 14일 오후 1시 서울 홍익어린이공원에서 고양국제고 페미니즘 동아리 ‘퓨로’
지난 14일 오후 1시 서울 홍익어린이공원에서 고양국제고 페미니즘 동아리 ‘퓨로’

지난 9일 치른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투표권이 없는 만 19살 미만 청소년 5만여명이 ‘모의대선’에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청소년 참정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끌기 위해 교육공약 등을 꼼꼼하게 살핀 학생들은 온·오프라인 모의투표를 진행하며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경험을 해봤다. 어른들에게 ‘우리도 시민의 한 사람이고, 말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비단 선거 이슈만이 아니다. 최근 청소년들은 신문, 동아리, 방송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또래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또는 ‘가져야 하는’ 사회·정치 어젠다를 내놓으며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청소년 이슈메이커’라 불릴 정도로 주목받는 활동을 하는 이들도 많다. 유명인사나 연예인만큼은 아니지만 청소년들 사이에서 각종 어젠다를 내놓으며 시선을 끄는 청소년 이슈메이커들을 만나봤다.

“성평등교육 10분만 투자해도 사회 바뀔 겁니다”

“성차별 조장하는 ‘학교 성교육 표준안’ 즉각 수정하라!”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여성혐오’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홍익어린이공원. 고양국제고등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퓨로’와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등이 기획·주최한 ‘이제는 성평등을 배우고 싶다’ 문화제(이하 문화제) 현장을 본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흥미롭게 부스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문화제 참가자들은 ‘이제는 성평등 급훈이다!’라는 부스 행사를 통해 그동안 교실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적어나가며 자유롭게 토론했다. ‘그 얼굴에 공부까지 못하면 안습이다’,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 등의 급훈은 ‘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에 10분만 투자하면 차별 없는 세상 10년 앞당길 수 있다’로 바뀌었다. 참가자들은 “여성을 대상화하고 특정 직업을 비하하는 급훈은 ‘조선 시대’로 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양국제고 ‘퓨로’는 최근 활동을 시작한 페미니즘 동아리다. 이 학교 2학년 학생 7명이 활동 중이다. ‘퓨로’를 이끄는 강태린양은 “중학교 2학년 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사건 이후 신문과 뉴스를 챙겨보게 됐고,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 등을 통해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강양은 “고교 입학 뒤 뜻 맞는 친구들과 ‘여성 인권 동아리’를 만들게 됐다”며 “저도 처음에는 페미니즘에 ‘알 수 없는 거부감’이 있었는데, 책 읽고 공부해보니 ‘페미니스트=성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라 생각해서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기득권은 ‘성별 비하 발언’ 등 ‘일상적 폭력’에 노출돼 있지 않아요. 하지만 약자들은 다르죠. ‘퓨로’의 활동 목표는 ‘일상 속에서 무감각해진 젠더 감수성 깨우기’입니다.”

이들은 지난달 교내에서 ‘여성성과 남성성 인식 조사’ 등 설문도 진행했다. 김지윤양과 구연재양은 “동성커플 사진과 화장을 한 남자 사진, 권투하는 여성 사진 등을 전시해 ‘자연스럽다’, ‘낯설다’, ‘신기하다’ 등의 스티커를 붙이게 했다”며 “90%의 친구들이 동성커플에 대해서는 ‘자연스럽다’를 선택했고, 화장한 남자 사진에는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설문을 통해 ‘젠더 감수성 키우기’ 등 다음 활동 방향을 기획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요구받는 ‘젠더 이분법’에 대해 의문을 가져보면서 시작한 활동이었죠.”

세월호~탄핵…‘청소년 이슈메이커’ 등장 불러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게 미덕’인 줄만 알았던 청소년들이 자신을 둘러싼 사회·정치적 의제들을 들고나온 데는 몇 년 전부터 불어온 사건들 영향이 컸다. 세월호 참사와 강남역 10번 출구 여성 살인사건, 탄핵 정국 등 우리 사회로서는 상처였던 사건·사고가 역설적으로 이들에게 ‘너희를 둘러싼 사회적 의제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권유한 셈이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일상 속 차별에 혼자서 아파하던 청소년들이 특히 세월호 이후 광장에서의 연대 경험을 통해 모이기 시작한 것”이라며 “‘9년 보수정권’ 이후 사회 변혁에 대한 청소년들의 열망이 드러나는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등 역사적으로 십대는 정치 참여의 주체였다. 그러다 1980년대 이후 ‘청소년’에 대한 개념이 ‘비정치적’, ‘비성적’ 주체로 바뀌며 그들을 ‘관리의 대상’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십대들이 자신만의 목소리로 의제를 내놓으며 시작한 자생적인 풀뿌리 활동은, 민주사회를 위한 아주 희망적인 신호입니다.”

‘여성 청소년’에 주목하는 사례 특히 많아

최근에는 특히 ‘여성’이자 ‘청소년’이라는 교차 정체성에 주목하는 인권동아리 활동이 활발하다. 충북 보은여자고등학교의 인권동아리 ‘소수자들’도 그 가운데 하나. 두 달 전 1학년 학생 11명으로 시작한 신생 동아리임에도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지, 여고생은 순결하다고. 신입생 수 56명, 작은 시골학교에서 들리는 목소리.” 온라인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 올라온 ‘소수자들’ 프로젝트 내용 가운데 일부다. 학생들이 직접 기획·디자인한 여성 인권 관련 물품(굿즈)은 ‘대박’이 났다. 지난달 20일부터 5월1일까지 진행한 ‘프로젝트 밀어주기’ 누리꾼 후원인만 102명, 후원 목표액 40만원을 훌쩍 넘겨 93만6000원이 모였다.

여성 인권운동을 상징하는 ‘빵과 장미’ 모양의 배지를 비롯해 청소년을 뜻하는 교복 모양 배지에는 ‘GIRL?’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여학생에게 ‘소녀다움’과 ‘순결함’을 요구하는 사회적 시선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의미다.

프로젝트 펀딩에 성공한 ‘소수자들’은 지난 13~14일 서울 마포구 소재 문화공간 ‘탈영역우정국’에서 진행한 페미니즘 페스티벌 ‘페밋’(FEMEET)에 참여해 ‘페미니스트 실팔찌 만들기’, ‘내가 바라는 여성주의 쿠키 만들기’, ‘내가 생각하는 여성상’ 등 체험 부스도 진행했다.

‘소수자들’을 이끄는 김하린양은 “올해 처음 만든 동아리이고 학교 예산도 적어서 활동 후원금이 필요했다”며 “서울에서 열리는 인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고심 끝에 후원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많은 응원을 보내주셨다”고 했다.

“‘여자가 시집이나 잘 가면 그만이지’, ‘여학생이 반짇고리도 안 가지고 다녀?’, ‘여자가 무슨 취업이야. 현모양처 되는 게 최고야’ 등 성차별 발언을 여과 없이 하시는 일부 선생님을 보고 ‘우리끼리라도 동아리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나은 가치관을 선물해주자’고 의기투합했어요.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비백인종, 청소년 등 5개 영역에 대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차별금지법 제정’ 관련 세미나를 했고,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등 책을 읽고 독서 토론도 하고 있습니다.”

탈가정·알바 등 다양한 경험, ‘매체’ 만들어 소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격월마다 발행하는 청소년 신문 <요즘것들>도 ‘이슈 메이킹’에 앞장서고 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나름 유명세를 치르는 중이다. <요즘것들>은 2014년 첫 호를 시작으로 지난달에 15호 2000부를 찍어냈다.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니다 올해 초 ‘탈학교’한 이현민(19)씨는 “학생인권조례를 비롯해 용의복장 규제 문제, 학교 체벌, 가정 폭력까지 다양한 이슈에 대해 특집·기획 기사를 내고 있다”고 했다.

고교 때부터 지금까지 신문 제작에 참여하는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2학년 장은채씨는 “<요즘것들>은 ‘탈가정 청소년의 자립’, ‘알바하는 청소년’, ‘연대하는 청소년’ 등 각자의 영역에 존재하는 청소년들이 제 목소리 내는 채널”이라며 “미디어를 ‘청소년의 눈’으로 비판하고 리뷰하는 기사도 꾸준히 내고 있다”고 했다.

진로·진학에 대한 고민부터 연애의 어려움까지…. 학교밖 청소년이라고 이런 고민이 없을까. 사실 평일 낮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학생이 이 시간에 왜 버스에 있느냐”부터 “‘학생증’을 보여줘야 네 신분을 확인할 수 있다”는 등 일상에서 편견 섞인 말과 시선을 이겨내는 것도 학교밖 청소년에겐 ‘스트레스’ 가운데 하나다.

서울시립청소년미디어센터 ‘스스로넷’(www.ssro.net)에서 팟캐스트 ‘교복 없는 아이들’을 진행하는 남민경(17)양은 “‘탈학교’한 친구들과 마음 놓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했다”며 “2015년부터 피디(PD)로 활동하며 ‘학교밖 청소년’인 또래 친구들의 고충과 진로에 대한 고민 등을 방송으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청소년 제작진 6명이 2주에 한 번씩 1시간 분량의 방송을 녹음해요. 소소하게는 ‘이상형 말해보기’부터 학교를 그만둔 이유, 제도권 교육 현장에서 힘들었던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죠. 최근 ‘서울놀토엑스포’에서 공개방송도 진행했습니다. 팟캐스트를 통해 사회 이슈를 톺아보며 우리가 사는 이야기,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세상에 꾸준히 의제로 내놓을 수 있어 보람차요.”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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