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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음식물쓰레기로 곰팡이도 키워야 돼요, 비정규직이니까

등록 2018-05-04 15:51수정 2018-05-18 10:55

[학교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 ④ 과학실험 조교 ‘행정실무사’
과학실에는 행정실무사 책상조차 없었다
교무실에서 일하다 수업 때만 가면 된다나
무엇보다 불안했다, 교구 깨지고 아이들 다치고…
나, 점심시간 텅 빈 교무실 비울 수 없는 한 사람
한 과학실무사가 채집해 온 돌멩이를 직접 쪼개고(왼쪽), 수업 뒤 화학물질이 남은 실습용기를 씻고 있다.
한 과학실무사가 채집해 온 돌멩이를 직접 쪼개고(왼쪽), 수업 뒤 화학물질이 남은 실습용기를 씻고 있다.

학교는 단지 학습하는 공간을 넘어 아이들이 자라는 곳이다. 아이들을 먹이고, 학교에 남은 아이들을 돌보고, 여러 예술·체육 활동을 즐길 수 있게 하고 혹시 마음이 다치지는 않았는지도 살펴야 한다. 모두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지만 교사가 이 모든 것을 담당하기엔 역부족이다. 학교는 이들을 강사로, 돌봄전담사로, 상담사로, 영양사로, 조리원으로 다루고 세상은 이들을 ‘아줌마’로 부르기도 한다. 학생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보람과 학교라는 시스템 속에서 받는 차별 사이에 이들의 삶이 놓여 있다.

<학교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의 실제와 의미를 생생하게 보여주려 현장 취재 내용에 문학적 요소를 가미했다. <한겨레>는 ‘전국교육공무직본부’의 기획으로 이철 작가가 본 학교 현장을 매주 한 차례씩 모두 10회에 걸쳐 싣는다.

치이익. 치이이익. 모래를 뚫고 불꽃이 솟구친다. 모래 속에서 급격한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검푸른 재가 불꽃이 이는 자리에서 뿜어져 나온다. 불꽃은 세차고 재는 끝도 없이 쏟아질 것 같다. 보안경을 쓴 아이들은 환호한다. 재가 쌓여 산을 이뤘다. 불꽃이 솟은 자리가 움푹 파여 있으니 화산과 같은 모양이다.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이은영씨는 과학실 한 쪽에서 긴장을 놓지 않고 있다.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이은영씨는 초등학교 과학실무사 13년 차다.

오래 전 초등학교 과학실에선 중크롬산암모늄을 이용한 화산 실험을 했다. 모래를 파헤치고 붉은색을 띠는 중크롬산암모늄을 정해진 양만큼 넣는다. 그 위에 모래를 살짝 덮은 뒤에 석유나 알코올을 적당량 붓는다. 여기에 불을 붙이면 중크롬산암모늄이 타들어 가면서 불꽃이 일고 재가 솟아오른다. 이 과정이 화산이 만들어지는 모양과 같아서, 모형 화산 실험이라고 했다. 이은영씨의 일은 학교 과학실에서 진행하는 실험을 준비하고, 진행 과정을 돕고, 안전을 챙기고, 사고를 대비하는 일이다.

과학실무사 이은영씨가 한 초등학교의 과학실험실에서 수업 준비를 하다 말고 또 다른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과학실무사 이은영씨가 한 초등학교의 과학실험실에서 수업 준비를 하다 말고 또 다른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1985년에 처음 생겼어요. 교사들이 요청해서 만들어진 자리예요. 선생님이 실험을 준비하고, 뒤처리까지 하려면 학생들 수업을 할 수가 없거든요.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생긴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과학실험을 거의 안 해요. 왜냐면 저희가 행정업무를 하느라고 실험 준비할 시간이 없어요.”

처음엔 과학실험보조원이었다. 그러다 과학실험 조교로, 그리고 과학실무사로 불렸다. 이제는 행정실무사가 공식적인 명칭이다. 2010년을 전후로 해서 교육부와 지역교육청은 교원행정업무경감이라는 이름의 정책을 추진했는데, 이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이은영씨는 본래의 업무와 동떨어진 직종명을 얻게 됐다. 교원행정업무경감 정책은, 교사가 과도한 행정 업무를 처리하느라 교육이라는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관리하는 과학실험 교구만 800종
식물 채집도 산 타며 직접, 돌도 깬다
하지만 이젠 과학실험도 거의 안 한다
행정업무 하느라 준비할 시간도 없다
행정실무사 통합 뒤 ‘권한 없는 책임’만

학교 현장은 교사들의 업무를 줄여주기 위해 행정실무사란 직종의 비정규직 일자리를 늘려갔다. 경기도교육청은 2012년 학교 내 다양한 직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행정실무사로 통합했다. 과학실무사뿐 아니라 교무실무사, 행정실무사, 전산실무사 등이 대상이었다. 처음엔 명칭 통합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은영씨는 행정실무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후부터 과학실험실 운영과 과학수업 지원이라는 본래 업무에 정보, 학교운영위원회, 교무와 관련한 여러 업무를 떠맡게 됐다.

행정업무에 떠밀려 실험수업 못하는 과학실험실

“10년 넘게 한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처음 전보를 가게 됐어요. 2012년에 행정실무사 제도가 생겼을 때 일이에요. 그런데 과학실에 제 책상이 없는 거예요. 왜 책상이 없냐고 물었더니, 너는 행정실무사니까 교무실에서 행정업무를 보면서, 과학실은 수업이 있을 때만 가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해봤어요. 그랬더니 과학실이 난리가 나는 거예요. 아이들 다치고, 실험 도구 깨지고. 무엇보다 안전이 불안해지더라구요.”

아이들의 과학실험 수업에 쓰이는 곰팡이도 과학실무사가 직접 키우고 있다.
아이들의 과학실험 수업에 쓰이는 곰팡이도 과학실무사가 직접 키우고 있다.
교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실험이 있으면 업무 파일을 복사해서 과학실험실 컴퓨터로 옮겼다. 실험이 끝나면 다시 파일을 복사해 교무실로 가져왔다. 업무는 업무대로 진행이 더뎠다. 이렇게 일 년 넘게 근무하다가 관리자에게 고충을 털어놨다. 어렵사리 과학실험실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학교로 전보를 가자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관리자는 행정업무를 맡아주길 원했다. 모두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신 과학실에 책상을 두겠다고 부탁했다.

이은영씨의 일은 의외로 많다. 보통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실험이 진행된다. 아침에 출근하면 준비물을 챙기고, 차시마다 모둠별로 분류해서 바구니에 담는다. 실험 전 안전교육을 진행한다. 실험이 끝나면 사용한 실험 도구를 설거지한다. 모든 실험이 끝나고 과학실 청소까지 마치고 나면 행정 업무를 시작한다. 과학실에 혼자 근무하는 탓에 그의 일을 알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

틈틈이 실험에 쓰이는 교구와 소모품을 관리한다. 관리하는 교구만 800종이다. 필요한 재료를 직접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 음식물 찌꺼기를 구해서 곰팡이를 키우고, 뒷산을 뒤져서 관찰 실험에 필요한 식물을 채집해온다. 암석에 산성 용액과 염기성 용액을 떨어뜨려 반응을 관찰하는 실험이 있을 땐, 돌을 구해와 적당한 크기로 쪼갠다. 시약을 관리하고 실험에서 발생한 폐수를 처리한다.

“산소를 만드는 실험이 있어요. 이산화망간하고 과산화수소로 하는 실험인데, 이게 잘못하면 서로 반응하다가 거품이 천장까지 튀는 일도 있어요. 아이들은 이런 실험을 되게 좋아해요. 6학년 가면 나오는데, 실험의 꽃이거든요. 아이들이 너무 신기해하죠. 집기병에 산소 모아보고, 꺼져가는 불꽃을 대면 확 불이 일어나니까 너무 신기하잖아요.”

이은영씨는 학교에 많은 실험이 없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2005년 한 초등학교에서 과학실무사 없이 화산 실험을 하던 중 사고가 일어났다. 운동장 모래밭에서 실험을 진행하던 중 반응이 일어나지 않자 교사는 알코올을 부었고, 순간 폭발한 것이다. 지켜보던 아이 7명이 화상을 입었다. 교육부는 화산 실험을 금지하는 지시를 내렸다. 실험 중 간혹 사고가 발생했다. 학부모가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학교는 위험한 실험을 피했다. 화산 실험은 소다와 식초를 이용한 안전한 실험으로 바뀌었다.

곰팡이는 물론 실험에 필요한 식물 채집도 과학실무사 몫이다. 숲에서 직접 채집해 온 식물 표본들의 모습.
곰팡이는 물론 실험에 필요한 식물 채집도 과학실무사 몫이다. 숲에서 직접 채집해 온 식물 표본들의 모습.

“여기 복사용지가 떨어졌네?” 교사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법

“처음에 교사 행정을 경감해주겠다고 할 때, 일반직 공무원을 뽑아서 교무실에 배치했어요. 모든 학교는 아니고 시범학교부터요. 근데 일반직들이 일 년을 못 버티고 교무실에서 다 행정실로 내려갔어요. 왜냐하면 교사들 허드렛일을 해야 되는 거예요. 교사들이 무시를 한 거예요. 교사들 행정을 하러 왔다고 해서. 그래서 그 사람들이 전부 행정실로 오고, 행정실에 있던 행정실무사들이, 그땐 학교회계직이라고 했는데, 다 교무실로 올라갔어요.”

권혜경씨는 교무실무사 7년 차다. 처음엔 교무보조, 교무실무원 등으로 불리다가 직종 통합 후 행정실무사가 됐다. 교무실무사의 업무 중 가장 힘든 일은 ‘업무 쳐내기’다. 잠시라도 긴장을 놓고 있으면 교사가 부담을 느끼는 일을 넘겨받게 된다. 교육청은 종종 학교에 새로운 정책을 내려보낸다. 교육적 가치가 담긴 정책들이지만, 그것이 일선 학교로 넘어오면 일이 된다. 새로운 업무를 놓고 교사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 누가 담당할지 의논하는 것이다. 새로운 업무는 교무실에서 일하는 사람 중 가장 약자인 교무실무사에게 넘어온다. 이런 경우가 많다.

“품의 아세요? 학교에서 물건 살 때 기안 쓰는 걸 품의라고 해요. 볼펜 하나도 품의를 받아야 해요. 일단 사와서 영수증 넘겨주는 시스템이 아니에요. 먼저 품의를 올리고 지출하는 거예요. 근데 교사들이 이걸 하기 싫으니까 실무사보고 하라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한 번은 제가, 부장님 제 업무분장에 품의가 없는데요, 업무분장에는 각자의 품의는 각자가 하라고 쓰여 있는데요, 말한 적 있어요. 이러면 관계가 불편해지잖아요.”

교육청은 사적 업무나 허드렛일 지시 금지했지만
교사는 16년 경력 행정실무사에게 “달력 좀 떼지”
신참 교사 앞에서 7년차가 들은 말 “와서 복사해”

학교 내 여러 비정규직 직종을 통합해서 행정실무사라는 이름으로 일원화시킨 이유는 분명했다. 방과후 학교, 교과교실제, 혁신학교 등 정규수업 외 교육 활동이 늘어난 것이다. 이들 정책을 추진하는 데 행정 업무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것을 담당할 인력이 필요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직종 통합을 추진하면서 행정실무사의 업무 전문성을 보장할 것을 일선 학교에 요청했다. 교사가 사적인 업무를 지시하는 일과 허드렛일을 도맡게 하는 일도 금지했다.

“교무실에서 신규 교사가 와가지고 복사하는데, 교감 선생님이 이렇게 말한 적도 있어요. 어머 선생님, 선생님이 왜 복사를 해, 이 고급인력이? 권 실무, 권 실무 이리 와봐. 와서 복사해.”

교무실무사는 교감이랑 같은 공간에서 일한다. 교감이 교사의 인사와 교강사 채용과 관련한 업무를 지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들은 교감의 고유 업무이다. 신규 임용된 교사의 호봉을 책정하는 일을 떠맡기도 한다. 호봉을 확정하는 일이다. 교사 임용 전 학원에서 일한 경력도 30% 인정해주는 등 법적 기준이 마련돼 있다. 방송업무를 담당하는 일도 흔하다. 방송업무는 방송부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므로 교사가 맡아야 할 일이다.

연초가 되면 학교에선 업무분장이 이뤄진다. 권혜경씨는 직종 통합 이후 교사와 정규직 등 책임 있는 자리에서 담당할 일까지 비정규직에게 넘어오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한다. 행정실무사들이 모여 교육청에 항의도 해보았지만, 정책 추진의 당사자였던 교육청은 권한이 없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업무분장은 학교장 재량이라는 것이다. 복사용지가 떨어졌다고 실무사를 부르고, 프린터기에 잉크가 떨어졌다고 실무사를 찾는다. 권한도 없고 존중도 없는 곳, 교무실무사의 노동현장이다.

권한과 책임이 필요한 일까지 떠맡는 일이 흔하다

“생활기록부 점검하는 일까지 시켜요. 생기부가요, 너무 많이 틀려요.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동아리 활동, 이런 게 시간을 다 기록해야 해요. 학생이 전학을 가거나 할 때 생기부 점검을 하는데, 전학 가는 애들이 있을 때마다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사실 생기부 점검을 하는 건 우리 일이 아니에요. 봐서도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열두 권 쌓아놓고 점검을 하는 거야. 제가 이 일을 3년이나 했어요.”

은현진씨는 구육성회직 17년 차다. 학교 비정규직이 양산되기 전까지 주로 학교 행정실에서 일반직 공무원의 업무를 보조했다. 손님 접대와 차 심부름 같은 허드렛일을 도맡기도 했다. 은현진씨가 학교에서 처음 들어왔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비정규직이라는 용어는 생소했다. 상용직 아니면 일용직이었다. 그 시절엔 육성회직에서 공무원으로 특채되는 경우도 흔했다. 구육성회직이라는 명칭은, 과거 학부모가 학교에 납입했던 육성회비(중고등학교의 경우 기성회비 혹은 학교운영지원비로 부름)에서 임금을 지급해줬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직종통합이 된 후 ‘행정실무사’ 옆에 괄호를 열고 ‘구육성회’라고 적는다. 그리고 괄호를 닫는다. 과학실무사인 경우엔 ‘행정실무사(과학)’, 교무실무사는 ‘행정실무사(교무)’라고 적는 식이다. 임금 체계는 다른 실무사와 다르다. 공무원처럼 호봉제 임금이다. 하지만 경기도에서 일하는 구육성회직 600여 명 중 500여 명은 5호봉이다. 호봉 제한을 둔 것이다. 그래서 경력이 20년인 사람도 5호봉이다. 이런 경우 연봉제로 신규 채용한 행정실무사보다 받는 임금이 적다. 그렇다고 행정실무사의 임금이 높은 것도 아니다. 7년 이상을 일해야 최저임금을 넘어서는 임금 수준일 뿐이다.

“행정실은 행정실만의 일이 있어요. 실장에서부터 계약, 예산, 지출, 방과후랑 급식비 징수, 교직원 급여, 이런 업무로 나뉘어 있어요. 비정규직은 어떻게 보면 같은 일을, 인정을 덜 받고 하는 거예요. 저는 올해부터 급여업무를 하고 있어요. 작년엔 세입 업무를 했어요. 그러면 다른 주무관님(교육행정직 공무원)이 제가 작년까지 하던 업무를 하시는 거예요. 근데 이분과 나의 처우가 너무 다르죠.”

교사도 학생을 인격적으로 대해요, 교육이니까
그런 사람들이 비정규직에겐 말을 함부로 해요
그 학생들이 내 자리에서 일할 수도 있는데

비정규직 지위와 관련한 법적 근거만 마련됐으면
교육공무직이 공무원 시켜달라는 것도 아니고…

정수연씨는 행정실무사 7년 차다. 새로 세입 업무를 맡은 공무원은 일이 미숙했다. 하지만 정수연씨는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업무 능력에 따라 임금에 차이를 둬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자격이 기준이 돼서 같은 일을 하는 데도 큰 차별을 두는 것은 의아하다. 차별은 임금 수준만이 아니다. 공무원과 행정실무사라는 자격의 차이가 시험이라는 것에 있다면, 애초부터 행정실무사라는 직종을 편성해서 사람을 뽑지 말아야 했고, 공무원들이 책임져야 할 일을 맡기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현주씨는 행정실무사(구육성회직) 16년 차다. 행정실에서 교육급여, 저소득층 학비 지원, 세입, 일반 용역 지출, 출장비, 재산, 운영위원 선출, 방과후 강사료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한 사람이 맡기엔 지나치게 많은 일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일을 맡은 건 아니다. 하지만 경력이 늘어날수록 일을 처리하는 시간이 짧아졌다. 일을 빨리 끝낼수록 관리자는 일이 없다고 판단하는 듯했다. 그렇게 일이 늘었다.

“교육급여는 주민센터에서 맡다가 학교로 내려와서 갑자기 맡게 된 일이에요. 상시 업무예요. 교육비 지원도 상시. 운영위원 선출하려면 선거해야 해요. 그리고 급여 담당자가 오더니 급여 통계까지는 못한다고 해서, 또 익숙한 사람한테 오는 거예요. 재산도 마찬가지로 공사 많이 하면 증감 다 해야 해요. 학교 창고 하나 지으면 등기까지 다 해서 교육청에 보고해야 하고. 교육청 가서 도장 받아야지, 등기소 가지, 건축물대장 등록하지, 엄청 복잡하잖아요. 재산은 공무원이 담당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공무원은 나 일 많아 하고 딱 쳐내는 거예요. 전 이걸 다 해도, 너 일 없지. 여기 달력 있는 거, 달력 좀 떼지, 이러고. 달력 떼는 거조차도 우릴 시켜요.”

차별을 고민하는 일이 학교를 고민하는 일이다

2010년 경기도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했다. 2년 뒤 서울시교육청이 뒤따랐다. 이전까지 학생은 지도의 대상일 뿐이었다. 학생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시각은 낯설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학생 또한 고유한 인격을 지닌 존재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학교 내에서 학생끼리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교사는 상황을 일방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당사자들의 얘기를 듣고 적절한 절차에 따라 갈등을 조정한다. 부모의 직업이나, 그들이 얻은 시험 점수와는 상관없이, 그들을 같은 권리를 지닌 인격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요즘엔 교사도 학생을 인격적으로 대해요. 그런 게 교육이니까요. 교육이라는 걸 왜 해요? 사회에 나가서 그런 태도를 갖춰야 하니까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교육을 하는 사람이 저한테는 말을 함부로 해요.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이 내 자리에 들어올 수도 있는 건데. 그러면 교육은 학교 밖에 보여주기 위한 거로만 남는 거잖아요.”

행정실무사, 사서, 영양사, 조리실무사 등 교육공무직을 향한 불편한 시선이 많다. 지난해 발의된 교육공무직 법률안을 계기로 촉발됐다. 법안을 놓고 교사, 교육공무원, 교사/공무원 지망생이 반발했다.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이 시험도 치르지 않고 공무원이 되려고 한다는 소문도 만들어졌다. 비정규직이 특혜로 정규직이 되려 한다며, 여론은 공무직 법안을 정유라법이라고 몰아댔다. 법적 근저조차 없어 학교회계직이라 불리던 사람들한테 쏟아진 성난 비난은 대단했다. 하지만 법안에 담긴 문제의식은 학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의 지위와 관련한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함께 논의할 문제였다. 법안은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철회됐다.

“우리가 공무원을 시켜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학교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얘기가 나온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 사회가 한 달에 200만 원 남짓 되는 돈을 버는 직업을 갖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들이고 있다고 하잖아요. 예전에 학교에서 일하시던 분들을 기능직 공무원 전환할 때, 또 일반직으로 전환할 때는 이러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공무원을 그리 원하지 않았을 때였던 거죠. 그때는 분위기가, 그래 10년 이상 일한 사람들 공무원 시켜줘야지 이런 분위기였어요.”

이제는 많은 사람이 공무직 정도만 돼도 안정적인 직장으로 생각한다. 임금 수준이 낮더라도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된다는 것을 큰 이점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원하는 처우 개선을 이기적인 태도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처우에 놓여 있는지는 더욱 알지 못한다. 점심시간이 돼 모두 자리를 비운 교무실에 교무실무사가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교무실을 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방학이 다가와 해외여행 계획을 세우며 들떠있는 교사들 사이에서, 방학 때마다 백수가 되는 처지를 걱정하는 공무직도 있다.

이들의 처우를 고민하는 일은 학교를 고민하는 일과 같다. 같은 노동을 수행해도 자격에 따라 처우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면, 그 사회는 민주적인 사회가 아니다. 이런 차별과 격차에 아이들이 매일 노출되고 있다. 시험 성적에 따라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가름하는 생각의 방식이 극복되지 않는 이유는, 어찌 보면 학교 내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 학교 안의 비정규직 일자리를 정규직 일자리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미래에 일할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할 것이라는 기대가 실현되는 일은, 겨우 3%일 뿐이다.

이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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