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왼쪽)과 이동재 전 채널에이 기자. 연합뉴스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으로 불린 <채널에이(A)> 기자 강요미수 의혹 사건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을 계기로, 해당 기자와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이 ‘권언유착' 의혹 수사를 주장하고 나섰다. 검언유착 사건 이면에 여권과 언론의 유착이 있었다는 취지로, 권언유착 의혹을 수사하라고 반격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선 이들이 취재 윤리 위반 사실이 드러난 기자와 의혹에 연루됐던 현직 검사장 신분이라는 점에서 부적절한 처신이란 지적이 나온다.
2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한동훈 검사장은 지난 19일 변호인을 통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의견서에는 이동재 전 채널에이 기자와 공모하지 않았고, 검언유착 의혹이 ‘여권 세력'에 의해 조작됐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날 이 전 기자도 ‘권언유착 의혹 수사'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서울중앙지검에 냈다. 탄원서에는 “제보자X라고 자칭하는 지아무개씨와 그에 영합한 일부 세력에 의한 공작이 있었다”며 지씨 등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강요미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기자는 지난 16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재판부는 이 전 기자의 행위에 관해 “취재윤리 위반”이라는 점은 분명히 한 바 있다. 이 전 기자를 기소한 서울중앙지검은 그와 공모 혐의를 받는 한 검사장에 대해선 아직 처분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다.
다만 검찰 안팎에서는 한 검사장이 수시로 검찰 출입기자단에 날 선 표현이 담긴 입장문을 보내는 방법으로 ‘권언유착 여론전’ 등에 나서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 검사장은 이 전 기자의 판결 직후 입장문을 보내 “지난 1년 반 동안 집권세력과 일부 검찰, 어용언론·단체·지식인이 총동원된 검언유착이란 거짓선동이 철저히 실패했다”라며 “이젠 공작과 불법 공권력 동원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밝혔다. 한 검사장은 지난 17일에는 이 전 기자 강요미수 사건을 고발한 민주언론시민연합에 대한 별도의 입장문을 내어 “권력과 노골적인 검언유착 프레임 만들려는 협업과정에서 정권 관련자들과 어떤 공모와 협력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시민단체를 맹비난했다. 의혹을 보도한 <문화방송>을 겨냥해서는 “문화방송이 왜, 누구의 연결로 2월 초부터 제보자X와 접촉했는지 밝혀야 한다. 문화방송은 권력·범죄자·언론 유착 공작을 밝히기 위한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검사장은 1심 판결 뒤 사흘 동안 무려 5개의 입장문을 기자단에 보냈다. 단순한 반론 활동을 넘어 ‘입장문 정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 검사장은 그 전에도 ‘김경록씨 증거은닉 유죄 확정 관련, 한동훈 검사장 입장’, ‘유시민 이사장 주장 관련 한동훈 검사장 입장’, ‘참여연대 성명 관련 입장’, ‘추미애 페북 주장 관련 입장’ 등 수많은 입장문을 기자들에게 보낸 바 있다.
이와 관련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사를 대표하는 검사장이 권력수사로 보복을 당했다고 동료들을 ‘친정권 검사’로 비난하며 책임을 묻겠다는 글을 보고 (검찰이) 정치판으로 전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현직 검사장이 직접 나서 검찰에 수사를 요구하는 모습이 바람직하게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현직 부장검사는 “한 검사장이 시민단체나 언론, 정치인을 향해 내놓은 입장문을 보면, 법률가의 언어라기보다 그 자신도 어느새 정치인들이나 쓸 법한 거친 표현들을 쓰고 있다. 누구보다 언론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일 텐데, 현직 검사장의 대응으로서는 부적절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다만 일각에선 ‘한 검사장이 불가피하게 정치적 싸움에 내몰렸다'는 의견도 있다. 현직 부장검사는 “정치적 사건에 휩쓸려 부도덕한 검사라는 오명을 얻는 한 검사장 입장에선 검찰 생활 전체를 부정당한 마음이 들 수 있다. 검사장 신분이 아니라 억울한 피의자 입장으로 비판 입장을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지적에 대해 한 검사장은 “저는 지난 1년 반 동안 하지도 않은 일로 부당한 공격을 받아 온 피해자”라며 “정치인, 문화방송, 친정부 단체 등이 사법부 판결까지 무시하고 왜곡하면서 부당한 공격을 하는 데도, 피해자로서 아무 말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지 한겨레에 묻고 싶다”는 입장을 전했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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