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을 유지하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조직한 삼성에버랜드 어용노조는 “설립 무효”라는 1심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재판부는 삼성 어용노조에 대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의해 설립됐다”고 명시했다.
수원지법 안양지원 민사2부(재판장 김순열)는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이 어용노조인 ‘에버랜드 노동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노동조합 설립무효 확인 소송에서 26일 “에버랜드 노동조합 설립은 무효”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에버랜드 노동조합은 2011년 7월 옛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 인사지원파트와 에버랜드 인사지원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어용노조다. 당시 삼성은 진성노조가 설립될 경우를 대비해 ‘진성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어용노조를 만든다’는 취지의 ‘
그룹 노사 전략’을 갖고 있었다. 이에 따라 삼성은 복수노조가 허용된 2011년 7월 직전에 에버랜드 노동조합을 만들고 단체협약을 마무리 지어, 이후 설립된 진성노조인 ‘삼성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없도록 방해했다. 또한 회사는 진성노조를 설립한 조장희씨를 일찌감치 ‘문제인력’으로 분류하고 조씨를 징계해고했다.
재판부는 ‘노조로서 주체성이 없는 노조는 설립 자체가 무효’라는
대법원의 지난 2월 판결을 인용해 에버랜드 어용노조의 설립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앞서 대법원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가 ‘회사 쪽이 설립한 노조는 무효’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의해 노조가 설립된 것에 불과하거나 노조가 설립될 당시부터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려는 것에 관해 노조와 적극적 합의가 이뤄진 경우 등과 같이 노조가 노조법에서 규정한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해당 노조는 설립이 무효로 노동3권을 향유할 수 있는 지위를 가지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재판부는 에버랜드 노동조합 설립이 무효인 근거로 △노조가 삼성의 비노조 경영 방침을 유지하고 향후 자생적 노조가 설립될 경우 그 활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사용자의 전적인 계획과 주도하에 설립된 점 △회사가 자체 검증을 거쳐 노조 위원장 등 노조원을 선정한 점 △노조가 설립 직후 회사와 2011년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한 게 진성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봉쇄하기 위한 것이었던 점 등을 들었다. 재판부는 “피고 노조는 그 조직이나 운영을 지배하려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의해 설립된 것으로서 헌법 및 노동조합법이 규정한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그 설립이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한편, 에버랜드 노조와해 혐의(업무방해·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위반·개인정보보호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진 강경훈 전 삼성전자 부사장(전 미전실 인사지원파트 총괄임원)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받았다. 같은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이아무개 전 에버랜드 인사지원실장에게도 1심과 동일한 징역 10개월이 선고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삼성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 미래전략실과 에버랜드 인력을 동원해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고 노조에 상당한 피해를 안겼다”고 밝혔다. 두 사람 모두 항소하면서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 심리를 받고 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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