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별세한 긴급조치 1호 피해자 오종상(80)씨. 오씨는 재심을 통해 처음으로 긴급조치의 위헌성을 판결로 인정받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박정희 정권 시절 선포된 긴급조치 1호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끌어낸 국가폭력 피해자 오종상씨가 지난 4일 별세했다. 향년 80살.
암 투병 중이던 오씨는 4일 아침 7시께 가족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지난달 30일 대법원이 오씨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놓은 뒤 4일 만이었다.
오씨는 1974년 5월 버스 안에서 정부시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체포됐다. 중앙정보부에 연행돼 고문받은 뒤 법원에서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고 만기출소했다.
그로부터 35년만인 2010년 1월 재심 개시 결정이 이뤄져 같은 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만장일치로 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유신 시대 시민들을 옥죄었던 긴급조치의 위헌성을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이었다. 오씨가 받은 무죄판결은 그 뒤 많은 긴급조치 위반 피해자들의 재판에 선례가 됐다.
그러나 오씨에게 가해졌던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최종 손해배상 책임은 11년이 지나서야 인정됐다. 오씨는 재심 무죄판결을 계기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2심에서 일부 승소했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이던 2016년 5월 대법원은 오씨의 청구를 각하했다. 당시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오씨가 생활지원금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발생해 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오씨는 이 문제를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기로 하고 민주화보상법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했다. 2018년 8월 헌재는 보상금 지급에 동의해도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는 청구할 수 있다며 오씨의 손을 들어줬다. 오씨는 이를 근거로 대법원에 다시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3년이 지나 지난달 30일 헌법재판소 판단에 따라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암 투병 중이었던 오씨는 변호사를 통해 승소 확정판결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오씨 대리인단은 “대법원이 스스로 판결을 취소하는 데 걸린 3년은 고 오종상 선생님에게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며 “암 투병 때문에 빨리 대법원 판결이 나기를 학수고대했는데 건강 악화로 판결 선고일에 방청도 하지 못하고 7쪽의 승소 판결문을 남긴 채 생을 마감했다”고 전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긴급조치 변호인단은 논평을 내고 “(오씨가) 견디고 버텨온 세월은 인고의 세월이었고, 최종 대법원 판결까지 우여곡절 자체였다”며 “이제는 기다림과 고문이 없고, 인권과 정의가 춤추는 평등한 곳에서 영원한 안식에 드시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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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상 긴급조치 위반’ 재심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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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대법원, 치졸한 너무나도 치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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