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12일 새벽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소환 조사를 마치고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쪽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핵심 물증인 녹취록 발언에 대해 ‘녹취 사실을 알고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이라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밀고 나가고 있다. 이같은 주장으로 당장 구속은 피할 수 없더라도 향후 진술은 많고 물증은 부족한 이 사건 재판 과정에선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사소취대’ 전략이라는 분석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검찰 역시 김씨를 장시간 조사하면서도 구체적인 녹취록 내용은 철저하게 숨기는 등 특수통 변호인단을 꾸린 김씨 쪽 전략에 대응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은 김씨를 조사하고 하루도 지나지 않은 12일 추가 조사 없이 곧바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치열한 수싸움에 들어갔다.
김씨는 지난 11일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뇌물공여 혐의 조사를 받은 뒤 14시간 만인 이튿날 새벽 0시30분께 검찰청을 떠났다. 김씨는 조사 내내 동업자였던 정영학 회계사(천화동인 5호)가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 내용과 이를 토대로 불거진 정관계 로비 의혹 등을 전면 부인했다고 한다. 조사를 마친 김씨는 취재진에게 “정영학은 과거 (대장동 개발) 구사업자가 구속되는 과정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정영학과는 한번도 진실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2019년 정도부터 정영학이 (대화를) 녹취한다는 것을 알았다. 녹취록이 (돈 문제 등) 민사(소송) 정도로 사용될 줄 알았는데 정치적, 형사적으로 사용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2015년 수원지검의 대장동 개발 비리 수사에서 남욱 변호사(천화동인 4호) 등 동업자를 ‘배신’한 전력이 있는 정 회계사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와 중요한 대화를 하지 않았으며, 각종 로비 의혹으로 번진 자신의 발언은 정 회계사를 속이기 위해 지어낸 말이라는 것이다.
이런 김씨 쪽 대응 전략은 검찰 수사가 아직까지는 녹취록에 크게 의존하다고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정 회계사가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은 뺀, 이른바 짜깁기 녹취록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검찰이 가진 ‘유일한 물증’의 신빙성을 깨려는 전략일 수 있다. 700억원 약정, 50억원 클럽, 350억원 실탄 등 거액의 로비 의혹을 의심케하는 발언이 녹취록에 담긴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이런 거액이 오고간 정황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러 거짓말했다’는 김씨 주장을 반박하려면 검찰이 추가 물증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가 ‘녹취 사실을 알고도 불법으로 비칠 수 있는 말을 지어낸 이유’를 묻는 질문에 “검찰이 계좌추적을 해서 자금 입출금 내역을 철저히 수사하면 (녹취록 속 내 발언이)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상황을 십분 활용한 대응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12일 “김씨가 만약 로비를 했더라도 현금으로 줬을테고 정 회계사가 이를 직접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녹취록에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만 담겨있는데, 이는 모두 간접 증거다. 김씨 쪽은 이 점을 공략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씨가 ‘천화동인 1호 절반은 그분 것’이라고 말한 사실을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몇 시간 만에 서둘러 번복한 것도 이런 전략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해서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김씨 쪽은 녹취록에 담겼다고 알려진 ‘그분’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검찰 조사를 마치고 나온 김씨는 발언 진위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내쪽으로 구사업자 갈등이 번지지 않게 하려는 차원에서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맥락은 다르지만 ‘그분’ 발언 자체는 있었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이다. 이에 김씨 쪽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김씨는 ‘천화동인 1호 절반은 그분 것’이라는 내용의 말을 한 사실이 없다. 검찰 조사에서도 ‘그분’ 관련 발언을 한 적 없다고 진술했다. 김씨가 조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 질문과 관계 없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뇌물공여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횡령 혐의로 김씨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은 손에 쥔 패를 숨긴 채 김씨의 이런 허점을 찾는 방식으로 변호 전략에 대응하고 있다.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 조사는 수사팀이 녹취록 내용 요지를 묻고, 김씨가 이에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김씨 쪽은 녹취파일을 재생해 들려달라거나 녹취록 내용 전체를 보여달라고 했지만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검찰은 언제 녹취된 것인지, 동석자가 누구였는지도 알려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씨 쪽은 방어권 행사를 위해 다음 조사 때는 녹취록을 직접 확인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녹취록 작성자인 정 회계사와의 대질 조사도 공식 요청했다고 한다.
김씨 쪽이 녹취록 신빙성을 문제 삼으면서 검찰은 녹취록 증거능력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서울의 한 부장검사는 “주요 피의자가 핵심 물증인 디지털 증거가 오염됐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만약 검찰이 김씨를 기소할 경우 법정에서 녹취록 등이 증거능력이 있는지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김씨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은 14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손현수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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