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등 광범위한 개인 정보를 담은 전자기기 압수수색이 늘어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가운데, 혐의와 무관하게 수집된 전자정보는 수사기관이 삭제·폐기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또 이 정보는 폐기해야 하는 정보에 해당하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새로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열람했다 하더라도 유죄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대법원은 밝혔다.
현직 군인 ㄱ씨는 소형무장헬기 사업과 관련해 해외 방위산업체 컨설턴트 김아무개씨에게 군사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2017년 기소됐다. ㄱ씨에 대한 수사는 2014년 6월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현 국군방첩사령부)의 김씨 수사에서 시작됐다. 기무사는 당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김씨 노트북과 저장매체를 모두 복제해 이미징 사본을 만들었고, 그 속에는 김씨 사건과 무관한 ㄱ씨 관련 정보가 섞여 있었다.
김씨의 유죄 확정 이후인 2016년 7월 기무사 수사관은 군 내부인이 김씨에게 군사기밀을 누설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서울중앙지법에 보관돼 있던 당시 압수물을 제출받아 분석을 시작했다. 기무사는 이 분석을 근거로 ㄱ씨에 대한 내사를 시작했고, 이후 새로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김씨 사건 압수물에서 ㄱ씨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를 확보했다.
하지만 1·2심 법원은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ㄱ씨 수사를 위해 김씨 사건 압수물을 분석한 것은 위법하고, 때문에 새롭게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증거를 확보했다 해도 불법 수집 자료기 때문에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대법원 역시 1·2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현역 군인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은 혐의사실과 관련 없는 전자정보(무관정보)는 삭제·폐기해야 한다. 수사기관이 무관정보를 열람하는 것은 압수되지 않은 전자정보를 영장 없이 수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무관정보는 적접하게 압수되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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