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법인 통해 채무탕감 로비
기업 부실 턴 뒤 헐값에 인수
기업 부실 턴 뒤 헐값에 인수
현대·기아차그룹 몸집 불리기 과정에서의 불법 혐의가 검찰 수사의 ‘또다른 줄기’로 떠오르고 있다.
13일 구속된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감독당국이나 정부투자기관, 국책은행 등의 고위층 인사나 금융기관 경영진들과 두터운 인맥을 쌓았다. 구조조정의 이해당사자였던 현대차와도 이 과정에서 인연을 맺었다.
현대차는 지난 2000년 ‘왕자의 난’ 이후 현대그룹에서 8개 회사만 따로 떨어져 나와 계열분리한 뒤 5년 만에 계열사 수를 40개로 불렸다. 특히 1999년 기아차 인수 뒤 계열사를 확장하는 과정이 이번 검찰 수사에서 ‘불법의 온상’으로 의심을 받고 있다.
당시 현대차는 기아차 일부 계열사들을 곧바로 인수하지 않고, 자산관리공사나 채권금융기관들이 부실을 털어내도록 기다렸다가 헐값에 사들였다.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 있는 위아(옛 기아중공업)나 본텍(옛 기아전자), 카스코(옛 기아정공) 등이 모두 이런 회사들이다.
김씨의 구속영장에 나와 있는 위아의 사례를 보면, 현대차의 탈법적인 몸집 불리기 방식이 잘 드러난다. 기아차 계열사였던 위아는 1999년 10월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인 윈앤윈21과 한국프랜지에 지분 76.33%가 넘어갔다. 윈앤윈21은 다시 이 지분을 큐캐피탈파트너스라는 구조조정회사로 넘겼다. 화의 상태에서 채권은행들로부터 경영관리를 받고 있었던 위아는 캠코(자산관리공사)의 부채 할인매입과 채권단의 채무조정에 힘입어 빠르게 경영이 정상화됐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산업은행도 위아의 부채 1300억원을 줄여주는 데 한몫했다.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는 이 과정에서 현대차로부터 청탁을 받아 산업은행 등에 채무조정이 원활하게 되도록 로비했다. 위아는 2001년 매출 6676억원에 순이익 612억원을 거둘 만큼 우량회사로 탈바꿈했다. 현대차는 이런 우량기업 위아의 지분 90.6%를 2001년 말 고작 7억여원에 인수했다.
결국 현대차는 국민세금까지 들여가며 빚을 털어낸 기업을 헐값에 사들였으며, 이를 위한 불법 비자금 조성과 로비 혐의가 이번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셈이다.
구속된 김씨는 지난 2000년부터 본텍과 글로비스의 외부감사를 맡기도 했고, 현재 현대하이스코의 사외이사로 활동하며 현대차와의 인연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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