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은 소중한 것인디…” 된장의 수난

된장녀 열풍은 급기야 게임까지 만들어지게 했다. 된장녀 게임속의 주인공은 된장녀 스러운 행동을 할때마다 ‘된장순도’가 올라간다.

[어원 추적] ‘된장녀’ ‘된장남’은 어디서 온 말일까 ‘3개의 답변’

2003년 작고한 판소리계의 거목 박동진 명창은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아직도 생전의 모습이 생생하다. 운명하기 직전까지 전수관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완창에 도전하던 박동진 명창의 소리인생 자체가 ‘인간문화재’ 그대로이지만, 박 명창의 한 마디는 더 널리 기억된다.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

우리 전통문화의 상징이자, 조상들의 삶의 지혜와 생활방식이 오늘날 현대한국사회를 사는 후손들에 그대로 이어지는 맥인 전통식품 ‘된장’이 최근 수난을 치르고 있다. 질박하고 깊은 맛의 대명사인 전통식품 ‘된장’이 사람 앞에 붙어서, 전혀 반대의 의미로 통용되며 수난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름하여, ‘된장녀’ ‘된장남’.

최근 인터넷에서는 맘에 안드는 대상을 ‘된장남’ ‘된장녀’로 이름붙이는 현상이 번져가고 있다. 한두 누리꾼의 재미 차원에서 시작된 일이, 일부 언론들에 의해 크게 다뤄지면서 ‘된장녀 현상’까지 일고 있고 각종 패러디가 생산되고 있다.

지난 8일 한 인기 여자아나운서가 재벌가의 손자와 혼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이 아나운서를 두고 ‘된장녀의 우상’으로 몰아부치기까지 했다. 이른바 ‘왕4가지’가 ‘된장’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된장녀’는 왜 ‘소중한 우리의 것’인 된장과 정반대의 의미를 갖게 되었을까?

서구문화 동경, 그래봤자 너희들은 된장?

‘된장녀’란 말은 어디서 왔을까? 여러 설이 있지만 정설은 없는 상태다.

이 말의 유래에 관한 유력한 설은 몇해전의 군가산점 폐지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논쟁에서 일부 누리꾼들이 가산점 폐지 논란에 뛰어든 여성단체 구성원들이 특정여대 출신이라며 이들을 ‘젠장녀’로 지칭한 데서 비롯했다는 설이다. 누리꾼들은 ‘젠장녀’라는 말에 ‘역구개음화’를 적용해 ‘덴장녀’로 만들고, 어디에선 온 말인지 형태소가 불분명해진 이 말은 유사한 어절을 찾아 ‘된장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원에 관한 또다른 주장은 이태원 등지에서 외국인들과 어울려서 놀던 일부 여성들을 비하하는 발언에서 나왔다고 본다. 아무리 외국 것을 좋아해봤자 “그래봐야 된장” 이라는 비아냥에서 왔다는 것이다. 누리꾼 ‘아이리엘’은 “원래 된장이란 말은 이태원에서 외국인들과 놀아나는 부류의 여자들이 한국 남자들을 비하할 때 쓰는 단어였다”고 주장했다.

제3의 설은 네이버의 ‘엔조이재팬’ 등과 같은 일본관련 게시판에서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비하하기 위해서 썼던 말이라는 설이다. 누리꾼 ‘-_-’는 “된장녀라는 말 자체도 엔조이재팬에서 덜 떨어진 오타쿠들이 한국 여자들 비하하며 쓰던 말 가져온 겁니다. 도대체 생각이란 게 있는 겁니까?”라고 이 말에 대해 분노했다. 실제 일본게시판에서 한·일 양국간 논쟁이 벌어질 때 일본 누리꾼들은 ‘김치’, ‘된장’이라는 말을 써서 한국인을 비하한다.

포털의 지식검색에는 된장녀 어원에 관련된 수많은 질문이 있지만 답변은 각각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그들이 지칭하는 된장녀들은 외국의 문화를 동경한다는 것이다. 종합해 보면 된장녀는 “외국의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동경하며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소비를 일삼는 일부 여성”이다. 사실상 된장녀의 근원이 되었던 〈디시인사이드〉가 운영하는 〈디시뉴스〉의 김윤미 기자는 “그동안 나온 된장녀 컨텐츠들을 보면 그들의 특징이 한국 남성들을 무시하고 서구의 문화를 동경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그런 여자들을 빗대서 ‘그래봤자 너희들은 어차피 된장’이라는 뜻에서 된장녀가 나온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소비행태 변화에 따른 신구 갈등”-“여성이기 때문에 생긴 해프닝”

된장녀를 소재로 한 만화 ‘된장녀와 사귈때 해야 될 9가지’ (출처 : www.dcinside.com)

‘된장녀’들은 특정 브랜드의 커피전문점과 패밀리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외국 브랜드를 과시적으로 소비하는 천박한 문화가 ‘된장 남녀’ 탄생이 주범이라는, 사회문화적 해석이 설득력이 있다.

조만간 <2000년대 초반 한국사회 속의 소비 행동을 나타내는 6가지 집단에 대한 분석> 논문을 발표할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된장녀열풍’을 “한국사회의 소비패턴이 다양화되면서 생긴 소비주체간의 갈등”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황 교수는 “된장녀 열풍에는 여성비하 문제, 계급문제 등 여러가지 사회적 갈등요소들이 들어있지만 본질적 갈등은 자신을 위해 소비하기를 마다지 않는 세대와 자신보다는 가족을 위해 소비를 했던 40~50대 기성세대간의 소비행태의 차이에서 오는 충돌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간지쟁이’(자신을 멋지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소비하는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란 뜻의 인터넷 은어)라는 표현을 쓰며 “된장녀로 표현되는 20대 여성들은 스스로를 ‘간지’나게 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이를 못마땅하게 보는 40~50대 이후의 기성세대가 된장녀 비난의 주 세력이다”고 말했다.

황상민 교수 “구질구질 취업준비 ‘고추장남’의 진짜 목적도 결국은 된장남 되기”

그는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고추장남’에 대해서도 “고추장남이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하고 다니면서 취업준비를 하는 것은 결국 한손에는 노트북을 들고 외국 출장을 나가는 길에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프로페셔널한 직업을 갖기 위해서”라며 “결국 소비행태로 구분하면 된장녀와 고추장남은 동일하며, 20대남성은 된장녀를 그렇게 매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된장녀’는 주인공이 ‘여자’이기 때문에 나왔다는 해석도 나왔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강혜란 소장은 “여성 비하의 시각은 반복적으로 생겨나는 문제”라며 “‘쩍벌남’(지하철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는 일부 남성들)같은 경우는 ‘개똥녀’, ‘된장녀’처럼 화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건의 주인공이 여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강소장은 “된장녀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사회현상의 일부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큰 잘못이 있는 것처럼 남성의 시각에서 그려지고 있다”며 “똑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남성에게는 무척 관대하다”고 덧붙였다. 〈한겨레〉온라인뉴스팀 이정국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