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공비행
집 근처에 하루 종일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다 가보지 못할 만큼 많은 유흥업소들이 즐비하다. 몇 달을 두고 보면, 늘씬한 이벤트업체 아가씨들이 신나게 춤추면서 개업을 알리는가 싶더니 이내 다른 업체의 아가씨들이 새로 단장한 가게 앞에서 춤을 춘다. 실로 대박을 꿈꾸는 자영업자들의 무덤이랄 수 있는 상업지구다. 하루 종일 글을 쓰다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나는 이 상업지구를 지나가야만 하는데, 그때마다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치킨집이 보인다. 녹색 간판에는 스타닭스라고 씌어 있다. 이 칼럼은 맛집 칼럼이 아니니까 그 맛에 대해서는 생략.
어쨌든 스타닭스의 간판을 볼 때마다 그 재치에 놀라게 되는데, 그래봐야 중국 칭다오에서 본 커피숍의 제목에는 못 미친다. 몇 해 전, 중국 옌지(연길)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적이 있다. 거기 호텔 커피숍에 가면 한국식 커피라고 해서 맥심이나 테이스터스 초이스 등의 인스턴트커피를 판다. 심지어는 하얼빈에 있는 홀리데이인 호텔 커피숍에서도 그런 커피를 팔고 있었다. 그런데 인스턴트커피라는 게 각설탕을 넣다 보면 커피가 튀기도 하고 경망스럽게 작은 수저로 휘휘 저어야만 하는 등 호텔 커피숍에서 마시기에는 폼이 나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여름에 칭다오에 놀러 갔다가 녹색 간판을 보니 꽤 반가웠다. 중국이라 그런지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카페라테나 카페모카 등 그럴싸한 이름의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기뻤다. 걸어다니며 카페모카를 마시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마실 때는 역시 폼이 중요해. 독일풍의 건물들이 즐비한 칭다오의 여름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나는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온통 검은색 수영복을 입은 중국인들로 가득한 제1해수욕장을 거닐었다.
앗, 그런데 웬걸. 다 마신 커피잔을 버리려고 보니 스타벅스가 아니라 스타스벅이었다. 그러니까 에스(S)자가 약간 앞으로 가 있었다. 그 에스자를 빼놓고는 모든 게 똑같았다. 글자체며 색깔이며, 마치 거기가 뉴욕이라도 된 듯 마시던 내 꼴하며.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타벅스가 아니라 스타스벅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그 모든 게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나는 얼른 커피잔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어린 시절에 나이스 운동화를 신고 왔다가 친구들의 놀림에 그만 울어버린 동급생이 떠올랐다.
결국 나중에 베이징에 갔을 때, 진짜 스타벅스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이번에는 에스자의 위치를 자세히 확인하고 마셨다. 그런데도 그 맛이 영 찝찔했다. 한 잔의 가격이 30위안이 넘었는데, 옌지에서 나와 친하게 지내던 대학 기숙사 수위의 월급이 400위안이라는 걸 알고 난 뒤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매일 커피 마시며 폼 좀 잡으려면 온 집안이 한 달 내내 쫄쫄 굶어야만 했다. 그래봐야 14일째는 반 잔밖에 마실 수 없다. 그때 좀 얄미웠다. 스타닭스와 스타스벅에는 없고 스타벅스에는 있는 그것이. 그러니까 그 비싼 스타일이라는 게.
며칠 전, 누군가 된장녀가 뭐냐고 물어온 일이 있다. 나도 모르긴 마찬가지여서 우리 시대 최고의 지식인인 지식검색 사이트에 물어봤더니, 그분께서는 “특히 남자를 볼 때 존나 능력을 보고, 돈을 보고 그런 남자만을 원하고 또 그런 남자에게 빌붙어서 편하게 살고 싶어하는, 남자를 아주 지 호구로 아는 뇬들을 지칭하는 말”이라며 “세계에서 제일 높게 책정된 스타벅스 커피가 한국에서 잘나가는 이유도” 그런 된장녀들 때문이라고 설명하시더라. 생산자에게나 소비자에게 공정하지 못한 사실을 스타일로 감춰버린다는 점에서 스타벅스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런 얘기 대신에 커피를 마시는 여자들을 다짜고짜 된장녀라고 공격하는 것도 불공정하긴 마찬가지다. 된장, “존나” 없어 보이니 맞춤법이나 맞게 쓰시기를 바란다.
김연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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