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거리 만들기 ‘보행권을 되찾자’
①사 고 위험 방치된 시골길 당신의 고향집 앞 도로는 안전합니까? 자동차가 씽씽 달리지만 변변한 인도조차 없는 도로는 아닙니까? 천진한 아이들과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위태위태하게 그 도로를 걷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는 근대화와 함께 사람이 자동차에 밀려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일 뿐입니다. 〈한겨레〉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보행권을 확보해 ‘사람이 차보다 먼저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주변에 걷기 좋은 길이나 걷기 나쁜 길이 있다면 사진과 제보로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www.makehope.org/walk) 지난해 보행자 사망사고 중 70% 차지
농촌지역 노인비율 높아 보행 ‘치명적’
같은 장소서 계속 사고 나도 보행시설 없어
충남 천안시 목천읍 목천고 3학년 권경민(18)군은 지금도 그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여느 때처럼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할 때였다. 순간 버스 한대가 권군 곁을 휙 지나갔다. 잠시 뒤 ‘끽~’ 소리와 함께 ‘쿵’ 소리가 이어졌다. 버스가 마을 입구 정류장에 있던 같은 학교 친구 8명을 덮친 것이었다. 여느 농촌과 다를 바 없는 이 마을의 도로엔 인도가 없었다. 학생들은 차도 위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변을 당했다.
그로부터 2년여 뒤인 9월18일. 〈한겨레〉 취재진이 찾은 사고 현장엔 여전히 인도가 없었다. 학생들은 버스를 타기 위해 차도를 걸었고, 차도 위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찻길은 있지만 ‘사람길’이 없는 지방의 도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강원 정선군 59번 국도에서는 지난 4월 차도로 걸어가던 8살짜리 어린이가 승용차에 치여 중상을 입었다. 같은 장소에서 올해 들어서만 4건의 보행자 교통사고가 일어나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역시 인도가 없는 도로다. 인근 관광지로 가는 차량이 갈수록 늘어나는데도 보행 안전시설이 갖춰지지 않고 있다.
또 최근 문을 연 지방 초등학교들은 통학로조차 확보되지 않은 곳들이 많아 어린 학생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지난 1일 개교한 경남 거제군 삼룡초등학교의 경우 개교 전까지 학교 앞 왕복 4차로 도로 공사가 끝나지 않아 통학로 없이 아이들이 등교하고 있다. 지난해 길을 걷다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은 전국적으로 2442명인데, 이 가운데 40%인 965명이 국가가 관리하는 일반국도 및 도가 관리하는 지방도에서 사고를 당했다. 또 30%인 723명은 시·군이 관리하는 도로에서 숨졌다. 결국 전체 사고의 70%가 대도시 도로나 고속도로가 아닌 지방 도로에서 발생한 것이다. 또 숨진 이들의 40%가 65살 이상의 노인들인 점도 지방 도로의 취약한 안전성을 보여준다. 2006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 가운데 65살 이상 비율이 9%대인 점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높은 비율이다. 채한철 경찰청 교통관리관은 이에 대해 “지방권 도로에 인접한 마을의 거주민들이 대부분 고령자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지방 도로의 보행 사망자 비율이 대도시보다 높은 이유는 늘어나는 차도에 비해 인도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녹색교통운동은 “지방권 일반국도 1만4천여㎞ 가운데 인도가 설치된 구간은 도시 통과 구간을 포함해도 4.5%인 530여㎞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도건설 및 관리업무를 맡고 있는 건설교통부의 박우성 도로환경팀 사무관은 “2005년부터 올해 말까지 3년 동안 199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266개 국도 167㎞ 구간에 인도를 설치하고 내년부터 2차 사업으로 인도 구간을 추가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지방도를 포함한 시·군도의 경우는 인도가 없는 구간이 얼마나 되는지조차 파악이 안 된 실정이다. 임삼진 한양대 연구교수(교통공학)는 “우리나라 국도나 지방도 대부분이 농촌마을 중심지를 통과하거나 마을과 가깝게 있는데도, 인도가 턱없이 부족해 마을 주민들은 무방비 상태로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대도시 지역의 도로를 벗어나 국도나 지방도, 시군이 관리하는 도로의 가장자리를 걸어가는 것은 이미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여중생 심미선·신효순양도 경기 양주시 지방도에서 인도가 설치되지 않은 도로 가장자리를 걸어가다 변을 당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우리 아이들과 노인들은 오늘도 위태롭게 차도 위를 걷고 있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①사 고 위험 방치된 시골길 당신의 고향집 앞 도로는 안전합니까? 자동차가 씽씽 달리지만 변변한 인도조차 없는 도로는 아닙니까? 천진한 아이들과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위태위태하게 그 도로를 걷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는 근대화와 함께 사람이 자동차에 밀려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일 뿐입니다. 〈한겨레〉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보행권을 확보해 ‘사람이 차보다 먼저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주변에 걷기 좋은 길이나 걷기 나쁜 길이 있다면 사진과 제보로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www.makehope.org/walk) 지난해 보행자 사망사고 중 70% 차지
농촌지역 노인비율 높아 보행 ‘치명적’
같은 장소서 계속 사고 나도 보행시설 없어
보행자가 밀려난 위험천만 지방도로들. 위부터 전북 완주군 화산면 구중마을 앞길, 경기 파주시 광탄면 방축1리의 도로, 충북 청주의 가로수 길, 울산 울주군 서생면 진하 가는 길. 녹색교통운동 제공
그로부터 2년여 뒤인 9월18일. 〈한겨레〉 취재진이 찾은 사고 현장엔 여전히 인도가 없었다. 학생들은 버스를 타기 위해 차도를 걸었고, 차도 위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찻길은 있지만 ‘사람길’이 없는 지방의 도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강원 정선군 59번 국도에서는 지난 4월 차도로 걸어가던 8살짜리 어린이가 승용차에 치여 중상을 입었다. 같은 장소에서 올해 들어서만 4건의 보행자 교통사고가 일어나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역시 인도가 없는 도로다. 인근 관광지로 가는 차량이 갈수록 늘어나는데도 보행 안전시설이 갖춰지지 않고 있다.
또 최근 문을 연 지방 초등학교들은 통학로조차 확보되지 않은 곳들이 많아 어린 학생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지난 1일 개교한 경남 거제군 삼룡초등학교의 경우 개교 전까지 학교 앞 왕복 4차로 도로 공사가 끝나지 않아 통학로 없이 아이들이 등교하고 있다. 지난해 길을 걷다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은 전국적으로 2442명인데, 이 가운데 40%인 965명이 국가가 관리하는 일반국도 및 도가 관리하는 지방도에서 사고를 당했다. 또 30%인 723명은 시·군이 관리하는 도로에서 숨졌다. 결국 전체 사고의 70%가 대도시 도로나 고속도로가 아닌 지방 도로에서 발생한 것이다. 또 숨진 이들의 40%가 65살 이상의 노인들인 점도 지방 도로의 취약한 안전성을 보여준다. 2006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 가운데 65살 이상 비율이 9%대인 점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높은 비율이다. 채한철 경찰청 교통관리관은 이에 대해 “지방권 도로에 인접한 마을의 거주민들이 대부분 고령자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2006년 도로별 교통사고 보행사망자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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