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대법원장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2돌
이용훈(65) 대법원장이 지난 25일 취임 두돌을 맞았다. 이 대법원장은 그동안 공판중심주의(형사)·구술변론주의(민사) 강화, 신중한 인신구속 등 사법 시스템의 변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대표되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전혀 해소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그가 취임 초기에 강조한 ‘기업범죄 엄단’ 방침에 어긋나는 판결이 잇따르는 등 ‘레임덕’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지난 2006년 2월9일 서울 한남동 대법원장 공관에서 열린 고법 부장판사 승진 축하연에서 사법부를 발칵 뒤집어 놓는 말을 했다.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형제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 판결에 대해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한 판결”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대법원장이 개별 판결을 비판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지만, 법원 밖에서는 “할 말을 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잇단 재벌봐주기 판결…법원 안에서도 “과거 회귀”로 평가
‘정권교체기 한계’ ‘법관 독립성탓’ ‘때이른 레임덕’ 해석도 대법원장의 발언 이후 그 취지에 맞는 판결이 잇따랐다. 서울중앙지법은 8일 뒤 열린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의 1심 공판에서 이례적으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김 회장은 불구속 기소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동안의 관행을 따르면 집행유예가 선고될 사안이었다. 이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게 징역 10년과 추징금 21조원이, 장흥순 전 터보테크 회장에게는 징역 2년6월이 각각 선고됐다.
그러나 최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선동 전 에쓰오일 회장이 줄줄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서 ‘재벌 봐주기’ 관행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 이 대법원장의 권위와 사법개혁 의지도 함께 실종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경제개혁연대가 지난 17일 전국의 19살 이상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한 결과, 무려 74.5%에 이르는 521명이 ‘대법원장의 기업범죄 엄단 의지가 잘 실현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법원 안에서도 “사법부의 과거회귀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무엇이 이런 현상을 낳았을까. 법조계 인사들은 그 원인으로 대개 세 가지를 든다.
첫째, ‘코드’의 한계다. 이 대법원장은 원래 보수적인 사람인데, 참여정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초기에 개혁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정권 교체기를 맞아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는 주로 검찰과 변호사 쪽에서 나온다. 지난해 가을 이 대법원장의 ‘법조삼륜 비하’ 발언에 따른 감정섞인 평가인 측면도 있지만, 취임 초기에 개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대법원장으로서는 뼈아픈 지적이다.
둘째, 법원 고유의 습성 탓이다. 법관의 독립성이 무엇보다 강조되는 조직 특성상 대법원장 혼자서 법원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2009년까지 대법관 승진 인사가 없는 등 대법원장이 휘두를 무기도 없어 그동안 자기 색깔을 숨기고 있던 보수적인 고위 법관들이 법원의 보수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셋째, 대법원장 흔들기다. 이 대법원장은 지난해 공판중심주의 등 사법 시스템의 변화를 이끌다 지난 1월 변호사 시절 탈세 의혹이 불거져 큰 곤욕을 치렀다. 이후 그는 사실상 ‘칩거’ 상태에 들어갔다. 이때 받은 충격 탓에 개혁의 의지를 잃었다는 게 대법원 쪽의 설명이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일반적으로 대법원장 임기 6년 가운데 후반기 3년을 레임덕이라고 보는데, 이 대법원장은 정권 교체기까지 맞물리면서 레임덕이 일찍 왔다”고 말했다.
이춘재 김지은 기자 cjlee@hani.co.kr
대법 전원합의체 심리 변화
대법관 구성 다양화로 법리논쟁 활발
소수의견 늘었지만 선고는 ‘보수 일색’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이후 대법원 판결은 과거에 견줘 다양한 법리 논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런 변화는 이 대법원장 취임 후 임명된 대법관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 대법원장은 2005년 9월 취임 직후 ‘전원합의체 활성화 방안’을 내놓으며 사회적 주목도가 높은 중요사건이 상고심에 올라오면 전원합의체로 넘겨 심리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이 대법원장이 취임한 2005년 9월부터 최근까지 이뤄진 전원합의체 선고는 25건으로, 취임 전 2년 동안 이뤄진 22건보다 13.6%가 늘었다.
특히 대법관들은 반대의견은 물론, 보충의견(선고와 결론은 같지만 추가 논거 제시)이나 별개의견(선고와 결론이 같지만 전혀 다른 논거 제시)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 전원합의체 판결 25건 가운데 보충이나 별개의견이 있는 경우는 12건(48%)으로, 2년 전 8건(36%)에 비해 늘었다. 반대의견을 많이 낸 대법관은 김황식 대법관이 4건, 김영란·박시환·이홍훈·전수안·안대희 대법관이 각각 3건 등 순이었다. 이 가운데 김영란 대법관을 제외한 나머지 대법관들이 모두 이 대법원장 취임 뒤 임명됐다.
하지만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가 ‘전원합의체 선고의 다양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지난 3월 민주노동당 소속인 울산 북구청장의 공무원노조 파업 참가자 승진 처분을 둘러싼 소송과 지난 5월 김문기 전 상지학원 이사장이 현 이사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보수와 중도·진보로 분류되는 대법관 의견이 각각 7 대 5로 갈리며 보수적 선고로 결론이 났다. 이들 사건은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과 사립학교의 사유재산 여부를 놓고 보수·진보 진영이 첨예하게 맞선 사건이었다.
법조계 인사들은 전원합의체가 활성화되도록 하자면 대법관의 업무량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부 대법관들도 사건 수가 너무 많아 전원합의체 사건에 대한 충분한 학습을 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토로한다. 지난해 대법원이 처리한 사건은 1만9169건으로, 대법관 1인당 1597건을 처리했다. 우리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일본 최고재판소가 2005년 처리한 사건은 5354건으로 우리의 3분의1 수준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대법원장 취임 후 추진되다 사실상 중단된 고법 상고부가 설치된다면 사정은 훨씬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정권교체기 한계’ ‘법관 독립성탓’ ‘때이른 레임덕’ 해석도 대법원장의 발언 이후 그 취지에 맞는 판결이 잇따랐다. 서울중앙지법은 8일 뒤 열린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의 1심 공판에서 이례적으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김 회장은 불구속 기소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동안의 관행을 따르면 집행유예가 선고될 사안이었다. 이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게 징역 10년과 추징금 21조원이, 장흥순 전 터보테크 회장에게는 징역 2년6월이 각각 선고됐다.
그러나 최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선동 전 에쓰오일 회장이 줄줄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서 ‘재벌 봐주기’ 관행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 이 대법원장의 권위와 사법개혁 의지도 함께 실종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경제개혁연대가 지난 17일 전국의 19살 이상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한 결과, 무려 74.5%에 이르는 521명이 ‘대법원장의 기업범죄 엄단 의지가 잘 실현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법원 안에서도 “사법부의 과거회귀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무엇이 이런 현상을 낳았을까. 법조계 인사들은 그 원인으로 대개 세 가지를 든다.
대법원장의 기업범죄 엄단 의지 실현 정도
대법 전원합의체 심리 변화
대법관 구성 다양화로 법리논쟁 활발
소수의견 늘었지만 선고는 ‘보수 일색’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2돌 주요발언 및 선고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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