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묵시적 비실명’ 관행 깨
차명계좌라 하더라도 이름을 빌려준 사람(명의자)을 실제 예금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금융실명제의 취지를 적극 수용한 것으로, 기업 등의 여전한 차명계좌 개설 관행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대법원 판례는 그동안 돈의 출처와 계좌 관리 주체 등을 고려해 실제 예금 출연자의 권리를 묵시적으로 인정해 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차한성 대법관)는 19일 이아무개(48)씨가 예금보험공사를 상대로 낸 예금반환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씨의 남편 김아무개씨는 2006년 2월 ㅈ저축은행에 자신과 이씨의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면서 이씨 명의의 계좌에 4200만원을 예치했다. 예보는 같은 해 9월 ㅈ저축은행의 영업이 정지되자 김씨의 계좌에 대해서는 보험금을 지급했지만, 이씨의 계좌에 대해서는 “실제 예금주가 남편 김씨”라며 지급을 거부했다. 이씨는 소송을 냈지만 1·2심은 “인감과 비밀번호 등이 김씨의 것으로 돼 있고, 이자 역시 김씨에게 이체됐으므로 실제 예금주는 남편 김씨”라며 패소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실명 확인 절차를 거쳐 예금 계약을 체결한 경우, 예금 계약서에 기재된 명의자를 예금 계약 당사자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며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명의자가 아닌 실제 돈의 주인을 예금 계약 당사자로 보는 것은 계약서의 증명력을 번복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구체적·객관적 증거가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석준 대법원 공보관은 “이전에는 실명제의 취지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출연 경위, 인감, 인출 주체 등을 중시해 실제 예금주와 금융기관 사이의 묵시적인 비실명 합의를 인정해 왔다”며 “이번 판결로 차명계좌를 개설한 기업들은 예금반환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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