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에 ‘무기징역→12년형’ 낮춘 근거
현행법선 법관이 판단…객관성 잃을 우려
현행법선 법관이 판단…객관성 잃을 우려
‘나영이 사건’ 가해자 조씨의 형량에 대한 논란에서 큰 시빗거리가 되고 있는 게 ‘심신미약’ 상태의 인정이다. 법원은 일단 무기징역형을 선택했다가 조씨가 범행 당시 술에 취해 있었다는 이유로 징역 12년형으로 형량을 깎았다.
형법 제10조는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자의 형을 감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정신병, 정신박약, 비정상적 정신상태, 술·약물에 의한 중독성 정신장애 등으로 통제능력을 잃고 죄를 범한 이들을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고 형량을 깎아준다. 조씨는 재판 과정에서 알코올중독과 행동통제력 부족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여론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도 다른 이들과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쪽이다. 순간적이고 충동적인 폭행이나 절도 사건 피고인, 과실범 등에게 심신미약 상태를 인정하는 것과는 다르지 않으냐는 것이다. 게다가 조씨는 증거를 없애려고 피해자에게 큰 상처까지 입혔다.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었다는 판단이 어색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현행 재판제도는 피고인이 심신미약 상태였는지를 법관이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그만큼 자의적·주관적 판단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범행 당시 주취 상태는 객관적 수치로 증명하기 어렵고 사람마다 ‘주량’이 달라 “평소 주량”과 같은 모호한 설명이 덧붙여진다. 이원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나영이 사건에서처럼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벌어진 범행의 책임 문제에 대해 형법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는 말로 ‘정답’을 내놓기 어렵다는 점을 설명했다.
판사가 생물학적 전문영역까지 알기는 어려우니 ‘흰옷 입은 법관’으로 불리는 정신의학자 등에게 판단을 맡기자는 견해도 있다. 신양균 전북대 교수(형법학)는 “생물학적 영역에 대해서도 법관의 판단이 폭넓게 인정되고 있어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형법학계 일부에서는 지나친 음주로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 상태가 됐을 경우를 따로 규율하는 법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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