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종로구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세종시민관합동위원회 7차 회의에 참석한 정운찬 국무총리가 회의에 앞서 참석 위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세종시민관합동위원회는 이날회의에서 세종시로 이전하는 대기업에 3.3㎡ 당 36만~40만원에 토지를 공급하기로 했다.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정부 ‘투자유치 방안’ 뜯어보니
정부, 3.3㎡당 36만~40만원선 원형지 공급키로
친환경 행정도시 백지화…재벌 막개발 우려
정부, 3.3㎡당 36만~40만원선 원형지 공급키로
친환경 행정도시 백지화…재벌 막개발 우려
5일 정부가 마련한 ‘세종시 투자유치를 위한 제도적 지원 방안’의 핵심은 ‘땅’이다. 정부는 대기업 등에 토지를 3.3㎡당 36만~40만원 선의 싼 값에 원형지 형태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 땅값은 전체 매각 대상 용지의 평균 조성원가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는 이를 통해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로 기업을 유치해 자족도시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가 농민들의 땅을 강제 수용해 기업한테 헐값으로 넘겨주는 것이어서 ‘특혜’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조원동 세종시기획단장은 이날 설명회에서 “대기업 등에 원형지를 공급하는 이유는 기업이 쓸 땅을 기업 스스로 개발하는 방식이 효율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행정도시특별법’이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에서도 원형지 개발은 가능하도록 돼 있다. 다만, 이 법에는 원형지를 개발할 수 있는 사업주체를 국가나 지방정부, 대통령이 정하는 공기업으로 제한했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행정도시가 기업에 의해 난개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원형지는 기반시설 등을 조성하지 않은 자연 상태의 땅을 말한다. 원형지 개발을 허용한다는 것은 기업 등한테 토지개발권을 줘, 개발자가 원하는 대로 땅을 개발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방식은 지금까지 혁신도시나 기업도시에서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부가 행정도시 건설 예정지 개발권을 기업에 넘기고 막개발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행정도시를 백지화하고 공공 주도의 자연친화적인 계획도시 건설도 포기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더욱이 이것은 주로 농민들한테서 헐값으로 강제 수용한 땅을 싼값에 민간기업에 넘기는 것이어서 농민들에겐 손해를 주고, 기업에는 특혜를 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지역계획학과)는 “애초 행정도시는 정부 부처 이전이 기본이 되고 정부가 원형지를 공공성 있게 개발해 이를 공공시설이나 민간시설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계획돼 있었다”며 “지금은 어떤 도시가 될지 전혀 밑그림이 없는 상황에서 기업한테 개발의 편리만을 제공해 결국 난개발과 투기로 행정도시 자체가 엉망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정부가 확정한 세제·재정 지원과 규제 개선에도 문제점이 지적된다. 행정도시가 소득·법인세 감면, 취득·등록세 면제 등 다른 지역과 동일한 수도권 기업 유인책을 갖게 되면서, 지방으로 이전하려는 기업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도시에 다른 인센티브를 똑같이 주면서 싼값에 원형지 개발권까지 준다면 수도권에서 영호남 등지로 옮겨갈 기업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권용우 성신여대 교수(지리학과)는 “이번 정부의 지원 방안은 국가 균형발전에 대한 긴 안목 없이 행정도시를 백지화한 자리에 기업이든 무엇이든 유치하면 된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 같다”며 “이명박 정부가 원형지 개발과 각종 혜택 등 기업과 부동산 논리로 행정도시를 오염시키면 지역 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 해소는 한동안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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