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사법개혁 논의 궤도이탈
여당, 노골적 사법부 때리기…친이계 의원 “소기의 성과”
내년까지 대법관 4명 교체…“고위 법관들에 경고” 분석
여당, 노골적 사법부 때리기…친이계 의원 “소기의 성과”
내년까지 대법관 4명 교체…“고위 법관들에 경고” 분석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와 <문화방송> ‘피디(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에 반발하며 사법개혁을 부르짖던 한나라당이 이렇다 할 개혁안을 내놓지도 않은 채 슬며시 발을 빼고 있다. 이를 두고 학계와 법조계 일부에선 ‘한나라당이 사안의 본질인 검찰의 기소권 남용은 제쳐두고 정략적으로 이용만 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친이 직계 의원은 24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사법개혁 여론 환기 등 소기의 성과가 있어) 사법부를 직접 문제 삼는 일은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사법개혁의 방안과 일정 등은 특위 안에서 논의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애초의 강경 태도와 달리, 검찰의 ‘무리한 기소’에 면죄부만 주고 흐지부지 물러서는 모양새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논란의) 핵심은 검찰의 기소권 남용인데, 오히려 한나라당은 이를 견제한 법원을 문제 삼았고, 그마저도 판결과 상관없는 법관 인사 문제를 정치쟁점화했다”고 비판했다. 하 교수는 “한나라당이 ‘좌편향 젊은 판사들이 문제’라고 공세를 퍼부었지만, 이번 판결은 뚜렷한 정치적 색깔이 없는 10년차 이상 법관들이 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도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한나라당이 검찰과의 유착 때문에 이런 태도를 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나라당에는 전·현직 원내대표인 홍준표·안상수 의원, 사무총장을 지낸 권영세 의원, 소장파 리더 격인 원희룡 의원 등 검사 출신 의원이 16명에 이른다. 참여정부 시절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당시 한나라당 법사위원들은 검찰에 불리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사사건건 반대했다”며 “그 개정안은 결국 원안에서 상당 부분 후퇴해 국회를 통과했다”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서도 한나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뒤 민주당이 제안한 ‘검찰개혁특위’ 구성을 외면했다. 최근에도 민주당이 ‘검찰-사법부-변호사 등 법조3륜 개혁 특위’를 제안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채 ‘젊은 법관’들만 문제 삼았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고위 법관은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경험 있는 법관’ 채용은 이미 진행되고 있고,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졸업생이 배출되면 검사·판사 모두 변호사 경험자로 채울 수밖에 없다”며 “여당은 당장의 정치적 이익이 아니라 로스쿨 이후 우리 사법제도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최근의 논란을 여당의 ‘사법부 길들이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임기는 1년6개월 남짓 남았고, 올해 1명과 내년 3명 등 4명의 대법관이 2년 안에 교체될 예정이다. 이를 의식해 여당이 대법관을 노리는 고위 법관들에게 사전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들 때문에 이번 논란이 ‘사법개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미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이나 공판중심주의, 로스쿨 등에 대한 후속 조처가 시급하지만, 현 정부 출범 2년이 다 되도록 별다른 진전이 없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정책 비판 세력에 대해 ‘공익의 대표자’라는 검찰이 형사 처벌을 시도하는 일은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라며 “장기적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등 근본적인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석진환 노현웅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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