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한명숙재판 ‘역전’ 몰입하다 ‘법’ 잊으셨나
검찰 내부자료 들이대고
막무가내 증인·증거 신청
형소법 절차 무시 잇따라
31일 한명숙 피고인 신문
‘골프 공방’ 최후의 반격
막무가내 증인·증거 신청
형소법 절차 무시 잇따라
31일 한명숙 피고인 신문
‘골프 공방’ 최후의 반격
검사 : “미국에서 유학하려면 연간 10만달러 이상 들 텐데, 연 2만달러인 총리의 출장비를 아껴서 그걸 감당할 순 없겠죠?”
재판부: “학비로 얼마가 필요한지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면서 질문하세요. 왜 증인에게 (사실이 아니라) 의견을 묻습니까?”
지난 19일 한명숙(66) 전 국무총리의 5만달러 수수의혹 사건 공판에서, 검찰은 ‘유학 중인 한 전 총리 아들에게 달러를 송금해준 적이 있는지’를 묻기 위해 한 전 총리 재임 당시 의전비서관인 조아무개씨를 불러 이렇게 캐묻다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에게 제지를 당했다. 검찰이 이처럼 법정에서 형사소송법의 기본 절차에 어긋나는 증인신문을 하다 재판부 지적을 받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26일에는 재판부가 형사소송법에 맞지 않는다며 검찰의 증인·증거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변호인단은 이날 검찰이 제출한 ‘한 전 총리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 소유 회원권을 이용해 제주 ㄹ골프 빌리지에 묵었다’는 내용의 자료를 증거로 채택하는 데 동의했다. 검찰이 한 걸음 더 나아가 골프장 캐디 등 직원 4명을 증인으로 신청하려 하자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변호인들이 증거 채택에 동의하지 않았느냐”며 이를 거부했다.
검찰은 또 “오찬이 끝나면 항상 한 총리가 먼저 문을 열고 나왔다”는 총리공관 경호원의 증언이 나온 뒤 추가 조사한 경호팀 직원 4명의 진술조서를 증거로 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재판 중 나온 증언을 대신하는 진술조서는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 조항을 언급하며 증거 채택을 거부했다.
권오성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검사는 15일 문제의 총리공관 오찬에 참석했던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이 “오찬 뒤 4명이 동시에 나왔다”고 증언하자 검찰 내부 면담보고서를 보여주며 “면담할 때와 다른 말을 하고 있다”며 따졌다. 이에 재판부는 “법정에 제출되지 않은 자료는 사용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서류가 아닌 기억력에 의존하다 신문이 중단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검찰은 19일 재판부가 “계산된 자료로 질문하라”고 하자 법정 한가운데로 나가 한 전 총리의 해외 출장 일정이 적힌 증거를 보여주며 ‘암산’하면서 질문하려다 “갑자기 계산하려니 힘들다”며 신문을 중도에 마쳤다. 재판장은 거듭 “정확하지도 않은 내용을 10만달러로 특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정확한 금액을 계산해 주장하라”고 주의를 줬다.
이처럼 재판에서 수세에 놓인 듯한 인상을 준 검찰은 31일 열릴 한 전 총리의 피고인 신문을 역전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검찰은 “골프 칠 줄 모른다”는 한 전 총리의 주장이, 제주 ㄹ골프 빌리지 이용으로 뒤집혔다고 보고 있다. 곽 전 사장 소유인 회원권의 출처를 두고도 한 전 총리 쪽은 “강동석 전 장관이 가져다줬다”고 했지만, 강 전 장관은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은 이런 대목을 파고들어 ‘한 전 총리와 곽 전 사장이 아주 가깝고, 따라서 5만달러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라는 점을 입증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재판은 △29일 증인 3명 신문 △31일 한 전 총리에 대한 피고인 신문 △4월2일 검찰 구형과 변론 종결 △9일 1심 선고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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