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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경대·승희·귀정…너희를 다시 부르마

등록 2011-03-31 21:17수정 2011-03-31 21:55

지난 1991년 5월18일 만장과 대형 영정을 앞세운 고 강경대씨 운구행렬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터리로 들어서고 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지난 1991년 5월18일 만장과 대형 영정을 앞세운 고 강경대씨 운구행렬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터리로 들어서고 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꽃잎처럼 진 ‘치사·분신 정국’…그 뒤 20년
87년 민주화운동 공유 ‘낀 세대’…신세대 문화 속 혼란
“책임감·부채의식 아직도”…20주기 추모제 곳곳서 열려
“요즘처럼 날씨가 따뜻해지면 다시 경대 생각이 나죠.”

지난 30일 서울 방배동에서 만난 이종혁(42)씨는 1991년 4월26일을 평생의 멍에처럼 안고 지낸다고 했다. 당시 명지대 부총학생회장이었던 그는 경찰이 총학생회장을 연행한 데 항의해 집회를 총괄하고 있었다. 백골단이 교정 밖으로 진을 치고 있고 지랄탄과 최루탄이 날아들어 정신이 없었던 그때, “사수대와 본대오의 연락책을 맡았던 신입생 강경대가 백골단한테 맞아 죽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원수를 갚겠다’는 분노로 ‘91년 봄 분신정국’을 보냈다는 그는 “경대에 대한 책임감과 부채의식, 그리고 경대를 기억하는 이들의 위로로 20년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해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노훈오(43·광주 서부 와이엠시에이 문화센터장)씨도 역시 같은 기억을 갖고 있다. 그의 기억 속에는 강경대 열사가 숨지고 사흘 뒤 분신한 전남대생 박승희씨가 건넨 마지막 선물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다. 노씨는 “승희가 분신하기 전에 나에게 작은 선물을 건넸는데, 그게 이별의식이었을 줄은 몰랐다”며 “마음이 아파 떠올리는 것조차 힘든 일이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의 죽음을 기억하며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고 말했다.

강경대 열사와 함께 그해 대학에 입학했던 91학번들에게는 선배 세대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미묘한 감정이 존재하는 듯하다.

“(87학번) 형들 1학년 때 이한열이 죽었을 때는 온 국민이 다 일어났고, 길거리에 나가면 다 박수쳤다는데, 우리 1학년 때는 강경대가 죽었고, 또 수없이 죽었는데,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얘기나 들었다.” ‘386’도 ‘신세대’도 아닌 이른바 ‘낀 세대’라 불리는 91학번의 애환을 담은 연극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에 등장하는 한 대목이다.

대학 새내기 때 강경대의 죽음을 접하고 거리로 나섰지만 이후 학생운동의 쇠퇴와 동구권의 몰락을 지켜봐야 했고, 자유분방한 이른바 ‘엑스(X)세대’의 등장을 겪으며 느꼈던 당혹감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당시 이화여대 독문과 1학년이었던 배우 김여진(39)씨는 “그해 4월 강경대가 죽은 뒤 연세대에서 열린 추모집회에 나간 것이 나의 첫 시위였다”며 “그날 최루탄을 마시고 기절한 뒤로 내내 눈물 범벅이 된 채 거리시위를 다녔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김씨는 “91년의 충격으로 ‘학생정치조직’에서 활동했지만, <우리들의 천국> 등 드라마로 꾸며진 대학생들의 모습과 서태지로 대변되는 신세대 문화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런 혼란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시각도 있다. 중앙대 91학번인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되는 등 역사적으로 큰 성과가 있기도 했다”며 “91년 이후 겪었던 혼란은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 다른 형태의 진보를 찾기 위한 모색의 과정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치사·분신정국’이라 불렸던 1991년 희생된 10명의 열사를 기리는 작업도 활발하다. 강경대 열사 20주기 추모사업이 오는 23일 광주 망월동 묘역 참배를 시작으로 5월까지 잇따라 열릴 계획이다. 26일에는 명지대에서 ‘추모식 및 평전 출판 기념회’가, 5월11일에는 서울 기독교회관에서 추모단체 연대회의가 주관하는 ‘91년 5월 대투쟁 심포지엄’이 열린다. 또 5월22일에는 광주와 경기 마석 모란공원에서 각각 박승희 열사 추모제와 김귀정 열사 추모제가 열리고, 30일 성균관대에서는 김귀정 열사 추모 평화콘서트가 열린다.

강경대 열사의 모교인 명지대에서 재학생을 대표해 행사를 준비하는 장환(27·경영학과4)씨는 “선배의 뜻을 이어받아 ‘2011년 강경대’가 되자는 마음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91년 5월의 투쟁은 87년 6월항쟁의 연장선에 있었던 것으로, 89년 보수대연합으로 민자당이 나타난 이후 많은 이들이 진정한 민주화를 염원했던 것 같다”며 “91년의 투쟁에 대한 계승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은 미완의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현 정부 들어서 표현의 자유 위축과 절차적 민주주의의 후퇴는 물론 사회양극화와 비정규직의 증가로 대표되는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정체되고 있어, 91년 4·5월의 투쟁을 현시점에서 평가하는 일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건국대 91학번으로 노래패 ‘우리나라’의 기타리스트인 이광석(39)씨는 “대학생 사회과학 공부 모임인 자본주의연구회 탄압 등의 사태를 보면 20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며 “팔뚝질하던 내가 기타를 치면서 외치는 모습이 달라졌을 뿐 대학생·노동자 등 국민들이 아직 고통받으면서 지내는 것은 20년 전과 본질이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박태우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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