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영주(가명) 씨가 지난 26일 오전 인천시의 한 미혼모 시설에서 아들과 성탄절 트리 장식을 만지며 놀아주고 있다. 임신 8개월에 기억상실증을 앓는 상태로 서초파출소 앞에서 발견된 김씨의 15개월된 아들은 선천성 기형으로 왼손과 왼발을 잘 쓰지 못한다.
인천/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근로빈곤층과 희망나누기-기억상실증 미혼모의 희망
폭행 일삼는 아빠·집나간 엄마
빚보증 잘못 서 친구에 당하고
아는 언니에 사업사기 ‘뒤통수’
어떻게 가진지도 모르는 아이
왼손·왼발에 이상 ‘기형’ 판정
“작은 커피점과 아이가 내 미래” 2009년 8월 김영주(가명·32)씨는 서울 서초파출소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티셔츠와 바지 차림에 배가 부른 김씨가 불쑥 경찰서로 찾아와 “이름도 집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며 집을 찾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했다. 경찰은 김씨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지문조회를 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임시로 지낼 수 있게 서울 강남의 한 보호센터로 보냈다. 김씨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보다 다급한 건 출산이었다. 이유도 모른 채 아이를 가졌고 정신을 차려보니 임신 8개월이었던 것이다. 우선 아이를 낳고 지낼 미혼모 시설을 찾았지만 김씨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부분 거절당했다. 수소문 끝에 강원도에 있는 한 미혼모시설로 가게 됐다. 그곳으로 옮긴 뒤 아들을 낳았다. 두 달 뒤, 지문조회 결과가 도착했다. 부모님은 20년 전에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김씨는 그래도 가족의 끈을 찾으려고 엄마와 아빠의 주소로 편지를 보냈다. 얼마 뒤 작은고모에게 연락이 왔다. 아버지는 10년째 알코올중독으로 병원에 입원중이고 엄마는 이미 재혼했다고 했다. 김씨는 부모님의 근황을 전해듣고는 차마 연락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이를 입양 보낼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책임지고 기르기로 마음을 바꿨다. 안정을 찾으면서 조금씩 과거의 기억을 찾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폭행을 일삼았고, 엄마가 집을 나갔던 사실도 떠올랐다. 자신은 스무살 때 독립했다. 전문대를 나와 한 증권회사에서 일했는데, 사채를 쓴 친구의 보증을 잘못 서 적금을 깨고 7천만원을 갚았다. 사채 보증을 섰다는 사실이 퍼져 회사를 그만뒀다. 그 뒤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소믈리에 일을 배웠고, 서울 한 호텔의 와인바에 취직했다. 한달에 수백만원씩 벌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던 중 아는 언니의 제안으로 와인바를 차리기로 하고, 1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또 배신당했다. 그 언니는 사업자금을 갖고 사라졌다. 억울하고 분했지만, 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빚을 갚아나갔다. 2008년 어느 날, 강남의 한 술집에서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했다. 그게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그때부터 약 1년간의 기억이 사라졌다. 그 사이에 임신이 된 것이다. 김씨는 병원치료를 받으면서 그 당시의 기억을 복원하려고 노력했지만, 담당 의사는 “나쁜 기억이면 차라리 복원하지 않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현실을 받아들였다.
아이와 함께 새 삶을 살기로 결심했지만 난관은 또 있었다. 아들의 발달에 이상한 낌새가 보였다. 왼손은 항상 주먹을 쥔 채 펴지 못하고 왼발은 까치발을 하고 있었다.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하니 ‘선천성 기형’이라고 했다. 운동신경을 관장하는 뇌의 일부분이 덜 생성됐다는 것이다. 김씨는 일주일에 두세번씩 아들 윤호(가명·2)의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다. 아이를 키우면 밤에 일하는 게 어려울 것 같아 소믈리에를 하겠다는 생각도 접었다. 대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지난 8월부터 미혼모시설 자원봉사자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김씨는 최근 기초생활수급비를 신청했다가 담당기관이 김씨 가족의 금융조사를 하면서 엄마의 근황을 알게 됐다. 아빠와 헤어진 뒤 재혼해 현재 자신이 머무르는 곳에서 불과 40분 떨어진 거리에 살고 있었다. 김씨는 엄마의 소식을 확인하고 기뻤지만 이내 멈칫했다. “나를 버린 지 오래됐고 작은고모를 통해 내 소식을 들었을 텐데, 그래도 찾지 않는다면 뭔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아직은 엄마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요.” 김씨는 내후년 4월이면 시설을 떠나야 한다. 그때까지 열심히 일해 작은 커피숍을 차리는 게 목표다. “앞길이 막막하지만 윤호 보면서 힘내고 있어요. 윤호 때문에 기억도 찾았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걸요. 나중에 진짜 자리잡으면 그땐 엄마를 찾아갈 수 있겠죠.” 인천/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조선족 부부’ 가족에 2000만원 모금
한달간 442명 도움 손길 백혈병에 걸려 힘겹게 항암치료를 견디고 있는 9개월 된 아기 은호와, 은호를 간호하는 조선족 부부의 사연(<한겨레> 11월30일치 기사 코리안드림 깨졌지만 아이마저 잃을수야…)이 소개된 뒤 조선족 부부를 돕겠다는 독자들의 성원이 이어졌다. 지난 한 달 동안 모두 93명이 후원 계좌에 525만9000원을 입금했고, 349명이 자동응답전화(ARS)를 통해 154만3500원을 모금(수수료 10% 제외)했다. 후원계좌·자동응답전화로 들어온 모금액 680만2500원과 ‘바보의 나눔’에서 지원한 1319만7500원을 더한 2000만원은 조선족 부부 가족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후원계좌와 자동응답전화를 통해 접수되는 성금 및 각종 지원은 ‘근로빈곤층과 희망나누기’에 사연이 소개된 이에게만 전액 전달된다. 사례자의 신변보호를 위해 독자와 직접 연결은 안 되며, ‘바보의 나눔’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경미 기자
| |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