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화려해진 옛 구로공단…노동자 삶은 되레 후퇴

등록 2012-01-08 19:57수정 2012-01-08 20:01

지난 6일 저녁 서울 구로구 구로디지털단지의 고층 아파트형 공장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 6일 저녁 서울 구로구 구로디지털단지의 고층 아파트형 공장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12 구로 아리랑 (상) 구로공단, 어떻게 변해왔나수출산업서 IT단지로 재편…제조업·첨단산업 공존
아파트형 공장 밀집…1만여 업체서 14만여명 일해
여공 살던 시장 ‘벌집촌’은 일용직 조선족들 몰려
지난 6일 아침,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이하 서울디산)로 출근하는 수만명의 승객을 쉴새없이 뿜어냈다. 추위에 움츠린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코오롱사이언스밸리·대륭포스트타워 등 역 인근의 아파트형 공장으로 향했다.

2012년 현재, 198만2천㎡ 면적의 서울디산에는 1만여개 업체가 입주해 있고, 14만여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수출산업단지로 조성돼 전성기인 1970년대 후반에는 11만여명의 ‘산업역군’들이 이곳에서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피땀을 흘렸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재벌기업이 주도하는 중공업으로 산업의 중심이 이동하고, 1985년 구로동맹파업 등 노동운동이 불붙으면서 공단 입주기업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다. 1995년 공단 노동자 수가 4만2천명 수준으로 줄자, 정부는 2000년부터 당시 붐이 일었던 정보기술(IT)산업 위주의 첨단 지식산업 단지로 육성하기로 하고 구로공단의 산업 고도화 정책을 펼쳤다. 이름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바꿨다.

이때부터 구로공단의 스카이라인이 바뀌기 시작했다. 구로동맹파업의 시발점이 된 대우어패럴 자리는 오렌지아울렛, 효성물산은 마리오아울렛과 같은 패션타운이 됐고, 갑을전자가 있던 곳엔 대륭테크노타워 8차 등 아파트형 공장이 세워졌다.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의 1단지는 저층건물을 찾기 힘들어졌고, 가산디지털단지역 양쪽의 2·3단지도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이 초고층 아파트형 공장으로 바뀌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서울시 등이 주는 중소기업육성 혜택 덕분에 제조업·정보기술업·물류업 등을 하는 중소기업이 아파트형 공장을 메웠다.

변한 것은 공간만이 아니다. 산업단지 고도화 전략에 따라 제조업으로 대변되는 구산업 노동자의 비율이 줄고 출판·영상·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 등 신산업 분야 노동자의 비율이 증가했다. 하지만 신구 산업을 막론하고 이곳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비정규·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 남부지역 노동자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 김성윤 사무국장은 “제조업 생산직 노동자들은 점심시간에는 아예 건물 밖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며 “작업과 식사 등을 모두 건물 안에서 해결해 햇빛 보기 힘든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한달 평균 250시간을 일해 130여만원을 버는 생산직 노동자 주아무개(36)씨는 “작업하다가 아파트형 공장 통유리 밖으로 일반 사무직이나 연구원들이 쉬는 모습을 보면 괜히 울컥하게 된다”며 “화려해진 스카이라인이 오히려 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든다”고 했다. ‘첨단 지식산업’에 종사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서울디산에서 8년째 프로그램 개발 일을 하고 있는 조아무개(41)씨는 “야근 마치고 밤 11시가 넘으면 택시비 아끼려고 찜질방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구로공단 배후지역도 점차 변화해 갔다. 1970~80년대 시골에서 올라온 여공들의 거처였던 가리봉시장 일대 벌집촌은 지금은 조선족 밀집지역이 됐다. 이곳에서 30년째 일하고 있는 한 전파사 사장(69)은 “여공들이 떠나고 90년대 초반부터 조선족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며 “아직도 월세 10만원짜리 방이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 사람은 10%도 안 된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술잔을 기울였던 시장 안쪽의 곱창집, 뼈다귀 해장국집도 대부분 조선족들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바뀌었다.

20년 동안 구로공단에서 일해온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은 “20년 전만 해도 일자리가 넉넉해 공장 근처에 승합차를 세워놓고 두리번거리는 구직자들을 공장으로 모셔갔다”며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채용하지만 알고 보면 모두 인력파견업체에서 고용하는 비정규직이다. 건물이 화려하게 바뀌었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오히려 후퇴했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