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10대 여성들 ‘임신 시선’에 병원앞 맴맴
생리통인데 이상하게 볼까 걱정
고민끝에 가니 ‘아이 낳으면 된다’
초등생딸 초경 검진 받고 싶어도
보는 눈 두려워 끝내 병원 못가
기혼·출산 중심 진료가 낳은 폐해
생리통인데 이상하게 볼까 걱정
고민끝에 가니 ‘아이 낳으면 된다’
초등생딸 초경 검진 받고 싶어도
보는 눈 두려워 끝내 병원 못가
기혼·출산 중심 진료가 낳은 폐해
며칠 전부터 소변에 피가 비쳤다. 내내 그 걱정이지만, ‘미지의 땅’인 산부인과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결혼 안 한 여자가 산부인과 왔다고 이상하게 보면 어쩌지?’ ‘의사가 어떻게 진료를 보는 걸까?’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버티다 못해 찾아간 병원에서 강희진(가명·25)씨는 의료진의 무신경함에 기함을 했다. 첫 진료에 긴장해 불편을 호소하려 했으나 의사가 말을 잘랐다. “원래 다 그런 거야.”
산부인과는 질병뿐 아니라 여성의 생식 기능과 연관된 정상적 생리현상까지 동시에 다룬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2차 성징이 나타난 10대 소녀부터 완경 이후의 여성까지 여성이라면 누구나 정기적으로 산부인과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권한다. 그러나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 출산 계획이 없는 가임기 여성, 성년에 이르지 못한 10대 여성 등은 산부인과 방문을 꺼린다. 상당수 의료진의 잣대가 출산을 앞둔 기혼여성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지난 5월부터 산부인과 진료 경험이 있는 여성 21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를 보면, 비혼여성에게 여전히 문턱이 높은 산부인과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당연히 기혼여성이라고 판단했는지 나더러 ‘새댁’이라고 불렀다”, “의사가 ‘나이도 좀 있는데 왜 아직 결혼 안 했느냐’고 물었다”, “어린데 왜 여기(산부인과) 왔냐고 물었다” 등의 응답이 적지 않았다.
직장인 심지나(가명·27)씨는 최근 들어 심해진 생리통 때문에 산부인과를 찾았다. 그러나 의사는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괜찮을 것”이라고만 말했을 뿐, 증상에 대한 다른 설명 없이 처방전을 줬다. “그럼 생리통을 없애기 위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건지 황당했다”고 심씨는 성토했다.
의학적으로 보아 “출산하면 생리통이 개선된다”는 진단에는 큰 잘못이 없다. 자궁내막증 등 ‘속발성 생리통’은 별도의 치료가 필요하지만, 별다른 요인이 없는 ‘원발성 생리통’은 출산 뒤 호르몬 등 자궁 내부환경의 변화로 개선되는 게 일반적이라는 게 의학계의 상식이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결혼하지 않는 여성이 늘고, 결혼을 했어도 출산을 미루거나 거부하는 여성 또한 급증하고 있는데, 다수 의료진의 ‘여성관’이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직장에 다니다 뒤늦게 결혼한 원미연(가명·40)씨는 얼마 전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왜 빨리 아이를 낳지 않느냐”는 의사의 핀잔을 들었다. 원씨는 “출산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온전히 나의 선택인데, 왜 의사가 간섭하며 호통치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혼여성들이 산부인과를 꺼리는 것은 이름 자체가 주는 거부감 때문이기도 하다. ‘산부인과’가 기혼 출산 여성들만을 위한 곳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여성민우회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산부인과에 가기 꺼려지는 이유로 “산부인과 진료 내용 자체가 임신·출산에 집중되어 있어서”, “여성의 건강을 검진하러 가는 곳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아기, 출산 등과 같은 이미지가 더 크게 잡혀서” 등을 들었다.
미성년자들에게도 산부인과의 문턱은 높다. 두 딸을 둔 정현진(가명·41)씨는 요즘 고민이 생겼다.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이 곧 초경을 겪을 텐데, 산부인과를 찾아가 검진을 받아야 할지 걱정이다. “아기를 낳을 때만 가는 병원, 성병에 걸리면 가는 병원이라는 시선 때문에 아이를 산부인과에 데려가기 어렵다”고 정씨는 말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둔 이웃집도 그래서 산부인과 방문을 꺼렸다. 여자아이의 난소에 문제가 생겼지만, 산부인과 검진을 꺼리며 소아과·내과를 전전하다 병을 키워 결국 개복수술까지 받았다.
몇 년 전부터 의학계에서는 산부인과의 명칭을 ‘여성의학과’로 바꾸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90% 이상 의견을 모은 상황이지만 여성 건강과 관련된 다른 과의 동의를 구하지 못해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신정호 고려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는 “미성년과 미혼여성이 거리낌없이 산부인과에 드나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차원에서라도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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