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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경제위기와 인종갈등…아, 지중해의 햇살이여

등록 2013-03-03 16:31수정 2013-03-03 18:12

2012년 8월 정부의 연금 삭감에 항의하는 그리스인들이 재정경제부 건물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아테네/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2012년 8월 정부의 연금 삭감에 항의하는 그리스인들이 재정경제부 건물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아테네/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그리스에서 제주를 보다]
⑨ 그리스의 위기…문화와 경제

▷ 관련기사 (제목을 누르면 기사로 이동합니다)
① 신타그마 광장에서 제주 3·1사건을 생각한다
② 칼라브리타 학살과 북촌리 학살
③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4·3’ 수형인들
④ 신화의 나라, 저항의 나라

⑤ 저항과 비극의 서사, 스코페프티리오
⑥ 그리스의 홀로코스트 ‘유대인 절멸’
⑦ 기아의 어머니와 절대권력의 무상
⑧ 전쟁기념관과 쓰여지지 않는 역사
⑨ 그리스의 위기…문화와 경제

■ 넘쳐나는 노숙자와 경제위기 2012년 8월 서울의 강남이나 명동쯤에 해당하는 그리스 아테네 중심부 신타그마광장과 에르무거리 등을 지날 때마다 마주치는 이들이 있었다. 모자를 앞에 놓고 음악을 연주하는 허름한 옷차림의 청소년, 손을 내밀거나 컵을 내밀어 구걸하는 이들이다. 어떤 이는 아기를 안고 지나는 사람마다 간절한 눈빛을 맞추려고 하고, 어떤 이들은 굶주린지 며칠됐다는 글을 써붙인 골판지에 누워 있기도 했다.

지중해의 길목에 있는 그리스에는 아프리카와 발칸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이주민들이 찾아든다. 에르무거리에서 취재중이던 그리스 국영방송 <에르트>(EPT) 기자 니코스 카포글리스는 “요즘 그리스의 현안은 뭐냐”는 질문에 주저없이 “경제위기”라고 답변했다. 그는 “경제가 너무나 좋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경제위기를 얘기하고 있지만 해법은 없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수니온곶에서 아테네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만난 아테네대학 생물학과 졸업반 닉의 관심사도 경제였다. “그리스 대학생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뭐예요? ” “그리스에 관한 소식을 들었겠지만, 경제위기가 가장 큰 문제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이곳 대학생들의 주요 관심사도 취업입니다. 일본계 회사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는 일본계 회사에 들어가려고 일본어 학습을 위해 학원을 다닌다.

방글라데시에서 대학을 나오고 그리스에 온지 1년이 됐다는 주불라스와 그의 삼촌 슈몬은 직장을 구하지 못해 관광지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홀로코스트 공원 근처에서 만난 그들은 단순 일거리도 없어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그리스 경제상황이 좋이 않아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말에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쉽지 않아요. 경제상황이 나빠서요”라고 말한다. 그리스어도 모르고, 영어도 모르는 이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귀국하는 날 8월30일 오전 니키스거리에 있는 재정경제부 건물 앞에서는 일단의 시위대가 집회를 열고 있었다. 30여명의 집회 참가자들이 각종 펼침막을 들고 휴대용 확성기를 든 선창자의 구호에 맞춰 외치고 있었다. 집회 참가자들을 자세히 보니 휠체어를 타고 있거나 지체장애인들,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옆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취재하던 기자에게 물어보니, 연금 삭감에 항의해 재정부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중이란다. 이 기자는 3년째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각종 기사를 쓰는 게오르게라고 했다.

“누가 조직한 시위입니까? 정부는 얼마나 연금을 축소한 거죠?” 이것저것 묻자 게오르게가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그가 주최 쪽 관계자 헬렌을 소개해준다. 헬렌은 남편이 장애인협회에 있다고 한다.

“시위 목적이 무엇인가요?”

“이들은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보시다시피 노인과 지체장애인들이 대부분입니다. 정부는 우리의 연금을 전액 삭감했어요. 당신 눈에는 이들이 경제력이 있어 보입니까? 한달 300유로의 정부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이를 삭감했으니 당장 이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항의하는 겁니다.” 헬렌은 정부에 대한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연금을 삭감하면 의료보험은 어떻게 됩니까?”

“의료보험도 마찬가지예요. 연금이 끊기고 1년이 지나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요. 연금을 삭감하는 것은 우리더러 죽으라는 얘기나 다름없습니다.”

게오르게에게 커피를 마시자며 시위를 벌이는 장소 맞은 편 카페로 가자고 했지만 그가 머뭇거렸다. “왜 머뭇거려요?”

돌아온 그의 말, “돈이 없어요.”

“걱정말라”며 그를 카페로 안내했다.

“당신은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아있는게 좋다고 생각하세요? 그리스의 경제수준이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에 견줘 떨어지는데 유로화를 사용함으로써 물가가 동시에 높아져 시민들의 생활이 더욱 피폐해지는 것 같아요.” 나의 말이 끝나자 그가 입에 거품을 물며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난했다.

그리스의 경제위기를 반영하는지 2012년 8월 아테네 길가 주변의 상당수의 건물들은 먼지가 쌓인 채 문을 닫은 상가들이 눈에 띄었다. 아테네/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그리스의 경제위기를 반영하는지 2012년 8월 아테네 길가 주변의 상당수의 건물들은 먼지가 쌓인 채 문을 닫은 상가들이 눈에 띄었다. 아테네/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맞는 말입니다. 그리스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못삽니다. 그런데도 이제는 똑같은 가치에 해당되는 돈을 내고 물건을 구입해야만 합니다. 시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경제가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나는 개인적으로 유로존 잔류를 반대합니다.”

칼라브리타로 가는 길을 동행한 아테네의 운전기사 디미트리도 비슷한 진단을 내놓았다. 그리스가 유로존에 잔류하는 게 좋은지 나쁜지를 묻는 질문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예를 들며 설명했다.

“그리스가 드라크마(그리스의 과거 화폐)를 사용할 때는 잘 살았는데 유로화가 통용되면서 문제가 됐어요. 당근 1㎏에 드라크마를 사용할 때는 50드라크마밖에 안됐는데 지금은 드라크마로 따지면 175드라크마로 3배가 넘어요. 물가가 그렇게 올랐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생활합니까? 나는 유로존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로화가 모든 것을 비싸게 만들었어요. 이유(EU)가 모든 것을 강요합니다. 우리 정부는 시키는대로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지요.”

지금의 경제위기는 그리스의 곳곳에 스며든 것 같았다.

2012년 8월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서 그리스 파키스탄협회 주최로 그리스 극우단체의 사원 공격에 대해 규탄집회를 열고 있다. 아테네/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2012년 8월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서 그리스 파키스탄협회 주최로 그리스 극우단체의 사원 공격에 대해 규탄집회를 열고 있다. 아테네/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 이주민과 사회갈등의 표출 ‘살인적이고 인종차별적인 학살에 반대하자. 주변의 파시스트들을 타도하자.’ ‘침묵은 공범자다.’ 아테네 시내 모나스티라키역 광장 정교회 건물 벽에 나붙은 벽보의 제목이다. 간간이 그리스내 이주민들에 대한 극우단체들의 가혹행위가 보도되는 모습과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현지에서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이 벽보의 글은 이렇다. “출신 국가, 피부색, 종교와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존엄과 연대와 평등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파시스트·인종차별주의자의 공격과 살인행위에 무대응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며 이주민들에 대한 그리스 극우주의자들의 가혹행위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이 글을 보면, 2012년 8월12일 일요일 오토바이를 탄 5명의 극우주의자들이 경찰이 배치된 아테네 중심부 아나사고라스 거리에서 한 이주민 청년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났지만 경찰과 당국은 처음부터 이 사건이 인종차별적 살인사건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희생자의 이름을 밝히지도, 가해자들을 찾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벽보에는 8월까지 6개월 동안 극우주의자들에 의한 이주민 공격사건이 500여건이나 발생했는데 공격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주노동자들이라고 전했다. 8월2일 이후 경찰의 불법 체류자 단속 작전인 ‘제니오스 제우스’(Xenios Zeus) 작전으로 1600여명이 체포됐다고 했다. 이주민과 타종교에 대한 극우주의자들의 테러는 심각했다.

마침 신타그마 광장에서 확성기와 함성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집회장소로 가보니 참가자들이 그리스 원주민들이 아니라 그리스에 거주하는 파키스탄인들이었다.

신타그마 광장에서 국회의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대형 확성기가 설치되고 빨간 바탕에 그리스어로 뭐라고 쓰여 있었다. 영어로 쓰인 손팻말도 보였다. “모스크(사원)를 공격하고 예언자와 꾸란을 모욕한 파시스트들을 처벌하라 -그리스 파키스탄협회’

그리스 극우단체들의 이슬람 사원 공격에 항의하는 집회였다. 현장에서 만난 이슬람 칸(31)은 집회 열흘 전에 그리스의 파시스트들이 사원을 훼손해 집회를 열고 있다고 했다.

“누가 파시스트들인가요?”

“황금새벽당이 공격했어요. 그들은 그리스내 모든 외국인 이주민들에게 떠나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극우정당인 황금새벽당 소속 당원들의 공격을 실감했다.

2012년 8월 그리스 아테네의 한 광장에 노인이 비둘기에 먹이를 주며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다. 아테네/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2012년 8월 그리스 아테네의 한 광장에 노인이 비둘기에 먹이를 주며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다. 아테네/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2012년 4월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 더미를 뒤지기 전에 존엄한 종말을 맞이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며 신타그마 광장 지하철역 입구에서 약사직을 은퇴한 뒤 연금으로 생활해온 70대 후반의 디미트리스 크리스툴라스가 정치인들의 무능을 질타하며 권총 자살하고, 독일 점령 시기 저항운동의 원로 마놀리스 글레조스가 “그리스가 나치 독일의 점령 이래 이토록 위기였던 적이 없다”고 했던 그리스.

그리스를 다녀온 지 6개월이 지난 2월27일 국내 일간지에는 ‘그리스, 6개월 만에 외국자본 1억유로 유입’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리스 주식시장으로 유입된 외국자본이 지난해 하반기 1억900만유로, 1월에 2760만유로에 이르는 등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로 그리스를 빠져나갔던 외국자본이 그리스로 돌아오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오스만 투르크의 400여년에 걸친 기나긴 식민지배와 나치 독일의 점령 통치, 내전으로 굴곡진 그리스에 지중해의 햇살이 비춰질 때는 언제인가?

아테네(그리스)/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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