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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지구촌에서 가장 넓은 라이프치히 중앙역

등록 2014-06-16 11:09수정 2014-06-16 11:09

[김규원의 도시잡기]
인구 50만에 옛 서울역 12배…지하 쇼핑몰도
서-중 유럽 국경 없는 거미줄 연결망의 중심
라이프치히 중앙역의 왼쪽 시계탑 건물.
라이프치히 중앙역의 왼쪽 시계탑 건물.

유럽의 많은 나라가 그렇듯 독일은 철도가 잘 발달해 있는 나라다. 서유럽과 동유럽의 사이에 있다는 지리적 특성, 기계 공업이 발달한 산업적 특성을 가졌고,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고속철도 원천 기술을 가진 나라라는 점 등 때문에 독일은 철도가 잘 갖춰져 있고, 철도로 여행하는 것이 매우 편리한 나라이기도 하다.

가로 길이가 거의 30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라이프치히 기차역의 모습.
가로 길이가 거의 30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라이프치히 기차역의 모습.

 독일의 동부, 옛 동독 지역에서 대표적인 도시인 라이프치히를 찾아갔을 때 다시 한 번 이런 철도 강국으로서의 독일을 실감했다. 다름 아닌 기차역의 규모 때문이었다. 라이프치히는 베를린을 제외하면 옛 동독에서 드레스덴과 함께 가장 큰 도시라고 할 수 있지만, 인구는 50만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으로 치면, 김해 규모의 도시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계에서 연면적(바닥 면적, 건축 면적)이 가장 넓은 기차역을 갖고 있다.

 

라이프치히 중앙역 내부는 놀랄 만큼 널찍하다.
라이프치히 중앙역 내부는 놀랄 만큼 널찍하다.

 라이프치히 기차역의 건물 연면적은 8만3460제곱미터로 평으로 하면 2만5290평이다. 이것은 옛 서울역 건물의 연면적 6631제곱미터의 12배가 넘는 것이다. 건물의 전면부 길이만 해도 293미터이며, 23개의 장거리 기차, 1개의 지하철 플랫폼을 갖고 있고, 하루에 12만명이 이용하는 ‘중앙 독일 도시급행 열차’(S-Bahn)의 중심역이라고 한다.

 

라이프치히 중앙역은 모두 24개의 플랫폼을 갖고 있다. 서울역보다 5개가 더 많다.
라이프치히 중앙역은 모두 24개의 플랫폼을 갖고 있다. 서울역보다 5개가 더 많다.

 라이프치히 역의 플랫폼의 숫자는 한국 최대 역인 서울역의 19개(기차역 15개, 지하철 2개, 인천공항철도 2개)보다 5개나 더 많고, 이용자는 장거리 철도 기준으로는 하루 10만여명인 서울역과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역은 장거리 기차 이용자 10만여명에다가 지하철 2개 노선과 인천공항철도 이용자까지 더해 하루 30만명가량이 이용한다. 다시 말해 50만명 도시의 철도 이용자가 장거리 철도 기준으로는 1000만명 도시와 비슷하고, 도시 철도 기준으로는 5분의 2에 이르는 것이다.

 

라이프치히 기차역만큼이나 큰 플랫폼 건물의 외관.
라이프치히 기차역만큼이나 큰 플랫폼 건물의 외관.

 라이프치히역의 규모가 이렇게 크고, 이용자가 이렇게 많은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독일 등 유럽 나라의 도시들은 교통수단 가운데 기차의 비중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유럽에서 많은 도시의 교외 거주자들이 기차로 출퇴근한다. 이를테면 런던은 도시 중심부에 14개의 기차역이 있고, 파리는 6개의 기차역이 있는데, 이들 노선은 많은 교외 거주자들의 출퇴근 수단이 된다. 한국의 지하철과 광역 버스가 담당하는 역할의 상당 부분을 유럽 나라들에서는 여전히 기차가 수행하고 있다.

 

라이프치히 중앙역은 이 지역 중심역이고 종착역이어서 기차가 통과하지 않고 들어온 곳으로 다시 돌아나간다. 위키피디아.
라이프치히 중앙역은 이 지역 중심역이고 종착역이어서 기차가 통과하지 않고 들어온 곳으로 다시 돌아나간다. 위키피디아.

 또 앞서 말했듯 라이프치히역은 마치 인천공항처럼 그 지역의 중심역(허브역)이기 때문에 이용자가 다른 역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라이프히치와 같은 중심역은 그 주변 지역의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 많은 경우 거치게 돼 있다. 그래서 놀랍게도 라이프치히역은 종착역 구조를 갖고 있다. 기차역에는 종착역과 통과역이 있는데, 라이프치히역은 위치상 통과역일 것 같지만, 중심역이라는 기능 덕에 종착역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기차들은 라이프치히 도심을 관통하지 않으며, 많은 기차 노선들이 라이프치히를 종착역으로 삼는다. 이것은 사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라이프치히 중앙역의 플랫폼은 거대한 철골 구조로 돼 있다. 위키피디아
라이프치히 중앙역의 플랫폼은 거대한 철골 구조로 돼 있다. 위키피디아

 또 서유럽과 중유럽의 철도는 각 나라 안에 폐쇄, 단절돼 있지 않고, 거의 국경의 개념이 없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따라서 라이프치히역 역시 독일인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체코 등 이웃 나라 사람들도 많이 이용할 것이다. 특히 여행철인 여름이면 외국인 비중은 훨씬 더 늘어난다. 유럽인들은 물론이고, 나와 같은 아시아인들도 유레일 패스를 가지고 유럽에 와서 기차를 타고 종횡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다와 북한으로 끊겨 있는 한-중-일 세 나라의 철도와 크게 다른 장점이다.

 

라이프치히 중앙역은 기차역이 중심이고, 지하를 파서 쇼핑 몰을 들였다. 본말이 명확하다. 위키피디아
라이프치히 중앙역은 기차역이 중심이고, 지하를 파서 쇼핑 몰을 들였다. 본말이 명확하다. 위키피디아

 라이프치히역 안에는 대규모 쇼핑 몰도 마련돼 있다. 독일 통일 뒤에 기차역의 1층 바닥을 파서 지하 2개층의 거대한 쇼핑 몰을 만들었는데, 이 쇼핑 몰이 기차역 바닥 면적의 상당 부분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라이프치히역의 쇼핑 몰을 보면, 우리 역의 상업 시설과 비교했을 때 부러움이 든다. 이 공간 안에서 기차역과 쇼핑 몰 위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지상 1층에 있는 기차역이 이 공간의 중심이고, 지하 1~2층에 있는 쇼핑 몰은 이 공의 주변부에 있다. 이 공간은 1차적으로 기차역이면서 2차적으로 그 일부 공간을 활용해 쇼핑 몰을 만든 것이다. 따라서 공간의 중심, 주인은 명확히 기차역이다.

 

라이프치히 중앙역은 독일 통일 뒤 지하를 2층까지 파서 거대한 쇼핑 몰을 만들었다. 위키피디아.
라이프치히 중앙역은 독일 통일 뒤 지하를 2층까지 파서 거대한 쇼핑 몰을 만들었다. 위키피디아.

 이 점에서 라이프히치역은 민자 역사라는 이름으로 기차역을 대기업에 팔아넘긴 한국의 역들과는 거대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서울역을 보면, 1925년에 지어진 아름다운 옛 서울역은 민자 역 개발 때 역 기능을 잃고 버려져 뜬금없는 전시관으로 바뀌었다. 오래되고 아름다운 옛 서울역을 중심에 두고 새 서울역을 짓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지만, 정부와 민자 사업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옛 서울역을 버리고, 옛 서울역과 새 서울역 사이에 새로운 중심 구역을 만들어 기차역이 아니라, 대형 마트와 백화점, 음식점을 배치했다. 옛 서울역은 북쪽 구석, 새 서울역은 남쪽 구석으로 밀려났다. 서울역은 1차적으로 상업 시설이고, 2차적으로 기차역인 본말이 전도된 구조가 됐다.

 

 용산역은 서울역보다도 더 비참한 수준으로 전락했다. 용산역은 대형 마트와 백화점, 전자 상가, 복합 영화관 사이에 목이 졸린 것처럼 끼어있다. 위치상으로 보면 용산역 터의 중앙에 기차역이 놓여 있지만, 너무나 옹색해서 기차역 입구를 찾기 어려운 정도다. 당시 민자 사업자가 가져온 이런 본말과 주종이 거꾸로 된 설계를 국토교통부와 철도공사의 어떤 관료들이 받아들였는지 찾아내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기차역이라는 최고의 공공 공간을 사실상 공짜로 민간 자본에 넘겨버렸다. 더 황당한 것은 이렇게 서울역과 용산역을 민자 사업자에게 넘긴 정부 관료들은 이들 역보다 이용객이 훨씬 적은 광명역을 무려 4천억원을 들여서 지었다는 점이다.

글·사진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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