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쪽 “항소하겠다” 공직선거법과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오른쪽 둘째)이 1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선고를 받은 뒤 취재진을 피해 법정을 나서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들과 이를 막는 수행원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자 비켜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법학계·시민단체 비판 봇물
‘댓글을 달 때 선거에 개입할 의도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면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다.’
국가정보원 대선 여론조작 사건 1심 재판부가 내놓은 결론이다. ‘헌정유린’, ‘국기문란’으로 이 사건을 규정해 온 법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은 “정치와 선거에 불법 개입해 온 정보기관의 역사를 무시한 판결로,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고 비판했다.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여러 차원이 있을 수 있는데, 이 사건은 정책이 아닌 선거에 개입한 것이다. 이는 당락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었던 것으로 선거에 영향을 끼칠 의도로 봐야 한다. 정치개입을 인정하면서도 선거법 위반을 무죄로 판단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박 교수는 “1심 판결만 보자면 정보기관이 앞으로 선거 때마다 (2012년 대선 때와 같은 방식으로) 개입할 경우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오영중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은 “국정원법 위반과 선거법 위반은 동전의 양면인데도 이를 분리해 판결한 것에 의문이 든다. 현실타협적인 판결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장주영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도 “국정원의 트위터 활동이 대선 시기에 집중됐다”며,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은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법원의 이중잣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원은 그동안 선거사범에 대해 선거운동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엄격한 법 적용을 해왔다. 정보기관의 장이 선거 국면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한 것 자체가 법원이 그동안 강조해 온 ‘선거의 공정성’을 위협하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시민들의 작은 선거법 위반에는 추상같던 법원이 정작 최고권력의 정당성과 연관된 사건에서는 몸을 사렸다는 것이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투표소에서 인증샷을 찍어 올린 시민에게 선거법 위반이라고 판단해 왔던 법원이 내릴 수 없는 판결이다. 대북심리전이 필요하다고 해도 국내 정치와 관련된 부분은 선거법 준수 의무가 있는 것이다. 법원이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참여연대는 논평에서 “이번 판결은 선거의 공정성을 깨뜨리는 데 정부기관이 나서도록 부추기는 것과 다름없다. 선거의 공정성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정부기관의 부당한 선거개입을 처벌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항소심 재판부의 바른 판결을 촉구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논평을 내어 “특정 정당을 지지·반대는 했지만 형사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은 ‘술을 마시고 운전은 했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진명선 이재욱 최우리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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