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 다섯 중 한 명은 영리·비영리 법인의 대표·감사·이사직 등을 맡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92명은 거액 연봉을 받는 대기업 등의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는데, 개인별 찬반 여부가 확인되는 이사회에서 안건 찬성률이 100%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가 15일 정진후 정의당 의원이 서울대에서 받은 ‘교수 사외이사 현황’(2014년 6월 기준)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의 기업 사업보고서를 활용해 교수들의 사외이사 활동 내역을 분석해 보니, 서울대 전임교수 2209명 가운데 18%인 396명이 영리·비영리 법인의 직을 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 사외이사는 92명으로, 이 중 23명은 2곳의 사외이사를 동시에 맡고 있다.
사외이사를 맡은 교수들의 소속 단과대를 보면, 경영대·경영전문대학원이 27명으로 가장 많고, 공대가 22명, 법학전문대학원이 10명이다. 사회과학대는 8명, 의대·치의대학원 5명, 국제대학원 5명, 자연과학대와 농업생명과학대가 각각 4명, 생활과학대 2명, 행정대학원 3명, 인문대와 수의대가 각각 1명이다. 이들은 삼성·엘지·현대차·에스케이·케이티·씨제이·두산·포스코·롯데·대한항공 등 주요 대기업과 산업은행·외환은행·하나은행·케이비금융지주 등 대형 금융사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교수들의 사외이사 연봉은 평균 4234만원이다. 가장 많이 받는 이는 최종원 행정대학원 교수로 에스케이(SK)하이닉스(7800만원)와 두산건설(6000만원)에서 1억3800만원을 받는다. 송재용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모레퍼시픽(7200만원)과 롯데제과(6000만원)에서 1억3200만원을, 최혁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에스케이이노베이션(6500만원)과 지에스(GS)건설(6000만원)에서 1억2500만원을 받는다. 성낙인 총장도 대구은행 사외이사로 4000만원을 받았다.
서울대 교수가 사외이사를 하려면 ‘전임교원 사외이사 겸직 허가에 관한 지침’에 따라 신청하고 총장 승인을 받으면 된다. 이 지침은 ‘사외이사 겸직 교원은 직무수행에 필요한 범위에서 해당 회사로부터 교통비, 회의수당, 업무활동비 등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돼 있다.
서울대 교수 사외이사 현황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하지만 정부의 경제·금융 정책 수립에 참여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국립대 교수들이 별다른 제한 없이 기업들에서 직무수행 명목으로 수천만원씩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비 창구’라는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외이사 겸직 교수 92명은 이사회에 많게는 수십 차례씩 참석했지만, 개인별 찬반 여부가 확인되는 경우들에서 반대표를 던진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이 찬성한 안건에는 대규모 내부거래 승인이나, 총수들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사외이사가 반대표를 던지는 게 무조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경영진과 사전에 충분히 대화하고 조율해서 찬성했을 수 있다”면서도 “현실을 보면 교수 사외이사는 구체적 경영 현실을 잘 알기 어렵고, 친분관계로 선임되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감시를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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